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우리들에게 서른 살은 무엇을 꿈꾸는 나이인가?
흔히들 서른이 되면 이직을 준비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는 모습을 마주한다. 때로는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서른 살에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서 지금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며 보냈다. 서른 살의 나는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박노해 시인의 <들어라 스무 살에>라는 시를 내게 들려주었다.
반항아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탐험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시인이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너는 지금 인류가 부러워하는 스무 살 청춘이다.
스무 살 폐부 속에 투지도 없다면
스무 살 심장 속에 정의도 없다면
스무 살 눈동자에 분노도 없다면
알아채라, 네 젊음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들어라 스무 살에
혁명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비록 스무 살의 나는 그런 폐부를 가지며 살아왔는지는 의문이 들었지만 작고 보잘 것 없을지 모르는 내 분홍색 커피트럭을 몰고 이리저리 여행하며 커피를 팔고 있었다. 때로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늘 위 날아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었으면 할 때도 있었고, 유럽과 남미로 떠나는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꿈꾸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나는, 이런저런 이유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저 때 묻지 않은 용기만으로 살아가자 하며 나를 다독이고 있었다. 서른 살 나는 내게 들리는 세상의 외침에 무엇으로 반응하며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꼭 세상으로부터 듣고 대답하며 살아가는 삶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푸른 하늘 위 떠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서른 살의 그날 푸르고 높은 저 하늘을 지붕 삼아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힘겹게 커피트럭을 몰고, 향긋한 커피를 내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 속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만나며 살고 있었다.
그런 지금이 좋았고, 하루하루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날들이 좋았다. 어찌 보면 가진 것 없어도 물질 앞에 흔들리거나 억눌리지 않는 지금의 내 삶, 세상 그 어떤 아름답고 멋진 카페보다 길 위에 서 있는 작고 허름한'공간이'카페 에서의 삶, 배낭을 메고 떠나는 멋진 여행은 아니지만 내 삶과 당신의 삶을 내 어깨에 걸쳐 메고 떠나는 이 여행, 내 청춘과 삶을 이야기들이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지금의 나를 지키고 살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커피와 여행으로 그리는 내 청춘의 삶은 점점 꿈을 닮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공의 잣대를 어디에 두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 내가 내 의지와 바람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적어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떠날 때 마다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넨다. “당신이 바라는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과 닮아 있네요.” 하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동경이 되어 지고 때로는 꿈으로 여겨지는 삶 그 중심에 나의 '여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묻는다.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고, 떠날 수 있을까요? 나의 꿈을 나의 여행을 말이죠. 사실 내가 떠난 여행은 누구나 한번쯤 떠올리고 꿈꾸는 삶이기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나 이상을 꿈꾸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상과 그 것을 행동하는 사이에 그 의문점의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시대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어떤 명확한 정답을 정하길 원한다. 많은 사람들은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다름이 틀린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소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도,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 하지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를 마주할 때면 유행에 휩쓸려 쉽게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를 또는 우리들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8년 동안 회사원으로 살던 삶을 내던져버렸다. 내 나이 갓 서른을 넘겼을 때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다시는 직장을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느덧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여행자가 되어 살기로 결심했고, 책 속에서 만난 이야기 하나가 나를 여행자로 살게 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내 삶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누구나 물질 앞에서 힘든 일들을 겪는다. 나도 그 해 가을 너무나 힘이 들어 여행을 떠날 여유조차 잃어버렸다.
잠시 깊은 슬픔에 잠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소금포대를 나르는 일을 몇 주 하면서 여행경비를 만들기도 했다. 소금포대를 나르는 일은 고단한 일이었다. 땀이 아니라 습기가 찬 소금에서 녹아 흐르는 짜고 쓴 '간수'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소금포대를 집집마다 가지고가서 쟁이는 일도 너무나 힘든 이었는데,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직장생활 그만두고 뭐하는 거냐는 걱정 섞인 타박도 들어야 했다. 그들의 안부는 나에게 더 이상 안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가을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나 행복한 청춘을 살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내 청춘을 가엾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그 괴로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내게는 '여행'이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모은 돈으로 나는 다음 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이 여행을 했을 때 전국을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커피트럭을 타고 갈 수 없으면 '공간이'를 잠시 세워놓고, 배낭을 멘 채 버스와 지하철 또는 두 발로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 전 커피트럭여행을 그만두고 이제는 두발로 여행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이제는 여러 나라를 경유하며 비행기를 타고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서울을, 부산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하는 그런 뚜벅이 여행자가 되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내 감정을 글로 적으며 보낸다.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여행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하였고, 나 자신에게 주는 가장 즐거운 선물 같은 시간들이다.
매일이 여행이었으면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욕심인지를 알면서도 오늘이 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길 위에서의 2년, 내 삶은 매일이 여행이었습니다.
사실 제 여행은 별거 없었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감사하며 살기로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마음먹을 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매일이 여행이 된 것입니다. 세상은 '돈'이 최고라고, 그 길은 안 된다며 '돈(don't)'을 외쳐대지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나는 잘 살고 있답니다.
나는 잘 살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다시 꿈이 돼주고 그 꿈이 바라는 삶과 닮아 있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