요즘 관심은 일반계 고등학교입니다. 이상은 푸르나 현실은 어두컴컴한 곳이라고 느껴지는 곳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잘 커온 아이들이 중학교를 거치면서 힘들어하더니 고등학교에선 좌절하더라는 얘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반계 고등학교가 꼭 좌절스러운 곳은 아닙니다. 진학으로 초점을 맞추면 학교가 무채색의 흑백티비 같은 곳이지만, ‘삶’으로 옮겨가면 커튼이 올라간 화려한 무대로 변신하게 된다는 겁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발을 다쳐 응급실에 갔습니다. 아이는 발을 다친 아픔보다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더 두려워했습니다. 아이를 안심시킨 건 아프지 않다가 아니라 치료 잘하면 우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70여 명과 얘기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모르는 아저씨가 와서 무슨 얘기를 할까 하고 눈망울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는 것을 기대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모르는 아저씨가 있는지도 모르는 듯이 시끄럽고 난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단 한 마디에 집중 하더군요. “잘 살고 싶은 거지 너희들?”
고등학교에 오면 아이들은 큰 부담을 느낍니다. 대학이라는 벽이 실감나고,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을 지나면 자기가 꿈꾸던 것들을 하나 둘씩 놓게 됩니다. 포기가 아니라 삶에 대해 조금 더 실감하게 된다는 겁니다. ‘나는 이 정도 구나’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학교가 진학에만 목 메 달고 있으면 ‘너희는 이 정도야’라는 말 밖에는 해 줄 수 없습니다. 현실인 거지요. 그러나 아이들 삶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으면‘그럼에도 너희는 잘 살 수 있어’ 라는 용기를 주게 됩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자기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척 큽니다. 어떻게든 자기 삶을 잘 살고자 애쓰는 거지요. 그런데 학교는 삶이 우선이 아니라 대학이 우선이라고 하니 아이들은 어려운 겁니다. 아니, 너희 삶은 대학이 결정하는 거라는 어른의 좌절과 상실감의 표현을 대놓고 하니 아이들은 시작하기도 전에 힘이 빠지는 겁니다.
어른들의 시각은 재밌습니다. 그렇지만 빈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라고 얘기 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것을 대신 전해주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많은 신뢰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도 그 현실로 들어갑니다. 안타깝게도 그러는 사이에 자기의 ‘삶’에 대해 차츰 잊게 됩니다.다른 사람의 삶을 고민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소비, 다른사람의 습관, 다른 사람의 행동, 다른 사람의 ... 한국의 문화적 문법(정수복)에 빠지게 됩니다. 아이들이 이런 얘기를했습니다. ‘수업의 중심을 저희로 해 주세요’. 이 말은 수업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삶을 존중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업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사가 수업에서 아이들의 삶을 만난다면 학교는 일 년동안 학교라는 공간 전체에서 아이들의 삶을 만나면 됩니다.학사일정, 방과 후 수업, 야간 자율학습, 체험학습, 체육대회... 등등의 모든 공간에서 아이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면 됩니다. 아이들이 기획하고 주도하면 좋겠지만 얘기를 들어주는 ‘관심’ 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존중받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히 학교를 신뢰하게 되지요.
이런 과정이 한두 해에 되지는 않을 겁니다. 몇 년이라는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 대한 어른들의 최소한의 존중의 표현일 거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 무척 편하게, 아주 간단히 이분법적으로 얘기 합니다. 그러니까 ‘대학은 포기하자는 거냐?’ 라구요. 결국 자기의 문법으로 밖에 해석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빈곤하다는 겁니다.
엊그제 오후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중이었는데 바로 옆에 비어있는 원룸 주자장이 있어 비를 피해 들어갔습니다. 먼저 피신해 있는 초등학생 남학생둘이 있었습니다. 뭐가 재밌는지 깔깔대며 비를 즐깁니다. 자기들 자전거를 세워두고 얘기 하더니 그 빗속에서 그냥나갑니다. 해맑게 웃으며 말입니다. 이어 폐지를 리어카에가득 실은 할아버지 한분이 비를 피해 들어오십니다. 왼손에 찬 시계는 삶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것 같고, 밝은 색의 중절모는 그럼에도 멋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보시더니 ‘곧 그치겠구먼! 하십니다. ’일상이 이런 거지, 삶이 이런 거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뭔가가 덧붙여지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았습니다.
고3 아이들은 곧 수시원서를 써야 해서 바쁩니다. 머리도아픕니다. 그렇지만, 푸석한 비누 대신 폼클렌징 크림으로세수 합니다. 퀴퀴한 땀 냄새가 날 것 같지만 남자밖에 없는교실에서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사회에 나가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자신의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삶을 가둬두지 말고삶으로 대학을 꿈꾸고 삶으로 세상을 꿈꾸는 날들이 매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위기라고도 얘기하고, 학력이 너무 떨어져서 아무 짓도 못하겠다는 얘기도 많이 합니다. 부모들은 끊임없이 좋은 대학만 원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 라고도하구요. 교육 정책은 수능이 다 잡고 있는데 뭘 한들 의미가있겠느냐는 말도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리의삶을 놓을 수는 없는 거지요. 아이들의 삶을 놓을 수 없는겁니다. 삶이 뛰노는 공간인 학교가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 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학교에서 우리의삶이 더 아름다워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