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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 | 연재 [촌스런 이야기]
사연을 품고 와서 추억을 안고 돌아가는 집, 순창 금산여관
버려졌던 폐가를 명품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시킨 홍성순씨
편집기획팀(2015-05-07 11:45:48)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225번지, 한적한 골목길을 돌아 들어가면 낡은 아크릴 간판이 달린 한옥을 만나게 된다. 흰색 바탕의 간판에는 예전에 목욕탕이나 여관을 나타냈던 빨강색의 ♨ 기호와 함께 ‘금산여관’이라는 상호와 전화번호가 쓰여 있다. 가수 최백호가 부른 유행가 가사가 떠오를 만큼 ‘그야말로 옛날식’인 촌스러운 간판이다. 이 오래된 한옥집이 여행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순창의 새로운 명소 금산여관이다. 여행자들에게 ‘홍 대빵’으로 통하는 홍성순(49)씨가 이 집의 주인이다.

 

하늘을 보며 살고 싶어서 돌아온 고향
순창이 고향인 홍성순 씨는 20여 년 동안 전주의 백화점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했었다. 11년 동안은 아동복을 팔았고 9년 동안은 아웃도어 브랜드였는데, 홍 씨의 매장은 해마다 서울에 있는 백화점들을 빼고는 전국에서 선두를 다투는 매출을 올렸다. 나중에는 매장의 연간 순수익이 1억 5천만 원에 달했고 ‘최우수서비스상’을 포함해서 백화점에서 주는 상이란 상들을 모조리 휩쓸 정도로 ‘잘 나가는’ 점주였다.
그렇게 잘 하고 있던 장사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하늘이 보고 싶어서’였다. 백화점에는 하늘도 없고 창도 없다. 일단 백화점 안에 들어온 고객들이 낮인지 밤인지,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를 잊은 채로 쇼핑에만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말로 하늘이 그리웠어요. 흰 눈도 맞아보고 봄바람도 느껴보고, 그렇게 살고 싶어진 거죠.”

 

“꿈은 바로 내 앞마당에 있더군요”
백화점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동안에도 홍 씨는 이미 여행의 베테랑이었다. 백화점을 벗어날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렸다. 휴일 전날 영업이 끝나면 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려가 아직 막차를 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떠났다. 그렇게 전국의 구석구석을 누볐고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도 다녔다.
길 위의 그에게 늘 아쉬웠던 것은 값싸고 편안한 숙소였다. 호텔이나 펜션은 너무 비쌌고 유흥가에 밀집한 모텔들은 여성 여행자에게는 내키지 않는 잠자리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게스트하우스였다. 게스트하우스로 고쳐 쓸 만한 낡은 여관 자리를 찾아서 전국을 뒤지고 다녔다. 되도록 읍내의 터미널 근처에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 여행자들도 쉽게 들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답은 뜻밖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계시는 어머니를 돌봐드리기 위해 고향 순창에 자주 들렀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지금 이 자리를 발견했어요. 1938년에 지었다고 대들보에 쓰여 있으니까 76년 된 집인데 1960년대부터 한 삼십 년 동안 여관이었다가 12년째 비어 있었다더군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꿈은 바로 내 앞마당에 있었던 거죠.”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을 끈 것은 마당 한가운데의 자목련이었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 마당에도 있었던 자목련의 기억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특별히 돈 궁한 일이 없으니 팔지 않겠다는 집주인을 꼬박 넉 달 동안 쫓아다니면서 설득한 끝에 이 집을 살 수 있었다.


25톤의 쓰레기를 치우며 흘렸던 눈물들
그러나 터를 장만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 말이 그렇지 12년 동안이나 버려져 있던 폐가를 다시 ‘사람 사는 집’으로 되살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우선 쓰레기가 문제였다. 비워둔 채로 오래 있다 보니 동네사람들이 갖다버린 온갖 쓰레기들로 집 안팎이 가득 차있었다. 쓰레기들이 대문을 막고 있어서 이웃집의 옥상을 통해 담을 넘어서 드나들어야 했고, 트럭으로 실어낸 쓰레기가 무려 25톤이었다. 집안의 기둥들이 썩고 벽이 허물어진 곳까지 있어서 원형을 보존하면서 수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내로라하는 리모델링 전문가들조차 손을 내저으며 차라리 헐어내고 새로 짓는 편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고 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시간과 비용이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들었다. 공사 도중에 돈이 부족해서 전주에 있는 집을 서둘러 팔아야 했다. 그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작년 7월을 잊지 못한다. 전주의 집에서 빼온 이삿짐들을 여관마당 구석에 되는 대로 쌓아놓고 비닐로 덮었다. 속옷 한 벌 갈아입고 라면 한 그릇 끓여 먹으려 해도 빗속에서 비닐을 들추고 짐을 뒤져야 했다. 예고 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인부들을 일찌감치 돌려보내면서도 품삯은 하루치를 주어서 보내야 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오후였어요. 비 때문에 인부들을 돌려보내고 혼자서 낑낑대면서 잡동사니들을 치우다가 지쳐 마루에 앉아 있었어요.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순창읍내에 얻은 원룸에 지친 몸을 눕히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던 시절이었다. 20여 년 동안 매장을 운영하면서 내공을 쌓고 혼자서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근육을 길러둔 덕분에 그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9월 드디어 금산여관을 열었다.

 

느리게 가는 금산여관의 시간
금산여관의 구석구석에는 세월이 깃들어 있다. 녹슨 철대문과 이끼 낀 바닥 돌, 그 옛날의 ‘서울다방’ 로고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커피 잔까지 되도록 옛 금산여관 시절의 낡은 것들을 그대로 쓰고 있다. 허물어져가던 부엌의 먼지 속에서 뒹굴고 있던 밥그릇과 숟가락들을 찾아내어 몇 번씩 삶았다. 여관의 본채인 금산헌 앞 토방의 60년대식 ‘타이루’는 한 조각 한 조각을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엔틱’ 좋아하는 복고풍 트렌드에 영합해서 겉멋을 부리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뽑아내지 않았어요. 수십 년의 세월과 12년 동안의 외로움을 견뎌온 것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죠.” 세월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는 그 마음씀씀이가 참 곱다.
낡은 한옥의 원형을 지키면서 만든 게스트하우스이다 보니 신식 건물의 편리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법도 하다. 이런 곳을 찾아와 머무는 사람들은 대개 ‘편리함’보다 ‘편안함’을 좋아하는 이들이다. 잠자리도 ‘과학적인’ 침대보다 꽃 한 송이 수놓아진 옥양목 이불을 더 좋아한다. 그들에게 홍씨는 ‘홍 대빵’이다. 요샛말로 ‘포쓰가 쩌는’ 홍 대빵에게 이끌려 순창 5일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쑥 캐러 가자면 캐러 가고, 마당의 눈을 치우라면 투덜거리면서도 빗자루를 집어 든다. 생면부지인 손님들끼리 밤늦게까지 막걸리를 마시며 저마다의 사연보따리를 풀어내고, 마루에 들어오는 햇볕을 쪼이며 오전나절을 뒹굴 거리기도 한다. 그들은 빼곡한 일정으로 명승지를 휙 돌아보고 가는 ‘관광객’들이 아니라, 느릿느릿한 시간을 즐기러 온 진짜 ‘여행자’들이다.
그러다보니 문을 연지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도 제법 많은 단골들이 생겼다. 단골을 넘어 아예 ‘마니아’ 수준인 이들도 더러 있다. ‘콴타스틱’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여행전문 블로거는 반년 동안 열 번도 넘게 이집을 찾았다. 이름도 생소한 ‘조지아’라는 나라에 이민 가서 살고 있다는 한 남자는 금산여관의 뜨듯한 아랫목을 못 잊어 귀국할 때마다 일부러 순창에 들러서 묵고 간다. 게다가 이런 단골들은 좀체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다. 올 때마다 자신들이 아끼는 온갖 구닥다리들을 들고 와서 이집 구석구석에 제멋대로들 진열해 놓기도 하고,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놓고 가기 일쑤다.
“제가 수시로 고물상에 가서 뭘 주워오기도 하고, 단골손님들도 올 때마다 골동품 같은 걸 하나씩 들고 와요. 그러니까 이곳은 여행자들과 함께 만들고 꾸며가는 집인 거죠.”라며 활짝 웃는 홍 씨의 말마따나 금산여관의 ‘리모델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귀촌은 늙거나 병들었을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과 에너지가 충분히 남아 있을 때 와서 지역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죠.”
시골은 병을 고치거나 전원생활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홍 씨의 지론이다. 재능이든 아이디어든 자본이든, 자신만의 ‘어떤 것’을 갖고 와서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하고 지역에도 기여하는 것이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귀촌’이라는 것이다. 홍 씨가 순창읍내에 게스트하우스를 연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오랜 여행의 경험으로 여행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면서 지역에도 보탬이 되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여행객 대부분이 읍내에는 들르지 않고 강천산만 구경하고 가는 순창을 먹고 자고 놀다가는 ‘체류형 관광지’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낡은 금산여관 자리를 수리할 당시에 인부 한 명을 써도 순창사람만 썼고 못 하나, 전등 한 개도 순창에서만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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