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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3 | [문화저널]
여성과 문화 대중가요 속 여성상에 대한 가벼운 고찰
여성문학연구모임(2003-09-19 09:48:48)
대중가요는 그 시대의 정신상을 재빠르게 반영해낸다. 그래서 '유행가'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들의 머리 속에 아직도 기억되는 오래된 대중가요들을 간단하게 살펴봐도 이것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가요사상 최초의 인기곡이라는 「사의 찬미」에서는 1920년대의 암울한 분위기를,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서는 육이오 당시 남편들을 전장에 내보내는 수많은 아내들의 절망을, 「슈사인 보이」에서는 미국문화의 상륙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와느 역으로 오히려 대중가요가 그 시대의 정신상을 양산해내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희망사항」이라는 노래의 가사 속에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라는 부분이 있다. 사실 김치볶음밥은 상에 올릴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그리고 찬밥이 많아서 처치 곤란일 때, 그 두 가지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는 요리법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나온 이후로는 마치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것이 여자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인 것처럼 인식하거나, 김치볶음밥과 여자다움을 직결시키는 사람이 생긴 것 같다. 대중가요의 이러한 이중적인 역할은 한 시대의 정신상을 살펴보는데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되게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듣고 자랐던,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는 노래들에서 여성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주로 '얼굴만 예쁘냐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어쩌고 하는 류의 것들이다. 그 시대는 분명 여성에 대한 의식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ㄷ데 요즈음 노래들에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아주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이 나타난다. 「희망사항」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노래는 '요구사항'이라는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가 나올 정도로, 그리고 노영심이라는 토속적으로 생긴(이런 표현을 써서 미안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아 온 서구적인 미인들과 영 다르므로)여자를 브라운관으로 불러들이면서 일약 대 스타로 만들기까지 했던 노래이다. 「희망사항」과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는 둘 다 노영심이 작사한 노래이다. 전자는 남성의 목소리를, 후자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가사에 약간의 보충을 가하면 '희망사항'보다는 '요구사항'이 더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김치볶음밥'을 특별히 '잘 만드는'요리 잘하는 여자, '웃을 때 목젖이 보'일 만큼 생기발랄한 여자, '멋 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원래부터 세련된 여자, '껌을 씹어도 소리가 안 나는'교양 있는 여자,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게 입는 센스 있는 여자, '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남자의 경제적 무능력함을 탓하지 않을 만큼의 경제력이 있는 여자, '내가 울적하고 속이 상할 때 그저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되는' 따뜻하고 포용력이 있는 여자,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바라는 온갖 것을 두루 갖춘 여자가 '요구'되고 있지를 않은가. 더군다나 이 노래는 이후로 농담반 진담반 종종 여성다움의 조건으로 제시되고는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이 노래가사의 일부분이라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여자들이라고 남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겠는가?「희망사항」이 변진섭의 인기를 배경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노영심 신드롬까지 일으킨 후 노영심에 의해 불려진 노래가 바로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이다. 이 노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남성들에게 '별걸' 다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요구사항'에 다름 아니다. 그 수많은 별것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모습까지도 기억'할 정도로 내게서 눈을 떼지 말아 달라는 것이며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 속에 숨은 표정까지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해해주는' 세심하고 포용력 있는 남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며 '나도 모르는 날 일깨워 주듯이 볼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싫증나지 않는 남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결국 위의 두 노래는 우리가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익히 보아왔고, 또 그것이 마치 올바른 여성상, 올바른 남성상인 것처럼 세뇌된 그런 여성상과 남성상에서 한발자욱도 비껴 서지 않은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소위 언더그라운드 그룹으로 브라운관에는 가뭄에 콩 나듯이 얼굴을 내비치면서도, 발표하는 음반마다 히트곡을 내는 「공일오비」의 노래들은 훨씬 건강한 편이다. 위에서 말한 두 노래와 특히 홍서범이 막춤과 함께 유행시킨 「구인광고」와 비교해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백육십 센티미터의 키에 사십오 킬로그램 몸무게, 웨이브진 갈색머리 하얀 손, 날씬한 허리와 다리'를 가진, 완벽한 외모를 갖추기만 하면 무조건 괜찮다는 식의 태도는 아니다. 그들의 노래는 그간의 노래들에서 나타났던 여성상과는 미묘한 차이를 나타낸다. 여성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난다. '나보다 못난 남자들이 다 예쁜 여자와 잘도 다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능력 없음을 한탄하고 '괜히 콧대만 세'게 구는 여자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신인류의 사랑」). '어디서 뭐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 거'냐고 항변하는 걸 보면 아직은 그들이 '예쁜 여자'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 한 상태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노래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꼭 그렇게 여성들에 대해 속물적인 요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애교 있는 목소리 해맑은 웃음으로 포장된 모습'을 하고 '허황된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나 찾는 현대여성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이제는 다시 생각을 해'볼 것을 요구한다. (「현대여성」 또한 남성들에 대한 비판도 놓치지 않는다. '좋은 매너보다 군림하는 것이 남성적이라고 하'고 '그녀 생활에는 간섭하고 자기 행동은 남자라는 한마디로 용납해 버리'는 남성들의 권위적인 모습을 간파해내기도 한다.(「그의 비밀」). '여행도 못 가게하고 모임에도 못 나가게 하면서' 여성을 소유하려 하는 남성들에 대한 질책도 잊지 않는다(「남자들이란 다」). 여성들 위에 군림하려 하거나 여성들을 소유하려 하는 남성들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희망사항」)에서 보여지는 요구 많은 남자보다는 훨씬 더 건강해 보인다. 위의 노래들에서 보여지듯이 여성과 남성에 대한 시각은 확실히 변화되고 있다. 이는 분명 그간 여성운동이 이루어낸 의식의 변화와 여성들 스스로의 변화를 반영해내고 있는 것이 게다. 하지만 비교적 건강한 의식을 보이는 공일오비도 단지 현재의 보습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정도의 지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노래는 이제 여성들과 남성들 모두 서로에 대한 건강한 시각과 정립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변화의 몫은 전반적으로 우리 모두의 것이다. 여성문학연구모임 / 93년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문학, 드라마, 영화 등 문화에 나타난 여성문제를 비판하고 개선,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단체로 여성이론, 문학이론 등을 토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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