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국경도 뛰어 넘는다' 했던가요. 영화 '쉬리'에서 북에서 밀파된 여성 공작원이 남쪽의 정보원과 사랑에 빠져 결국 조국의 명령을 저버리지요. 이보다 훨씬 더 극적인 내용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이야기입니다.
적국의 왕자를 사랑한 공주는 적국의 왕자를 위해 나라를 지켜주는 보물인 자명고를 찢고, 나팔을 부수어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요? 그러지 못했습니다. 낙랑공주는 화가 난 아버지, 낙랑의 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호동왕자 역시 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싫었던 계모, 왕비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칼을 입에 물고 엎어져 죽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승에서는 사랑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곳곳에 많이 있나 봅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오페라가 있는데 바로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가 작곡한 <아이다>입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은 걸 보면 확실히 사람사는 것은 어디나 비슷한가 봅니다.
<아이다>도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처럼 국경을 뛰어넘지만 이승에서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기가 막힙니다. 이집트 고대사를 연구하던 프랑스의 유명한 학자이자 이집트 브라크 박물관장인 오귀스트 마리에트 (Marriett, Auguste Edourd 1821∼1881)는 어느 날 이집트의 이스마일 총독이 새로운 오페라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듣고 새로운 스토리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마리에트는 언젠가 이집트의 고대 사원 제단 밑에서 함께 묻혀있던 남녀 유골을 발굴한 적이 있었습니다. 젊은 남녀가 사원의 제단 밑에 함께 묻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하는데 여기에 고대의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씨줄 날줄로 엮어가며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굉장한 상상력이죠? 마치 대장금 스토리텔링 같습니다). 이 스토리를 들은 총독은 크게 만족했고 베르디에게 의뢰해 오페라 <아이다>가 만들어 냈습니다.
<아이다>에는 아이다와 라다메스, 그리고 암네리스라는 세 사람의 핵심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이다는 에디오피아의 공주인데 지금은 포로로 이집트에 잡혀와서 신분을 위장한 채 이집트의 공주인 암네리스의 시녀로 살고 있습니다. 라다메스는 이집트의 용맹한 장군으로 미래의 이집트 국왕을 내다 볼만큼 전도가 양양한 청년입니다. 암네리스는 이집트의 공주로 다소 남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삼각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지요.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몰래 사랑을 나누고 있고, 그것을 모르는 암네리스는 라다메스를 사랑하며 그가 자신의 배필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에디오피아가 이집트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이집트 왕궁에 전해집니다(아마도 포로로 잡혀간 공주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에디오피아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한 토벌대장으로 이집트의 가장 용맹한 장군인 라다메스가 결정되었습니다. 라다메스는 꼭 승리하고 돌아와서 승전의 월계관을 아이다에게 바치겠다는 내용의 아리아를 부릅니다. 이 아리아가 그 유명한 <정결한 아이다>(Celeste Aida)입니다. 그리고 다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적군은 에디오피아 국왕이 직접 지휘하며 이집트 군대를 격파하고 맹렬한 기세로 진군해 오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라다메스는 승리를 다짐합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아이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자신을 구하러 오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게 맞서기 위해서 출전하는 사랑하는 남자, 아이다의 선택은 사랑하는 남자였습니다. 아버지의 승리보다는 사랑하는 남자, 라다메스의 승리를 기원하는 아리아 <이기고 돌아오라>(Ritorna vincitor)」를 노래하고 맙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죄책감이 듭니다. 아이다는 자신의 절절한 심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기고 돌아오라. 내 입에서 이런 부정한 말이 나오다니... 아버지는 조국의 운명과 나를 위해 용감히 싸우는데 나는 그에 맞선 라다메스의 승리를 빌고 있구나. 그가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오면 내 동포가 피를 흘리게 되고 아버지가 포로로 끌려 오실 텐데 그것을 지켜볼 수 있을까? 신이시여. 내 아버지를 위하여 진심으로 빌게 해주소서. 아버지가 원수를 이기고 승리를 거두게 해 주소서. 아....... 항상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해주는 라다메스여.. 내가 어찌 당신에게 죽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에 있을까?.......... 지금 나는 누구를 위해 울고 있는가... 나의 운명은 끝이 났구나. 세상의 모든 고통이 나를 괴롭히고 있네, 신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Numi pieta…)" 라고 말입니다.
결국 전쟁은 이집트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라다메스는 <개선행진곡>에 맞추어 수많은 포로들을 이끌고 당당히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이다는 포로들 속에서 병사로 위장한 아버지 아모나스로를 만나게 됩니다. 아모나스로는 아이다에게 이집트에 복수하기 위해 에디오피아 군대가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며 라다메스에게서 이집트의 비밀 정보를 빼내오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아이다는 눈물을 흘리며 거절하는데, 그 모습에 아모나스로는 아이다를 "너는 내 딸이 아닌 배신자"라고 비난합니다. 비난을 못이긴 아이다는 라다메스로부터 결국 정보를 빼냅니다. 하지만 둘 사이를 질투하고 있던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에게 모든 것을 들키게 되었고, 병사들이 모두를 체포하러 오자 라다메스는 아이다와 그녀의 아버지를 피신시키고 홀로 붙잡혀 갑니다.
전쟁영웅이며 이집트왕의 후계자인 라다메스는 조국을 배신한 반역자의 몸이 되어 신전의 돌무덤에 산채로 갇혀 죽음을 맞도록 처벌을 받습니다. 어느 날 밤 피신했던 아이다가 돌무덤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라다메스에게 찾아 옵니다. 그리고 둘은 무덤에 갇힌 채 영원히 잠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것이지요.
오페라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 왕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오페라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오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오페라임에도 이 오페라의 탄생에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1869년 11월,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당시 이집트의 총독이던 이스마일 파샤는 수에즈 운하 개통이라는 대업을 이룬 것을 자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기획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카이로에 <이탈리아 극장>이라는 오페라 극장을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수에즈운하 개통 기념 축하행사를 극장 개관일에 맞추어서 하려고 계획했고, 그때 쓰일 찬가를 당시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베르디에게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디는 "카이로에 새 극장이 생긴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 또 나는 축하곡 같은 것은 작곡하지 않는다"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마일 총독은 새로 창작한 오페라 대본과 함께 대본 작가를 보내 축하곡 대신 오페라를 만들어 달라고 다시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디는 별 관심없다는 듯 또 거절하였습니다. 두 번씩이나 거절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세 번째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지요. "만약 당신이 새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면 이 작품을 구노나 바그너에게 맡길 것이고, 그들은 아마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베르디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대본이 아주 훌륭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오케이 사인을 보낸 것이지요.
베르디는 이 작품을 제작하는 내내 매우 까다롭게 굴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만들고 싶었나 봅니다. 주최 측에서는 프랑스어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 프랑스어로 대본을 썼는데 자신은 이탈리아어가 아니면 작곡하기 힘들다고 해 결국 이탈리아어로 다시 대본을 만들게 했으며, 의상이나 소품 등도 모두 파리에서 주문했고, 평소 자신이 받던 오페라 작곡료의 약 4배에 달하는 거액의 작곡료까지 챙겼습니다. 이 작품은 본래 1870년 12월에 첫 공연을 할 계획이었는데 오케스트라 등 출연진들의 준비상황이 의심스럽던 차에 보불전쟁이 일어나 파리에서 제작한 공연의상과 무대세트 등을 운반할 수 없게 되자 베르디는 공연을 연기하기 까지 했습니다. 첫 공연은 예정보다 1년이 지난 1871년 12월 24일에야 성사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첫 공연의 지휘도 베르디가 직접 하지 않았습니다. 주최 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카이로로 갈려면 배를 타고 가야 했는데 베르디는 배 멀미를 끔찍하게 싫어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가혹한 사랑이야기 <아이다>, 아마도 세계 곳곳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아 더더욱 사랑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달콤한 것이기도 하지만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전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