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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3 | [저널초점]
문민정부 1년을 본다 문민시대가 아닌 문화의 시대이다
김원호 기린봉산대 전통예술연구소장(2003-09-19 09:36:49)
이른바 '문화시대'이다. "세계는 문화시대", "Culture War","우리문화의 세계화, 세계문화의 우리화"등등의 제목으로 매스컴에서는 근래 들어 부쩍 문화특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문제인 경제와 그것의 이해적 갈등의 표현태인 정치는 일상적 담론체계에서 실종된 지 '이미 오래전'인 것처럼 느껴진다. 세계를 떠받쳐왔던 양대 진영중 현실 사회주의 진영이 낮은 평등에 대한 이념적 단순주창과 관료적 매너리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그 진보성이 일견 소진된 것, 그리고 그 후 전지구적 자본주의화가 이루어지고 자본의 무정부성을 우려한 강대국들이 중심되어 새로운 정치-경제-문화적 블록(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그리고 이른바 환태평양 블록 등)을 형성하여 전 세계적인 새로운 시장질서를 재편한 것, 이 두 가지가 이른바 문화시대를 만들어낸 결정적 이유이다. 물론 이 배경과 바탕에는 생산력의 급격한 제고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존재한다. 이러한 강대국 독점자본주의 초국적 이해놀음을 N이해 후진국들이 애꿎게 강제 편입된 좋은 예가 바로 우루과이 라운드'UR'이다. 아다시피 우리나라의 대중인식과 대중심리로는 UR에서 마치 농산물 강제 개방문제가 가장 주요한 이슈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농업과 농촌은 타격이지만 이 점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는 UR이 갖고 있는 자본증식의 세계적 본질과 그 먹성 좋은 다양성을 제대로 간파하는데 초점이 흐려 질 수 있다. 국민들이 개방반대를 외칠 때 뒷전에서 그 반대급부의 실속을 조용하고도 차분히 챙겨가는 독점자본의 그 냉혹한 사회적 이해태도까지도 읽어야 하며, 무엇보다 지적 소유권 개방을 필두로 엄청난 문화개방의 파고가 있음을 보다 냉철하게 읽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UR을 반대하는 저변에는 당장의 경제적 이해만이 아니라 경제 외적인, 오랜 농경문화 속에서 버려진 전통적 가치인식의 근본바탕이 붕괴되는데서 오는 자기정체성의 뿌리 없어짐에 대한 불안이 심층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문화개방의 여파는 엄청나다. 문화산업의 시대답게 문화자체의 상품화로 인한 새로운 시장개념이 형성되고 있고, 당연히 이를 준비해온 강대국에 의해 이 신종 '골드러쉬'는 주도된다. 세계의 10대 문화상품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TV프로, 영화, 비디오, 디자인, 레코드. 만화영화, 컴퓨터게임, 음악, 발레 박물관, 미술관, 미술품, 뮤지컬인데 컴퓨터게임의 세계시장은 年36조원 규모이며, 역사유적의 보고라 불리우는 이탈리아의 경우 한 해 동안 관광객 수가 6천30만 명에 이르고 이들이 뿌리고 간 돈이 12조원에 달하며, 세계 미술시장의 양대 경매회사인 미국의 소더비와 영국의 크리스티의 경매총액은 21조, 세계 3대 미술시장인 뉴욕, 런던, 프랑쿠르트의 거래규모는 40조 규모이며, 미국의 3대 네트워크(ABC, CBS, NBC)의 한해 매출액은 88조이다. 뮤지컬을 하는 뉴욕의 브로드웨이극장의 입장객은 8백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유명 프로야구팀이 한 해 동안 동원한 관객보다 많은 숫자이다. "1960년 이후 일본은 2백 개 이상의 박물관을 새로 건립했고 독일은 지난 10년 동안에 약 3백 개의 박물관을 추가했다. 영국에서는 18일마다 한 개씩의 박물관을 지었다. 미국에서는 과거 15년 동안 오페라 관객이 3배 이상 늘어서 87-88시즌에는 1천 700만 명이 되었고 신작 초연도 1백41편에 달했다."(「조선일보」94년 1월1일자 45면) '제돈 받고 인기도 누리고 상품판매도 촉진하는' 일석삼조의 효과, 나아가 국가이미지를 높이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것, 그래서 국제경쟁의 새 주력상품화 시키는 것. 이것이 문화산업, 정보화 시대라는 전지구적 문민시대의 문화전략이자 정책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다. UR은 체결되었고 문화의 개방화는 한국에서도 점점 가속되고 있다. 영화의 UIP직배싸움은 이미 흘러간 옛이야기이고,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실명화되면서 용산전자상가 전체가 흔들거렸고, 해외유학시험지인 TOEIC이 한 출판사로 독점계약되는가 하면 지난 1월에는 한 민간극단이 7억원의 제작비를 들이고도 흑자를 기록한 뮤지컬「아가씨와 건달들」이 지불한 원작에 대한 로얄티가 7천만 원이었다. 지구상에서 결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제 브라암스에게 결혼행진곡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경제에서 보면 아직 우리나라의 교역적 피해는 새 발의 피이다. 따라서 그만큼 더, 전세계 영화 시장의 교역5위권에 드는,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문화적 가나안 땅인 한국의 문화시장은 보다 치밀하게 공략당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문화환경 속에서 이른바 우리 문민시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에서의 문민시대란 정권의 성격이 민간출신이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붙여진 이름인 것이지 인본(人本)이 꽃피는 계절이 도래했다 라는 것은 아니다. 물질운동의 변화에 조응하는 상부구조의 성격이 '다소'달라진 것에 대한 별호(別號)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한 사회구성체의 상부구조를 반영하고 제어하는 힘이 파시즘적 억압장치에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그 중에서도 문화로 그 중심이 옮겨갔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당연히 생산력 발전에 의해 사회의 토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극히 정권의 입장에서 사물이 설명되는 질서가 문화라는 담론이 중시되는 시대라는 성명이 정확하다. 물론 이 문민정권의 시대는 과거의 군사독재 시절보다는 분명 '시민적으로'발전하고 있는 시대임에 틀림없다. 다시 질문항을 고쳐보자. 이러한 문화시대에 '문민정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언제나 우리에서 촌철살인의 '웃음과 칼날'을 선사하는 『한겨레신문』박재동 화백의 2월16일자 만평을 보면, "UR 자기것 떼내기"라는 전시장에 다른 나라 대표들은 각각 큰창자일부, 허파꽈리 일부, 막창자 일부를 떼어놓고 있는데, 우리의 문민시대 대표 김영삼은 쓸개와 간에다 콩팥, 위장까지 떼어놓고 남의 전시물을 ;어벙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쌀을 뺀 농축산물을 통째로 내준 꼴이 된, 속 빈 강정의 협상결과에 대한 일갈일터이지만 농축산물이 아닌 문화시장이 문제는 더했으면 더했지 못할 리는 만무일거라는 당연한 걱정을 새삼 앞세우게도 한다. 문민정권의 태도, 즉 그들의 정책이 고스란히 설명되는 한 컷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국가의 문화정책이란 한마디로 자본의 뒷정리를 국가가 해주는 역할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자본이 무정부적인 자기 중식을 통해 쏟아내는, 엄청난 발전 속도의 자생적 문화발전을 그 관리기구인 국가는 감당해낼 수가 없다. 당연히 이미 발전되고 있는 것을 뒤늦게나마 정리하거나 확산시켜주는 일 이상을 해내지 못한다. 이제까지의 모든 정권의 문화정책이라는 것이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라는 것도 이윤창출의 산물이자 목적인 것이지 문화의 의식적 육성이 진보적 인본으로 계획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될 수가 없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민시대의 문화정책이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문화부 관료 정도가 자본을 수습하는 문화정책의 협소한 틀에 갇혀서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문화환경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조차 해내기가 어렵다. 우리는 '문민시대'의 1년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 운동의 전반적인 변화가 만들어낸 전세계적 문화시대를 조망해보는 틀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신식국 독자 문화산업의 정치경제학을 철학, 경제학, 정치학, 미학 등 전반적인 차원에서 따져보는 일일 텐데 이는 지면상 다음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정보화사회에서 문화산업의 위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문화는 문화상품으로서의 교역적 가치뿐 아니라 가치관과 사회인식의 변화라는 비교역적 가치의 위력이 더욱 엄청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질까지도 바꾸어내는 이 자본-문화공세를 이겨내는 민중적 웅전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다음 두 개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겠다. 영화로서는 그리 잘되었다고 볼 수 없는 「서편제」에 200만 명의 관중이 넘게 몰린 것은 영화에 대한 열광이라 기보다는 근래 들어 급속하게 바뀌는 부정적 문화지평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내고자하는 민중들의 자생적 문화 실존의식의 발로이다. 즉 역사적으로 항상 그래왔듯이, 모순을 야기시키는 부정적 작용에 대해 민중은 반작용을 적극적으로 해내면서 그 모순을 진보적으로 발전-승화시켜왔던 힘을 이 문화시대에도 힘들게 재현하고 있다라는 사실에 다름 아닌 것이 바로 서편제 신드롬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UR과정에서 프랑스 국민이 보여준, 문화적 전통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아다시피 전세계 영상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미국의 개방압력을 문화의 특수성(specificity)을 내세워 거부해낸 것이다. 다른 것은 양보하더라도 문화와 정신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들고 싸웠던 것이다. 한 해에 천여 개씩 찍던 멕시코 영화가 영화개방 이후 서너 개를 제외하곤 전부 헐리우드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과 극명히 비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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