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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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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지식인의 생태 보고서
김경태(2015-06-01 11:52:09)

전직 배우인 '아이딘'은 자신이 소유한 여러 채의 집에서 세를 받고 아울러 호텔까지 경영하면서 틈틈이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는 부르주아 지식인이다. 그는 한 참 어린 아내 '니할'과 알콜중독 남편과 이혼한 누이 '네즐라'와 호텔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네즐라는 아이딘의 칼럼이 현실에 무지한 지식인의 말장난이라고 비판하자 아이딘은 무력하게 사색에만 빠져 살며 남을 비난하는 네즐라의 삶의 태도를 비난한다. 그리고 니할은 자신이 준비해온 자선사업에 그동안 무관심했던 아이딘이 뒤늦게 참견하려들자 매사에 의심하고 냉소적인 그의 태도를 꼬집으며 그를 떠나고자 한다. 반면에, 네즐라가 전남편의 잘못을 그냥 참고 다 받아줬다면 그가 스스로 뉘우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를 하자 니할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며 냉정하게 일갈한다. 

 

물질적인 부는 그들로 하여금 지적인 언어와 냉철한 논리로 도덕과 양심의 가치를 설파하면서 상대방의 허물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지식 권력과 문화 자본을 소유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와 논리는 혀끝에서만, 혹은 종이 위에서만 맴돌 뿐이다. 아이딘은 자신의 칼럼에 대한 칭송으로 시작하는 편지에 혹해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주고자 하지만 정작 너무 가난해서 집세를 못 내고 있는 자신의 세입자에게는 지저분하다며 못마땅해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행하는 모든 악행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네즐라는 고작 아끼는 컵을 깨트렸다는 이유로 가정부의 월급을 깎고자 한다.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속물성과 자기기만이 그대로 노출되는 순간들이다.

 

집세를 못내 수금업자들에게 폭행을 당한 아버지 '이스마일'에 대한 복수로 그의 어린 아들이 아이딘의 차창에 돌을 던진다. 재산도 지적인 언어도 없는 나약한 어린 아이가 그 모두를 가진 강자에게 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은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핑계와 변명이 많은 어른들과 달리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의 삼촌은 일리아스에게 용서를 구하는 의미로 아이딘의 손등에 키스를 하라고 강요한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졸도를 한다. 가식적인 타협이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즉 더 이상 저항의 몸짓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차라리 그의 몸은 기절이라는 유사-죽음을 선택한다.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니할은 남편 몰래 그가 준 거액의 기부금을 이스마일에게 사과의 의미로 건넨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간간히 베푸는 선행은 부자와 빈자로 나뉜 부조리한 체제의 부당성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는 자기 최면이다. 그것은 그 체제를 별 탈 없이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 빈자들에게 던지는 얄팍한 미끼이다. 부자와 빈자라는 이분법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그 구분선을 만드는 기준인 돈의 논리를 거부해야만 한다. 이스마일에게는 거액을 선뜻 증여하는 자선가의 호의조차 양심의 가책을 덜면서 그 논리를 강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결국 그는 니할이 준 돈을 벽난로에 불태워버리고 놀란 니할은 오열한다. 그의 아들이 그 모습을 담담하게 문틈으로 지켜본다. 그렇게 빈자들은 부자들이 구축한 세계를 무너뜨린다.  

 

이스탄불로의 여행을 위해 호텔을 나선 아이딘은 그 계획을 포기한 채 돌아왔고 떠날 것 같던 니할은 여전히 머물러 있다. 아이딘은 니할을 향한 사랑을 재차 확인하고 그의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는 터키 카파도키아의 수려하고 웅장한 겨울 풍광과 그곳의 일부인 듯 어우러진 호텔을 익스트림 롱 쇼트로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배경으로 물러서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인간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자연이 그제야 전면으로 나선다. 도덕과 양심이라는 덕목을 내세우면서도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채 이기적인 말과 행동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인간들을 전부 감싸 안으며, 자연 앞에서 그들의 지성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보여주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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