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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 | 연재 [읽고 싶은 이 책]
위를 봐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게 하는 그림책들
장형진(2015-06-01 09:45:40)

필자는 나이 사십에 처음 그림책을 폈다.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그림책을 보배와 같은 자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그 계기였다고나 할까.
필자가 그림책을 보면서 만나게 된 보석과 같은 책이 한 권 있다.
그 책은 '생명을 살리는 한 권의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바로 『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라는 책이다.
책에서 이 책의 저자 야나기다 구니오는 "그림책은 인생에 세 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주장하며 그림책을 읽는 세 번의 시기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아이였을 때, 다음에는 아이를 기를 때, 그리고 세 번째는 인생 후반이 되고 나서,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읽는다는 점이다.
요는 생애를 통해 그림책을 손에서 떼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야나기다 구니오 선생은 25세 아들의 느닷없는 자살로 인한 인생에서 혹독한 겨울의 시기에서 그림책을 우연히 만난 사례이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이 인생의 사계절과 풍상을 겪은 성인 어른들 중에서도 그림책을 찾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필자는 야나기다 구니오 선생의 "그림책이란 어린아이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림책이란 영혼의 언어이며 영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소설이나 시도 그렇지만, 그림책의 내용도 나이를 먹을수록 맛이 깊어진다. 그림책은 넓고도 깊다. 요는, 읽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구하려고 그림책을 집어 드느냐에 있다"는 말을 빌려, 그림책을 어린아이들만 읽는 것으로 단정 짓거나 한정짓지 않기를 감히 바래볼 뿐이다.
오늘 함께 읽어볼 책은 처음 그린 책으로 2015년 볼로냐어린이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은 정진호가 혼자 그리고 쓴 『위를 봐요!』라는 그림책이다.

겉표지부터 보자면 요즘 촬영장비로 자주 보이는 드론을 이용해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사람들의 길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흰 여백을 배경으로 검게 드로잉으로 표현된 사람들의 모습이 단순하지만 일상의 삶을 앞만 보며 담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 중 하나 유일하게 위를 보고 "위를 봐요!"라고 말을 거는 아이가 하나 있다.
그 아이는 앞만 보고 살기에 바쁜 이들에게 가끔 하늘을 쳐다보기를 요청한다.
"위를 봐요!"라고 외치는 그와 눈을 맞추면 자연스레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책을 펴면 그가 누구와 눈을 맞추고 있는지 그 비밀이 드러난다.
그림책에서 나는 '수지'라는 여자 아이다.
가족여행 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차는 바퀴를 잃었고, 나는 다리를 잃게 된다. 그 때 이후로 나는 휠체어를 타고 아파트 위에서 바깥풍경을 내려다보는 외로운 소녀가 된다.
소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얼마나 높은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개미 같아'라고 읊조릴 뿐이다.
길을 지나가는 이들은 그저 빠르게 빠르게 지나갈 뿐이다.
길에는 아이들과 강아지가 놀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소녀는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밑을 바라보는 소녀의 바람은 단 한가지니 지나가는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바라봐 주는 것이다.
'위를 봐요!'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소녀의 가장 큰 바람이었던 것이다.
이때 기적이 일어난다.
겉표지에서 '위를 봐요!'라고 외쳤던 그 아이가 수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소녀에게 묻는다. 왜 내려와서 놀지 않고, 내려다만 보고 있느냐고.
소녀는 무덤덤히 대답한다. "다리가 아파서 못 내려간다고" 그저 지나가는 이들의 머리꼭대기만 검게 보일 뿐이라고.
이때부터 소년은 바짝 땅에 등지고 드러눕는다.
이제부터 수지는 검은 점이 아니라 사람 '인(人)' 전체의 모습으로 그 소년을 보게 된다.
지나가는 이들이 하나 둘 이 소년의 낯선 돌발 행동에 의아해 하며 물어보더니,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함께 땅바닥에 드러눕는다.
모두 드러누워 '위를 봐요!'라 한다.
둘이 하트를 그리며 누워 있는 이도 있고, 자전거도, 애완견도 모두 위를 향해 누워 있다.
비로소 수지도 위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 마지막 그림은 가로수 나무에서 꽃이 펴고, 수지가 있었던 고층 아파트 베란다 자리에 놓인 화분에서도 새싹이 돋아나 있다.
그럼 서로 눈을 맞추던 수지와 소년은 어디에 있는가?
가로수 나무 밑에 앉아 유일하게 위를 보고 방긋 미소 짓고 있는 그 소년이, 소녀와 함께 있다. 휠체어가 소녀의 옆에 놓여 있으니 그 소녀간 누군지 힌트는 충분한 것이리라.
여기서 우리는 명쾌하게 알게 된다.
수지가 불편해했던 것은 자신의 불편한 다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낯선 시선을 불편해 했던 것임을.
위를 보고 땅에 드러눕은 소년이 소녀의 그 불편함을 놓아 준 것임을.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정진호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평면의 그림으로도 충분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다름 아닌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말한다. 감히 이야기하건데 필자는 이 여행을 기꺼이 도와줄 책이 있으니, 그것을 '그림책'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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