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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 | 연재 [20대의 편지]
지속가능한 삶이란 가능할까?
배상현(법전원 준비생)(2015-06-01 09:48:08)

'행복' 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학교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쳤다. 딱히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다른 특출 난 특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여느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삶을 지속했었다. 그러던 와중 중3 즈음에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러던 중, 내 시야에 한 친구가 눈에 걸렸다.

같은 반에 감정제어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바로 그 친구였다. 곧잘 문제를 일으키곤 했지만 마음씨는 착한 아이었다. 한번은 모의고사 시험을 칠 때였는데 정상적인 학생들조차도 시험이라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그 아이는 오죽 했을까. 결국 마지막 시간에 일을 냈다. 그 친구는 시험지를 찢으며 돌출 행동을 보였고,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은 여 선생님은 곧바로 그 아이에게 훈육을 가하기 시작했다. 충격이 컸기에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담임선생님은 절대 권력의 소유자였고 같은 반 친구들과 나는 미처 자아정체성이 성립되기 전의 미성숙한 존재에 불과 했으니까.

그때 처음으로 교육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공부하는 학교가 정상적인 공간인가에 대한 의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결국 대안학교로의 진학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곳은 내가 생각하는 공간과 완벽하게 부합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합리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이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또한 다른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철학이란 수업을 통해서 장래의 진로에 대한 방향성을 잡는데 도움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대안으로 나온 학교조차 인생에 대한 완벽한 대안 주지 못했고 결국 일반 학교를 나온 학생들처럼 대학에 진학해야할 운명이었다. 대학을 가지 않고도 충분히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잠시나마 믿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당장 일자리 대부분이 대학교 졸업장을 원했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의 시선이었다.

인간은 혼자 살아 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 흐름에서 빠져 나온다는 것은 어린나이에 큰 모험이었고 잠시의 일탈을 뒤로 하고 결국 나도 남들처럼 대학에 입학했다.

모두들 그랬듯이 토익학원을 다니고 공모전을 찾아다니고 조금이라도 스펙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을거라 굳건히 믿었다. 하지만 졸업 후 행복은 없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찰리채플린이 나왔던 ‘모던타임즈’ 영화에 나오는 기계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 하는 게 전부였다.

행복을 찾기 위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달려온 결과가 그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시간을 돈과 교환하며 죽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엔 그만 두었다. 그 결과 불투명한 미래와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과정이고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우리 세대를 게으르고 나약한 20대라고 낙인찍었다. 요즘 세대는 단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살았을 뿐이고 그 결과에 따른 고통은 홀로 짊어지게 되었을 뿐이다. 한 두 명이 겪는 일이라면 그들만의 문제겠지만, 20대의 대다수가 겪는 문제기에 이제는 더 이상 무마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좀 더 합리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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