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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2 | 연재 [문화칼럼]
농촌은 없다
문순태(광주대교수·문예창작과)(2015-05-28 17:49:59)


 요즘 자동차를 타고 국도를 지나면서 바라볼 수 있는 농촌의 모습은 얼핏 도시를 닮아가는 것 같다. 별장같은 양옥들이 들어서고 반듯반듯하게 뚫린 마을길로 자가용들이 쉴새없이 드나들고 있다. 마을 주변에는 호사스러운 가든 식당들이 즐비하고, 산수가 괜찮다 싶은 시골에는 어김없이 도시의 호텔못지 않은 대형 모텔들이 눈에 띈다. 얼핏보아 그림같이 아름다운 논촌풍경으로, 여유가 있는 도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할 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IMF한파가 몰아치기 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농촌에 자리잡은 가든식당이나 모텔을 찾는 자가용들이 줄을 이어 도시처럼 벅신거리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그림이 괜찮다 싶은 농촌의 땅은 도시의 돈 많은 사람들이 거의 점유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농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사실 빈껍대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지금의 농촌은 살림이 거덜난 가난한 여인이 얼굴에 온갖 싸구려 화장품을 덕지덕지 찍어 바르고, 헤프게 웃으며 허탈하게 퍼지르고 앉아있는 꼬락서니와 같다. 보기에는 그럴듯할지 모르지만 실속은 어설프고 허망하기 짝없는 꼴이다.

 그나마 겉만 번지레한 농촌에 가보면 농촌만이 가지고 있어야 할 문화가 없어 더욱 안타깝다. 하기야 농촌문화가 없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농촌문화가 그 자취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농촌에 가 보면 전혀 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가 없다. 기껏해야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정도이다.

 가난했던 60년대까지만해도 농촌에서는 마을마다 정월 한달 내내 징소리가 요란했다. 그런데 지금은 설이나 추석과 같은 대명절에도 농촌은 자동차 클랙슨 소리만 울릴 뿐, 마냥 을씨년스럽기만하다. 읍에라도 나가야 농악대 구경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왜 이렇게 우리들의 고향이 순식간에 변질되어 버린 것일까. 70년대에 들어 이른바 산업화의 영향으로 이농현상과 함께 농촌이 황폐화하기 시작했고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문화도 함께 매몰되고 만 것이다. 건조한 삶 속에서 농민들이 내일을 꿈꿀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문화 전문일들이 많았다. 북, 장고며 꽹과리 잘 치는 사람, 소리 잘하는 사람, 상여소리 잘 하는 사람, 춤 잘 추는 사람, 재담이며 이야기 잘하는 사람, 글 잘하는 사람, 붓글씨 잘하는 사람, 토정비결 잘 보는 사람, 방구들 잘 고치는 사람, 바느질 잘하는 여인네, 요리 잘하는 여인네, 고기 잘 잡는 사람, 상 고치는 사람, 테멜꾼 염장이, 씨름꾼 등.... 모두 저마다 나름대로의 재주가 있었고, 이런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비록 가난했지만 그 공동체 삶속에 흥겨움과 믿음과 사랑과 행복이 있었다.

 명절이면 이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자기네들의 재주를 마음껏 드러내 서로를 즐겁게 해주려고 하였다. 염장이는 사람이 죽으면 몸을 사리지 않고 나서서 염을 해주었고, 붓글씨 잘 쓰는 사람은 정월이면 집집의 대문마다에 입춘대길을 써붙여주었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궂은 일 좋은 일에 마을 사람들이 다 나서서 더불어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또 농한기 사랑방이나 아낙들 길쌈방에서는 오늘날의 마당놀이나 구경거리들이 많아, 고단한 삶 속에서도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진정한 공동체의 찐득한 삶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가버렸는가. 사람이 죽으면 염장이는 고사하고 상여소리 할 사람도 상두꾼도 없다. 징소리도 들을 수 없고 토정비결을 봐 줄 사람도 없다. 징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1년에 한차례 시·군에서 주최하는 향토문화제나 도에서 여는 민속경연대회가 고작이다. 그것도 해마다 똑같이 정해진 놀이에다 정해진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볼거리의 소재도 한정되어 있어 도무지 신명이 나지 않는다.

 우리 농촌이 이렇듯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황폐해 버린 이유가 어쩌면 <신앙의 상실>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농촌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믿음의 대상이 사라지고 없다. 옛날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믿고 마을의 평화를 빌었으며, 집집마다에는 신주단지를 모시고 가정의 건강과 평화를 빌었다. 부엌에는 조왕신, 안방에는 삼신, 뒷간에는 측신 등 마을과 집안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고 정성을 다해 이들 신을 믿고 마을과 집안의 안녕을 빌었다. 그 믿음이 공동체의식을 두텁게 했고 마을의 문화를 만들고 유지시켜주었다.

 70년대 이후 산업화 영향으로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버려 농촌은 문화공동화현상을 낳았다. 그리고 정부가 오랫동안 농촌을 버려두어 경제적으로 피폐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의 상황을 맞게 되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여러차례 되돌아오는 농촌,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날이 갈수록 농촌은 더욱 찌들어져 갔고, 오늘날처럼 도시 사람들이 풍요의 오물 찌거기를 남기고 가는 가든식당이나 모텔이 농촌을 차지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진정한 농촌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요즘 IMF 한파 때문에 도시에 나갔나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다시 농촌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농촌 사람들이 다시 농촌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농촌을 지키며 살기가 독립운동하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는 요즘,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워해야할 일인데도,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그들은 농촌에 영원히 정착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어려움을 피해 온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IMF를 이겨내자는 말을 한다. 물론 고통스럽기 하겠지만 이 경제난국은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IMF 경제대한 때문에 농촌의 어려움은 뒷전으로 밀려버린 듯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IMF한파를 피해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이 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농촌의 공동체와 문화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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