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는 설정은,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다. 눈을 가리고 맛을 보면 결과가 달라지듯, 가수의 얼굴을 가린 채 노래를 들으면 똑같은 노래라도 다르게 들린다. 그 어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로지 목소리의 매력과 실력으로만 승부를 겨룬다는 의미에서 <복면가왕>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KBS <불후의 명곡>과 JTBC <히든싱어>를 섞어 놓은 듯한 MBC <복면가왕>이 '베끼기'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을 밀어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복면’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수들의 노래 경연에 '복면' 하나 추가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 복면 하나가 의외로 커다란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재미면 재미, 반전이면 반전, 그리고 감동까지. <복면가왕> 속 '복면'은 넘쳐나는 노래 예능에 있어 충분히 차별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껏 방영된 <복면가왕>의 가장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아이돌이다. 노래를 겨루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아이돌이 빛을 낸다는 것은 다소 의외지만, 이 또한 '복면'의 힘이다. 퍼포먼스 중심의 댄스곡과 섹시콘셉트를 벗어나 오로지 목소리 하나만으로 승부를 겨룬다면, EXID 솔지, 에프엑스 루나 같은 아이돌 멤버도 얼마든지 주목받고, 또 '재발견'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시청자는 재미를 넘어 희열을 느낀다. 만약 '복면'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들이 <나는 가수다> 출신인 장혜진을 꺾고 '가왕'에 오르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비단 두 사람만이 아니다. B1A4 산들, 애프터스쿨 출신의 가희, 그리고 지나까지. 그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여본 적 없는 시청자들은 이들이 선보인 의외의 무대와 노래 실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이돌을 그저 '비디오형 가수', 혹은 '기획된 상품'이라 바라보던 시선은 어쩌면 단순한 '편견'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승리를 더 많이 했다고 해서, 그리고 '가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장 노래를 잘 부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노래를 잘 불러도 정체가 금방 드러나면 떨어지기도 하며, 반대로 실수를 저지르거나 실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져도 일단 판정담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좋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 이는 비록 경연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복면가왕>이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출연자들은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대신 때로는 목소리를 바꿔 부르며 시청자를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해주는 누군가를 통해 힘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매주 <복면가왕>에는 아이돌, 기성가수, 뮤지컬 배우를 비롯해 개그맨, 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연예인들이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다. 그들에게는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새로운 도전인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이 또한 '복면'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다.
<복면가왕>의 이러한 '편견 타파'는 홍석천에 이르러 더욱 눈부신(?) 성과를 거둬냈다. 지난 17일 방송에서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 홍석천은 평소 자신의 목소리를 숨긴 채 중저음의 음색을 뽐냈고, 어떤 기성가수 못지않은 흥겨운 무대를 만들어냈다. 비록 다음 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판정단은 그의 정체에 대해 매우 궁금해 했고, 그가 가면을 벗자 스튜디오는 발칵 뒤집어졌다. 가면에 가발까지 더한 홍석천의 속임수(?) 덕에 누구도 그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시청자들 역시 홍석천의 음색과 노래실력에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편견에 부딪혀 좌절한 분이 많은데 내가 그 중 1번 2번은 될 거다. 이렇게 편견을 갖고 보지 않으면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게 '복면가왕'의 매력인 것 같다."
홍석천의 출연 소감에서 볼 수 있듯, 편견을 걷어내면 훨씬 더 많은 것이 보인다. 그것은 매력일 수도 있고, 실력일수도 있다. 또한 개성일수도 있으며 가능성일 수도 있다. 역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편견이라는 벽 앞에서 실력과 가능성, 매력과 개성을 놓치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사회에는 더 많은 '복면'이 필요하다. 지금도 나이와 지역, 그리고 학교와 성별이라는 편견 앞에서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복면가왕>이 더 많이 편견을 깨트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