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방송반 들까?" "그것 참 재밌겠다." 이것이 내가 '언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첫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점심시간에 선생님 몰래 교문을 나가 문방구에서 오락을 하던 학생들을 카메라에 담아 학교방송에 내보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 때도 방송반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방송반을 하면 공부를 못한다는 친오빠의 극구만류에 방송반을 하지 않았지만 공부도 그리 썩 잘하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방송반을 할 걸'이라는 후회가 남는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정신을 차렸다. 무엇보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하며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고 방송국 아카데미를 수료했다. 내가 다녔던 사범대에서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신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조그마한 언론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월급이 적고 주말이 없어도 친구들은 날 부러워한다. '네가 말하는 대로 됐다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 부럽다고'
대학을 졸업하고 만난 교수님은 "30억 원 정도의 로또에 당첨이 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거니?"라고 우리에게 물었다. 교수님은 "교수님! 그런 큰돈이 있는데 일을 뭐 하러 해요? 놀러 다닐래요."라고 답한다면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고, "아니에요, 그래도 이 일은 계속할 것 같아요, 지금처럼 아등바등하진 않더라도 즐기면서, 그냥 재미로라도"라고 답한다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가슴 속에 새겨 넣었다. 나의 답변은 후자였으니까.
이쪽 언론계열의 일은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만나는 사람도 참 많다. 하루하루가 정말 색다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며 눈을 뜬다. 매일 버스 노선이 달랐고, 매일 만나는 사람도 다르다. 매일매일 배우고 경험하고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있다.
며칠 전에 '나를 격려하는 하루'라는 책을 읽었다. 책 88쪽을 보면 먼 훗날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내가 몇 평짜리 집에서 살았느냐'가 아닌 '나는 얼마나 좋은 경험을 하며 살았는가.' 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큰 평수 집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가는 어른이 아닌 좋은 경험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어른이 될 것이다.
혹 20대의 어떤 친구들은 스스로를 삼포세대,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며 자기들을 사상 최대의 청년실업을 맞은 불행한 세대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때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세상에서 태어나 모진 고생을 한 세대도 있고,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 핍박 받았던 세대도 있었다. 그 세대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행복한 푸념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총이 아닌 펜을 들면서 푸념을 하니 말이다.
나는 푸념은커녕 이 시대의 20대로 사는 것이 즐겁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다가오는 10월에 나는 제일 친한 친구들과 대만여행을 간다. 나 포함 3명의 대만 왕복 항공권은 72만원이다. 정보의 홍수인 인터넷을 뒤져야 가능한 일이다. 전화도 필요 없다. 인터넷으로 여권번호 쓱쓱 치고 결제하니 예약이 끝났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20대니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무조건 여행사가 있어야한다는 우리 엄마아빠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7년째 키운 강아지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니 꼬맹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누나 강아지 한번 만져봐도 돼요?" "이모 강아지 만져봐도 돼요?" "응, 누나라고 한 너는 만지고 이모라고 부른 너는 만지지마" 꼬맹이들에게는 치사하지만 나는 이제 막 20대의 후반전을 시작한 푸르른 청춘이 있는 '20대 누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