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만의 특별한 여행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만난 '여행'의 별거 없음을 나누고 싶기도 하구요. 만약 당신에게 ‘여행’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이야기 하실 겁니까? 어느 날, 찾아온 이 물음이 나의 여행에 던져졌습니다. 사람들은 여행을 말할 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서울에서 떠난 여행이 부산 또는 제주도에 다다르며, 때로는 유럽을 향해 대륙을 넘어 물리적인 위치를 이동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랜 역사와 이야기들을 만나고,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 앞에서 숙연해지는 시간들 조금 더 나아가 그들의 다양한 문화와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는 합니다.
물론 저도 그런 여행을 합니다. 그렇게 떠나, 그렇게 살아 온 시간들이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여행은 조금은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저 나의 의지대로 살아 갈 수 있는 '단 하루의 여행'이죠. 내가 살아가는 지금의 일상에서 작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길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맹목적인 떠남(여행)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제 주위의 흔한 여행자들의 모습 중에는 여행의 참된 가치보다는 자신의 현재를 벗어나려는 도구로만 여행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떠난 여행지에 자신의 아픔과 상처들을 버려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곤 하죠. 하지만 다시 돌아와 행복을 느끼고 잘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여행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지금이 힘들고, 사람 때문에 상처 되고, 물질이나 환경적인 것들이 나의 현실을 마주하게 할 때 목적 없이 그저 바다를 건너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하루에서 나만의 시간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떠남은 언제나 나에게 옳은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오늘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오랜 여행 후에 돌아와 스스로를 다시 가시밭길 같은 세상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착각을 하게하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 오랜 여행 뒤에도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내 하루의 단편적인 '일상'에서 그 일상을 잠시 유보(留保)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만들어진다면 저는 그것이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루를 여행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누구든지 하루짜리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일상을 떠난 것만이 여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영역에서 잠깐의 일탈도 충분히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은 그리고 하루짜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 제가 만나는 감정들을 기억하려 노력합니다. 그 기억은 메모하는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이어리에 끼적이던 나의 기억은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같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기억 저장소를 가지게 되었죠. 하지만 아직도 다이어리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나의 감정들을 기억해내곤 합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여행으로 바꿔 놓게 되는 '그놈의 감정'이란 것들은 어떠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사건을 만남으로 인해 삶이 쓰여 진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여행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저는 사건(事件) 또는 계기(契機)라고 표현합니다. 저에게도 수많은 계기(사건)가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믿는 신을 알게 된 계기가 있고, 고물 커피트럭을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떠한 계기로 취미를 가지게 되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꿈을 꾸게 되기도 하죠.
그러한 수많은 감정들 중에 '왜 나는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있지, 왜 나의 꿈을 위해 가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지 못할까'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유를 찾아보려 했었고, 그것들이 내 삶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여행하길 거듭하면서 그 수많은 이유들 중에 결국 내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꿈에 대해 도전하지 못하고 좌절할 때, 그 이유를 다른 것에서 찾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은 나에게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저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균형 잡힌 삶은 사실 나로부터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오만함이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그 편견이 저에게는 오늘 하루를 가치 있게 그리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구가 오늘도 나 때문에 잘 돌아가고 있다는 감정들을 내 안에서 알아차렸을 때 저는 자긍심을 만나고 뿌듯함을 선물 받았으니까요.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남에 대해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모든 것을 내 안의 자아와 만나게 하려고 애를 습니다. 때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을 쏙 빼닮아가려고 노력하기도 하죠.
하지만 스스로 얼마나 공부하며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무엇보다 홀로 떠난 저의 여행에 정말로 감사한 것은 나를 공부하고,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것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외롭지 않느냐고 늘 물어봅니다. 그 안에는 제 부모님의 죽음을 연결시키곤 하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외롭기 마련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듯이 말입니다. 외로움을 지나고 더욱 깊은 외로움의 끝에 '고독함'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고독함'에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 지인 중에 한분이 제게 외로움과 함께 '고독력(孤獨力)'이 느껴진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고독함은 힘을 가지기도 하는데요. 그것을 '고독력'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내 안의 감정들과 내적인 모습들에 저 자신을 집중하게 만듭니다. 내가 떠난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지금은 내적인 요소들이 외적인 것들의 객(客)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스스로를 알지 못한 채 남의 삶을 공부하려만 하고, 남을 더 알아가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하지요. 우리 모두는 고독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그 고독함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외로움, 슬픔, 아픔, 고독이라는 단어들 뒤에 힘'력(力)'자를 붙여 보세요. 외로움은 외로움력, 슬픔은 슬픔력, 아픔은 다시 아픔력 이라는 단어가 되어 지죠. 신기하게도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단어들이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힘을 싣게 될 때 이것들이 힘을 가질 때 우리는 더욱 강한 삶의 여행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하루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당신은 오랜 여행 뒤에도 자신의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가시밭길 같은 세상에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꽃밭'이 되길 바라는 것 그것은 자신의 하루에 만족하는 것이며 이 하루가 여행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