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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 | 연재 [클래식 뒷담화]
밤의 달콤한 속삭임, 세레나데
문윤걸(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영상창업대학원 교수)(2015-05-07 10:54:23)

여성들의 로망 중 하나가 사랑하는 남자의 프로포즈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많은 남자들이 여성을 감동시키기 위해 다양한 프로포즈를 개발하고 있지요.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남자주인공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프로포즈, 또 작은 카페나 소극장을 빌려 추억 영상을 함께 보며 하는 프로포즈, 친구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는 이벤트 프로포즈 등 말입니다. 프로포즈 이벤트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가수 이승철은 <My Love>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로 실제 프로포즈 상황을 담아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구요. 이외에도 유투브에는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은 다양한 프로포즈 이벤트 영상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을 개발하던 프로포즈 이벤트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음악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 노래가 사랑의 묘약이 되나 봅니다. 유럽에서도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남성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노래를 <세레나데, Serenade>라고 하지요.
<세레나데>는 소야곡(小夜曲)이라 번역되어 불립니다. 해가 진 저녁이나 밤에 하는 작은 음악이라는 뜻인데요. 사랑, 저녁 등을 배경으로 하는 음악이니 서정적이고 달콤하며, 또 낭만적이고 따뜻한 기운을 주는 음악일 수밖에 없겠죠?   
<세레나데>가 언제 등장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13세기를 배경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에 <세레나데>가 등장하는 걸 보면 아마도 세속적인 사랑에 대해서 엄격했던 중세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등장했을 듯 합니다. 이것이 르네상스시대를 주름잡던 음유시인과 함께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을 거구요. 그러나 이때만 해도 제대로 된 음악적 형식을 갖추었다기 보다는 자유분방한 읖조림이었을텐데요 <세레나데>가 하나의 음악적 형식으로 정리된 것은 바로크시대 부터 입니다.
처음 <세레나데>는 마치 로미오가 숨어들어 줄리엣의 창문 밑에서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달콤한 시나 말에 선율을 붙여 기타나 만돌린, 류트 등 들고 다니기 쉬운 악기 소리에 맞춰 노래하는 간단한 형식이었습니다. 즉 짧은 시를 흥얼흥얼하는 차원에서 보컬라인을 만들고 자그마한 현악기로 가볍게 반주하는 형식이었던 것이지요. 이런 <세레나데>가 유행하면서 점차 전문적인 작곡가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내 복잡한 형식의 노래로 진화하여 하나의 음악적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성악곡으로 시작된 <세레나데>에서 성악이 빠지고 반주부가 점차 화려해지면서 독립된 기악곡으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구요.
성악곡 <세레나데>는 오페라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 보면 <아, 창문 앞으로>라는 세레나데가 나오는데 돈 조반니가 만돌린 반주에 맞추어 “오 사랑하는 이여, 창가로 와주오. 여기 와서 내 슬픔을 없애주오. 내 괴로운 마음 몰라주면 그대가 보는 앞에서 목숨을 끊으리…”라고 노래부르지요.
여기서 한 차원 더 발전하게 되면 성악곡 <세레나데>로 유명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세레나데>처럼 유명한 낭만적 연애 시에 곡을 붙여 독립된 예술가곡의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기악곡으로 된 <세레나데>도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지크, Eine kleine Nachtmusik>입니다. 이를 번역하면 ‘밤에 하는 작은 음악’이라는 뜻이니 말 그대로 ‘소야곡’이지요. 기악곡 <세레나데>는 하이든, 모차르트가 주로 많이 작곡했는데 고전주의 시대 이후에 주로 많이 등장합니다(<세레나데>로 가장 유명한 도시가 모차르트가 살았던 짤츠부르크입니다. 모차르트의 기악곡 <세레나데>가 얼마나 인기였는지 짤츠부르크 시민들은 앞다투어 모차르트의 집 창문 밑에서 모차르트의 <세레나데>를 연주하며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규모의 현악 또는 관현악 연주로 이루어지는데 심각한 내용보다는 밝고 경쾌하며 기분을 좋게 하는 음악적 분위기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악곡 <세레나데>는 지역, 사용하는 악기나 편성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대표적인 것이 흔히 야상곡(夜想曲)이라 불리는 녹턴(Nocturn)입니다. 본래 녹턴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밤의 여신, 닉스(Nyx)의 로마식 이름인 녹스(Nox)에서 비롯된 말로 가톨릭 의례 중 밤 기도 때 부르는 고요한 노래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꿈꾸는 듯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율이 낭만주의시대의 감성과 잘 어울려 낭만주의 작곡가, 특히 피아니스트들이 앞장서 녹턴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장르를 창출해 냈지요. 녹턴의 형식을 만들어낸 사람은 아일랜드의 작곡가인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입니다. 그는 20여곡의 녹턴 모음곡을 남겼는데 쇼팽이 이 작품에 깊이 감동받아 자신도 21곡의 녹턴을 남겼습니다. 쇼팽 이후 녹턴은 20세기에도 작곡되었는데 프랑스의 가브리엘 포레(Faure Gabriel, 1845~1924), 에릭 사티(Eric Satie 1866~1925) 같은 작곡가들이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밤의 분위기를 표현해 내었습니다.
또 다른 기악곡 <세레나데>로는 여흥 또는 기본전환, 즐겁게 놀기 위한 음악이라는 의미를 가진 희유곡(嬉遊曲)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가 있습니다. 디베르티멘토는 바로크시대 이후에 등장하여 18세기 후반에 유럽,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성행했던 음악으로 예술적 성격과 오락적 성격을 겸하고 있는 일종의 사교음악입니다. 주로 소규모의 실내 음악곡으로 귀족들의 저녁 식사시간이나 식사 후 오락시간, 또는 잔치나 축하연에 연주하는 음악이니 미뉴엣 같은 춤곡이 포함된 가볍고 즐겁고 분위기 띄우기 좋은 음악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이든이 50곡, 모차르트가 37곡의 디베르티멘토를 남겼는데 모차르트 이후 작곡가들에 대한 귀족들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귀족 중심의 오락적 음악인 디베르티멘토도 점차 사라졌습니다.
<세레나데>가 사랑과 깊이 관련이 있는 음악인만큼 사랑에 빠진 작곡가들은 자신의 심경을 담은 <세레나데>를 많이 작곡했습니다. 베토벤은 평생의 연인이었던 줄리에타를 생각하며 20대에 두 편의 <세레나데>를 작곡했고, 브람스 역시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클라라 슈만을 위해 세 편의 <세레나데>를 작곡했는데 20대에 작곡한 <세레나데>는 클라라의 생일선물로 바쳤고, 또 다른 한 곡에서는 달밤에 사랑을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그렸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곡에서는 연인에게 매정하게 거절당하는 쓰라림을 표현하는 <허무한 세레나데>를 작곡해 클라라 슈만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애닯아 했답니다.
차이코프스키도 평생의 후원자이자 연인이었던 폰 메크 부인과의 사랑이 절정에 달하던 무렵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작곡했습니다. <사랑의 인사>로 유명한 에드워드 엘가 역시 <현을 위한 세레나데 e단조>를 작곡했는데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 <사랑의 인사>를 작곡했듯이 이 <세레나데> 역시 세 번째 결혼기념 선물로 아내에게 준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레나데>는 관현악 편성이 커지고 교향곡이 클래식 음악의 중심이 되면서 점차 쇠퇴해 갔습니다. 차이코프스키나 드보르작, 가브리엘 포레, 에릭 사티 등이 몇 편의 <세레나데>를 작곡하면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 대신 새로 작곡되는 <세레나데>는 많지 않지만 이전에 작곡된 <세레나데>가 워낙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며 때로는 밤이 주는 신비로운 분위기와 달콤한 상상력을 한껏 채워주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밤은 때로는 어둠 때문에 두려움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맑은 거울처럼 투명한 시간이어서 뒤를 돌아보는 그리움 또는 앞을 내다보며 갖게 되는 기대감 등 신비롭고, 상상력으로 가득한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레나데>하면 ‘창문을 열어다오...’ 하고 노래부르는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왜 꼭 창문 밑에 가서 노래를 했을까요? 그것은 당시 유럽 사람들의 집 구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집이 2층 이상이었고, 사람들은 1층이 아닌 2층에서 거주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으면 굳이 찾아갈 이유도 없이 전화기에 대고 속삭일텐데요. 비록 창문 밑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부르는 일은 없어졌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을 전하고 받는 일에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음악은 ‘사랑’과 잘 어울리는 것임에 틀림없나 봅니다. 그렇다면 좋은 음악을 서로 나누면 우리는 더 사랑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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