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5.8 | 연재 [커피 청년의 별별여행]
매일이 여행이었으면
김현두(2015-08-17 15:19:57)

 

 

버릴 건 버리고 살아야하는데 그게 뭐라고 바리바리 싸고 있는 나를 보았다. 어느 정도 준비 되었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놓친 것은 없는지 또다시 걱정한다. 거기에 난생처음 홀로 떠나는 장기여행이라 걱정 반 두려움 반 마음도 오락가락 하고 있다. 그러나 가슴속 설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참 별난 인생을 살고 별난 놈이 되고 싶은 나는 욕심을 버리기에는 아직 부족한 거 같다. 가볍게 떠나자! 그곳에서 채우자! 그렇게 말하면서도 짐 하나 꾸리는데도 어찌나 욕심을 부리는지 말이다. 가진 것 없이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나란 놈, 돈은 없지만 젊음은 있었다. 그래서 떠났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여행도 인생도 가장 절실한 건 돈이 아니라 용기가 아닐까 싶다. 직장과 가 정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로부터 유보된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용기 가 필요한 것이다. 다시금 돌아보니 내가 용기를 낸 게 서른쯤이 되어서다.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어땠을까? Good Bye ‘두려움’, Hello ‘용기’하고 외쳤더라면 어땠을까?


한숨도 못잔 채 커다란 배에 커피트럭 공간이와 내 몸을 싣고 무작정 제주로 떠났다. 3등 칸 딱딱한 마룻바닥에 몸을 눕히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 버렸고, 시끄러운주변에눈을비벼대며깨어나고말았다. 때 마침 옆 자리에서 쉬고 있던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남편과 함께 무작정 인 천에서 목포로 내려와 아침 배를 탔다는 부부였다. 할아버지는 옆에서 곤히 주무시고 있었다. 비행기는 너무 많이 타서 이번에는 일부러 배를 타고 떠난다는 할머니. 아름다운 노년을 응원하며 말동무 없던 나는 내 요즘 이야기도 보탰다. 나는 할머니께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들 때문에 잠에서 깼다며 투덜댔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한마디 한다. 왜? 난 어린 시절 옛 생각이 나서 좋구먼. 옛날에는 버스나 기차를 타도 사람들 소리로 시끌벅적 했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 아이들이 어쩌면 내 여행길에 소중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여행길에 만난 인연들이 소중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날, 바다가 소리한다. 깨달음을 전해주며 말이다. 여행 잘하고 오라며 말이다. “사람을 여행합니다. 당신이 내게 여행입니다.”
그리고 내 여행노트에 끼적이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아끼면서 살겠습니다.
안아주며 살겠습니다.
좋아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신께 고백한 후 나는 치유되고 있었습니다.
아픔, 상처, 슬픔, 괴로움, 욕심들로부터 말입니다.

 

늘 버리는 것이 처음이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할 때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늘 그 처음을 시작하지 못해서 늘 전전긍긍 하며 힘들어하기를 반복했던 시간들이 참 많았다. 요즘은 나를 다 잡는 방법으로 늘 처음을 떠올린다. 처음으로 만난 커피트럭 손님, 처음으로 알게 된 인연들, 처음으로 만난 카페, 처음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의 마음 같은 것들이다. 처음 떠난 여행, 처음 사랑했던 연인, 처음으로 가졌던 선물.... 세상의 그 모든 처음은 늘 나를 긴장하게하고 설레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내 처음의 시작을 함께 했던 고향마을에 정착하기위해 처음 제주여행을 통해 만난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벌이는 중이다. 온 몸에 흙과 시멘트 땀이 범벅되어서 하루를 마친다. 아무 연고도 없는 진안이라는 시골에 멀리서 찾아 온 두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여행이 내게 준 선물들이다. 다시 처음이 시작 될 공간이다. 다시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될 것이고 계속해서 나는 사람을 여행하고 그 공간을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여행길에 푸른 언덕위에서 바람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바람이 부니 뿌리 있는 들 위의 모든 생명들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바람에 밀려나는 것이겠지? 꺾이고 부러지지 않으려는 그들만의 방법이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일 테다. 단 하나 바람을 맞아 고개를 드는 것은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맞받아쳐 걸어가는 유일한 존재도 ‘사람’이었다. 바람 앞에 뿌리 있는 삶들은 모두가 자연에 순응하고, 인간의 삶은 자기 몸에 맞닿는 그 바람이 지나간 후에야 전해오는 몸의 반응에 순응하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분다. 뿌리 없이 전해오는 그 ‘바람’을 좋아하고 동경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