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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 | 연재 [내가 만든 무대]
지역문화자원에 스토리를 얹고, 브랜드를 입히다
전주마당창극 3부작
송은정(전주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2015-05-07 10:41:17)

기획자가 사랑에 빠질 대상은 ‘작품’ 아닌 ‘사람’
공연기획과 관련한 강의를 할 때마다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기획자는 자신이 만든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객관성을 잃게 된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수요자, 관객 관점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지속가능하지도, 공감을 얻기도 힘들 것” 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 작품을 론칭할 때 길게는 2년에 걸쳐, 짧게는 수개월 동안 하루 종일 ‘그 작품’만 생각하고, 고민하고, 회의하고, 실행하고, 수정하고, 또다시 실행하고...를 반복하는 밀도 높은 몰입을 거치고 나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한 문장을 더 보탠다.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성공률은 1%씩 올라간다”. 이 말인 즉슨, 현명한 기획자는 스스로 사랑에 빠져 허우적댈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작품과 사랑에 빠지도록 판을 잘 깔아줘야 한다는 뜻이다. 기획자가 사랑에 빠질 대상은 ‘작품’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매력적인 ‘구매결정요인’을 제공하다
전주마당창극 3부작은,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메고(2012, 춘향가 재구성, 조용안 연출),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2013, 심청가 재구성, 조용안‧정경선 공동연출), 아나 옜다 배갈라라(2014, 수궁가 재구성, 오진욱‧조용안 공동연출), 이렇게 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 다섯바탕 중 잔치대목이 들어있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를 선정해 80분짜리 마당창극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처음부터 ‘브랜드 및 레퍼토리화’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공연관광콘텐츠’인 만큼  공연컨셉, 공연내용, 홍보마케팅, 티켓판매, 부대 프로그램 등 모든 제작 프로세스를 관광객 눈높이에서 기획했다. 한 도시를 여행할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그렇게 해서 나온 컨셉이 ‘티켓 1장으로 누리는 3가지 즐거움’이었다. 전주마당창극 티켓 1장으로 ‘공연과 전통문화체험과 잔치음식까지 맛볼 수 있는’ 구성은 판소리와 창극을 낯설어했던 관광객들에게 꽤 매력적인 구매결정요인(Key Buying Factor)으로 작용했다. 고즈넉한 한옥 야외마당의 열린 구조,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무대와 객석간 거리, 조통달, 안숙선, 김영자, 이순단, 김성예, 송재영, 왕기석 등 내로라하는 국보급 명창들의 열연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는 특별함이 모여 2012년 첫 해 유료점유율 61%로 시작한 전주마당창극은 2013년, 2014년, 2년 연속 전회매진을 기록할 만큼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전주마당창극, 스토리를 얹고 브랜드를 입히다

전주마당창극의 첫걸음은 2012년 전라북도 공모사업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에 선정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옥, 판소리, 음식, 영상 등 전주의 다양한 문화자원을 융합한 전주 브랜드 공연을 기획하고 있던 차에, 때마침 비슷한 컨셉의 도공모사업이 생기면서 제작시기를 앞당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주마당창극의 제작과정이 순탄하고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전속극단과 단원이 없는 상태에서 연습과 공연까지 8개월 여에 걸친 과정을 소화해내기란 결코 녹록한 작업이 아니었다. 출연진 대부분이 몸담고 있는 소속단체가 따로 있다 보니 전체 연습일정을 조율하는 일부터 간단치 않았고, 3팀 내외로 출연팀을 꾸려 순환출연제로 진행하는 캐스팅 방식이다 보니, 연출진은 똑같은 리허설을 3번씩 반복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주마당창극이 전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극복해야할 강점이자 약점은 ‘원전에 기반한 작품’으로서, 관객들에게 ‘전주만의 색깔’을 얼마나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익숙한 스토리와 원곡의 아름다움은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반면, 전주만의 유니크한 스토리를 담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선보인 ‘아나 옜다 배갈라라’에서 용왕의 지병을 낫게 한 묘약으로 전주모주와 시원한 전주콩나물국밥을 등장시키고, 댓글 작업에 몰두하느라 자라목이 된 충신 자라, 우리 시대의 우울한 청춘들을 대변하는 삼포백수 토끼 등 현시대를 반영한 에피소드를 삽입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 작업은 원전의 익숙함을 유쾌하게 비틀어 전주마당창극만의 브랜드를 입히기 위한 연출진의 고민의 흔적들이었다. 이러한 작업의 중심에는 첫 해부터 극본과 총감독으로 참여한 곽병창 교수(우석대 문예창작과)와 왕기석 단장, 조용안, 정경선, 오진욱 연출이 있었으며, 이들이야 말로 전주마당창극 3부작을 완성시킨 일등공신이자 기획자적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그 누구보다도 작품과 깊은 사랑에 빠져있는 분들이라 확신할 수 있다.

2015년,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로 화려한 컴백   
올해 전주마당창극은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를 새롭게 각색해 오는 5월 23일(토) 부터 10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저녁 8시, 여름방학 특별공연 8회를 포함해 총30회를 진행한다. 차 없는 한옥마을을 위한 ‘에코 캠페인’도 함께 펼칠 예정이다. 곽병창 교수가 극본을, 오진욱 연출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당대 최고의 심봉사로 평가받는 왕기석, 송재영 명창과 그 뒤를 잇는 중견 소리꾼 정민영이 심봉사로 출연, 3인 3색 심봉사를 열연하고, 황봉사, 뺑덕, 안젤리나 역에는 유재준, 유태평양, 박현영, 이용선, 최경희, 박나래미 등이 출연해 막강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낼 계획이다.
올해 공연 장소는 전주한옥마을내 전통문화관 혼례마당이다. 전주천을 끼고 있고, 한벽루와 향교가 지근거리에 있을 뿐 아니라, 국립무형유산원과 승암산의 수려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오는, 마당창극 공연장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올해로 4년차, 한옥 경관을 활용한 ‘장소 특정적 공연(Site-specific Theatre)’으로서, 상상력의 한계를 두지 않는 공간의 재구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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