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강의》가 집적된 저서이다. 특히 이 책은 1989년부터 2014년 겨울까지 약 25년간 진행한 강의를 갈무리하면서, 강의노트와 녹취록을 저본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선생님은 여러 고전(古典)을 '축자역'이나 자구(字句)에 얽매이지 않고 고유의 동양고전 독법(讀法)을 통해 재해석하고, 직접 겪은 에피소드 또는 현재의 함께 결합하여 고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또한 자기 성찰이 중심에 있기 때문에 신영복 교수의 교도소 수감 생활의 일화들이 아주 많이 소개된다. 신영복 선생님은 69년부터 수감 생활을 시작해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88년에 출소하셨다. 대전 교도소를 갈 때 강남은 논과 밭이었는데 출소하면서 올라오니 빌딩 숲이라고 했다.
목차는 크게 세계인식과 인간 이해라는 두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주제에서는 《시경》을 비롯하여 《초사》․《주역》․《논어》․《노자》․《장자》․《묵자》․《한비자》 등 각각 고전 독법을 서술하고, 선생님이 겪은 다양한 일화와 접목시켜 고전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였다. 2주제에서는 "대학"이라고 표현한 교도소에서 20년 동안 수형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인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음을 술회한다.
"모든 고전 공부는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 삼독(三讀)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탈문맥(脫文脈)'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공부는 당대의 문맥을 뛰어넘는 탈문맥의 창조적 실천입니다."(p.19)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p.20)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p.20)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검열을 거친 옥중 서신이었기에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다면, 《담론》에는 징역살이의 괴로움과 고달픔, 재소자들의 삶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되돌아보는 성찰이 담겨있어 자서전과도 같다. 고전 공부가 얕은 나는《담론》에 실린 고전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지식이 많다. 특히 고전을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을 넘나들며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담론은 탄성이 절로 난다. 《담론》의 책표지에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그 무게와 깊이가 어떠한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알기 어렵기에 감히 '서평'이라 할 수 없다. 독자들께서 직접 읽고 느끼시기를 바라며, 본문에서는 공부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듯이 그 사람의 생각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나 자신의 생각 역시 옳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수많은 삶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승인하고 존중하는 정서를 키워 가게 됩니다. 이 과정이 서서히 왕따를 벗어나는 과정이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은 참으로 먼 여정이었습니다. 이 여정은 나 자신의 변화였고 그만큼 나에게 성취감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가슴까지의 여행이 최고점이고 종착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결론을 미리 이야기하자면 '가슴'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의 멀고 먼 여정을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변화입니다. 삶의 현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p.229~230)
"자기 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