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3 | [문화저널]
옛말사랑
꺽저기탕에 개구리 죽는 꼴
김두경 서예가(2003-09-19 09:44:45)
지난 겨울은 약간 아쉽기도 했지만 몇 년 만에 겨울다운 겨울이었습니다. 예년에 비하여 추위도 좀 있었고 눈도 제법 내렸으며 길도 얼어 부어 불편하고 사고도 많았지만 아이들에게는 모처럼 신나는 겨울이었을 것입니다.
짜증스러웠거나 즐거웠거나 어느새 겨울은 훌쩍 지나가고 개구리가 잠을 깬다는 경칩이 내일 모레입니다. 원래 경칩은 사람에게나 개구리에게나 똑같이 따뜻한 봄소식을 전해주는 시절의 한 길목이었을 테지만 요즈음 개구리들에게는 경칩의 의미가 겨울보다 더 춥고 살벌한 절기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따사롭고 평화로운 봄을 꿈꾸며 잠을 깨 나오는 개구리를 무차별로 살상하여 우리의 입맛과 향락의 욕심을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아직 부화되지도 않은 개구리 알까지 훑어 먹는 만행을 서슴지 않으니 개구리에게 경침의 의미는 피튀기는 사바세계를 넘어 아비규환의 지옥이 아닐런지요. 이즈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런 일이 어디 개구리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던가요.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초토화되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온전한 것이 없이 짓밟히는 세상인데요.
옛 말씀에 "꺽저기 탕에 개구리 죽는 꼴"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꺽저기탕을 끓이는데 꺽저기가 희생될 뿐 개구리 목숨과 무슨 관련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꺽저기탕에 개구리 죽는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에 생목숨이 희생됨을 비유한 말씀이지요. 위대한(?) 인간들의 향락을 위해서 하찮은(?) 개구리 좀 잡아먹는데 웬 잔소리냐 하시겠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요. 문명이 발달하여 산업사회가 될 수록 각종 공해와 인간 위주의 남획, 남벌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그 영향이 이제 인간에게 직접 미치고 있다는 거 모르실 분 안 계실 것입니다. 금수강산이라 했던 이땅에서조차 마음 놓고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도 우리가 함부로 홀대하는 이 땅이 우리시대에 우리가 버린 쓰레기, 우리가 저지른 모순에 묻혀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우리의 후손들은 그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그들이 당할 처참한 지경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꺽저기탕에 개구리 죽는 꼴 아니라고는 못할 겁니다. 생각해 보면 실로 엄청난 잘못을 인간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입맛에 달고, 우리의 새끼들이 귀엽고 예쁘다고 지금 우리가 함부로 홀대하는 개구리 한 마리가 장차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이제는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문명의 화려한 불빛 뒤에 생기는 그림자속에 우리가 묻혀버리고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의 귀여운 자녀들이 덤으로 묻혀버린다는 사실을. 진정 좋은 옛 말씀 가슴 깊이 새겨 모두가 따뜻한 봄날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