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3 | [문화저널]
우리악기, 우리음악을 아십니까 1
짐대위에 올라 앉은 사슴이 보인다
두줄이 어울어내는 신비한 소리가 들린다
해금
심인택 우석대 국악과 교수(2003-09-19 09:49:55)
악기는 왜 만들었을까. 누가 만들었을까.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연주를 마치고 나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사람들은 사람 목소리와 가장 가깝게 어우러지는 소리를 내는 악기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악기가 존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민족이 있고 언어가 있는 나라는 그들이 아끼고 즐기는 독창적인 악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국제화 보편화라는 이름으로 그 민족 특유의 악기는 잊혀져 간다. 그 악기를 이용한 연주는 물론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곧 자기를 잊게 되는 것이고 더불어 그 민족의 장래까지도 잊게 되는 지름길이다. 민족정서를 대변하는 우리음악의 뿌리를 찾는 기획물로 우리악기와 연주 작품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앙증맞은 소리, 감칠맛 나는 소리, 가슴에 스며드는 소리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는 대개 활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해금은 소리가 깡깡댄다고 해서 '깡깽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깡깽이라는 말도 잊혀져가고 있다.
들리는 바로는 일제시대나 해방전후에는 시장에 가면 해금과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약을 파는 약장사들이 있는데 해금은 깡깽이 바이올린이나 양깡깽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바이올린이 수입된 후 깡깽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일반에게 해금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약장사들의 공로가 컸으리라 생각된다.
해금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기록으로는 1493년 성현이 쓴 '악학궤범'에 악기의 유래와 악기를 만드는 재료, 악기도해, 운지법 등이 자세히 쓰여 있다. 고려사악지를 보면 고려 고종(1214-1259)때의 '한림별곡' 6연 해금연주자에 해한 구절이 있다.
아양금 금 문탁의 적 종무의 중금
대어향 옥기향의 쌍가야고
금선의 비파 종지의 해금 설원의 장고
위 과야ㅅ 경 긔엇더하니잇고.
종지의 해금이라고 당대의 유명한 연주자의 악기와 이름을 노래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해금연주가 많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외래악기인 해금이 당부악기로 속하면서 향악 연주에 상용되었다고 악학궤범은 밝히었고, 고려사 약지는 향악기로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원나라의 침입이 해금을 빨리 일반화시키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아무튼 해금은 고려시대 때 널리 연주되고 뭇사람의 사랑을 받은 기록은 '청산별곡'6연의 노래에서 찾아진다.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 애정지 가다가 드로라
사슴이 짐대에 올아서 / 해금을 해거를 드로라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 노래에 유독 해금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도 해금연주가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마치 해금연주를 사슴이 짐대에 올라앉아 하는 것으로 표현한 이 청산별곡은 참으로 신선한 먹을 그려주고 있다.
신토불이라고나 할까. 악기 만드는 재료도 이 땅에서 자란 나무와 실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통은 대뿌리, 복판은 오동, 활은 말총(말꼬리), 실은 명주실 등으로 만들게 된다. 악기 만드는 재료는 아마도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해질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한 것 같다.
일찍이 해금은 향악으로부터 연주되었기에 향악과 외래음악 모두를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성장하였다. 이 말은 궁중음악과 민간음악 모두에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고려시대의 무용반주음악, 송의 사악(당악), 제례악, 대풍류(향피리 중심), 줄풍류(거문고 중심), 취타음악, 성악반주, 시나위, 민요반주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산조음악의 발달로 1960년대부터 해금산조가 독주음악으로 연주되기 시작하는데 한범수(1911-1984)가 대금산조와 남도가락을 엮어 만든 '한범수류 해금산조'와 지영희(1909-1970)가 경기 시나위를 중심으로 엮은 '지영희류 해금산조' 그리고 대금 산조아쟁의 명인 서용석씨가 구성하여 만든 남도가락 중심의 '서용석류 해금산조'가 해금만의 독특한 소리를 살려낸 작품이다.
다른 악기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합주음악과 대풍류(관악합주) 줄풍류(현악합주) 방중악(실내내악)등이 음악의 중심이 되었으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와서 독주음악인 산조음악이 발달하여 오늘날 독주음악의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특히 해금은 반주악기 이상의 효과를 갖지 못하다가 산조음악과 서양의 독주음악 덕분에 이제는 독주악기로 각광을 받고 있다. 다른 악기도 마찬가지이지만 소리가 작아 넓은 공간에서 연주하기가 편치 않았으나 이제는 오디오의 발달로 섬세한 소리도 스피커를 통하여 가슴에 촉촉이 젖어드는 해금 특유의 소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해금은 현악기이면서 관악기의 선율을 연주하는 특성으로 관악기로 편성되기도 한다. 해금이 관악과 현악 모두에 편성되는 이유는 악기의 구조가 두 줄로 되어 있어 오히려 관악 연주에 적합한 연주기법을 갖고 있고, 활을 사용하기에 지속음을 길게 낼 수 있어 현악연주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이런 문제가 자꾸 제기 되면서 활을 사용한다 해서 찰현악기로 소개되기도 한다.
한때는 해금악기가 몇 줄인가 하는 문제가 대학입시나 퀴즈에 출제되기도 했는데 바로 두 줄로 연주하는 악기가 유일하게도 해금류 악기뿐이고 일반적으로 두 줄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해금은 두 줄로 연주하는 악기이다 보니 모두에게 신기한 악기로 보였던 것 같고 악기의 형태에 비하여, 음역도 넓고 표현력도 풍부하여 요즘은 해금소리에 반했다는 사람이 많다.
연주자도 이제는 많아져 누구를 꼽을 수는 없지만 원로 연주자로는 국립국악원의 김천홍옹이 있다. 각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연주자들과 각 악단에만도 10여 명씩 단원이 활동하고 있으니 국립국악원, 서울 시립국악관현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충북영동국립구악관혁악단, 전북도국립국악단, 국립남원국악단, 경북도립국악관혁악단, 대구시립국악단, 전남도립국악단, 부산시립국악관혁악단 등과 민간단체를 합하면 근 200여명 정도의 연주자가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그 중에는 남이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는 사람이 생겨나게 된다. 해금의 독주곡과 협주곡 그리고 중주곡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되어 질 수 있다. 독주곡은 대학의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고, 협주곡은 큰 악단에서 정기연주회나 특별연주회에 공연되고 있다. 중주곡은 실내악단이나 그 밖의 무용음악 경음악으로 작곡될 때 해금을 유난히 많이 쓰고 있다. 해금곡 만을 쓰는 작곡가는 없지만 그래도 모든 작곡가들이 악기에 욕심을 갖고 있다.
다음은 해금독주로 나온 음반이다.
독자여러분들에게 한번쯤 감상을 권한다.
1. 해금 독주곡 집 - 김천흥 연주, LP, 성음
2. 해금산조(한범수류) - 심인택 연주, CD, 선경(SKC),국악 8집
3. 김영재 해금 작품집 - 김영재 작곡·CD, LP, 신나라
4. 해금산조(지영희류) - 홍옥미 연주, LP, 서울음반
5. 해금산조(지영희류) - 최태헌 연주, LP, 뿌리깊은 나무
6. 해금협주곡 - 김영재 편곡, 연주(중앙국악관혁악단 연주곡 6집), CD, 오아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