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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 | 연재 [TV토피아]
우리는 왜 '쿡방'에 열광하는가
박창우(대중문화 블로거)(2015-04-01 13:27:41)

우리는 왜 ‘쿡방’에 열광하나?

한때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을 타더니, 이제는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대세다. 쿡방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정글에서도, 섬에서도, 그리고 스튜디오 안에서도, 요즘 TV 속에선 너나 할 거 없이 모두가 요리를 한다. 배우도, 가수도, 모델도, 그리고 개그맨도. 잘생기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건 따로 있다. 바로 요리를 잘해야 프로그램을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전문 셰프까지 방송에 출연, ‘쿡방’의 인기를 부채질한다. 그야말로 전 국민이 ‘쿡방’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쿡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요리하는 남자’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예능은 ‘캐릭터 싸움’이다.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흥행이 갈린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하는 남자’의 경우는 다양한 캐릭터 변주가 가능해 활용도가 높다. 가령, 마초적 이미지인 차승원이 고무장갑을 끼고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면 ‘차줌마’라는 반전 캐릭터가 생겨나고, 최현석 셰프같은 전문 요리사가 마치 예능인처럼 허세 가득한 표정과 말투를 선보이면 ‘허셰프(허세+셰프)’란 친근한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차승원을 앞세운 tvN <삼시세끼>는 14.2%(이하 닐슨코리아)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케이블 방송의 역사를 다시 썼고, 최현석 샘킴 박준우 정창욱 이원일 등 셰프 군단을 앞세운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역시 4%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 종편이라는 한계를 넘어 순항중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쿡방’ 속 ‘요리하는 남자’의 매력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시세끼>, <냉장고를 부탁해>, <오늘 뭐먹지> 등 ‘쿡방’을 내세운 프로그램은 화려함을 추구하는 대신 친숙함을 무기로 삼는다. 한때 유행을 탔던 ‘먹방’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소재로 했듯, ‘쿡방’ 역시 돈을 주고 사는 값비싼 재료 대신 자연에서 직접 구한 식재료 혹은 냉장고에 잠자고 있는 채소와 과일, 고기 등을 기본으로 한다.
왜냐하면, ‘쿡방’ 역시 시청자와의 공감을 추구한다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쿡방’에 앞서 인기를 끌었던 여행 예능이나, 육아 예능이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여서다. 하지만 여행과 육아 예능에서는 때때로 방송과 시청자 사이에 괴리감이 발생하기도 한다. TV속 연예인처럼 시간만 내면 언제든지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혹은 넓은 집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시청자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반면, 요리는 소시민, 1인 가구, 젊은 세대 등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서 다른 예능보다 더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 게다가 기존 ‘먹방’이 ‘보는 것’에 그쳤다면, ‘쿡방’은 직접 요리를 따라하는 주체적 행위가 가능하다. 누구나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만큼, ‘쿡방’이야 말로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콘텐츠인 셈이다.
다만, 지상파, 케이블, 종편 할 거 없이 너도 나도 ‘쿡방’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씁쓸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TV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것에 비춰볼 때, 지금의 ‘쿡방’ 열풍은 역설적으로 현재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게 단지 ‘먹방’이나 ‘쿡방’ 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바쁘고 살기 힘든 세상 속에서 ‘쿡방’이 치유의 가치를 전달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쿡방’을 통해서만 힐링을 느끼는 사회를 건강하고 유쾌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쿡방’은 분명 예능의 가치가 뛰어난 콘텐츠다. 재미도 있고, 공감하기도 쉽다. 하지만 ‘쿡방’의 열풍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 안에는 ‘먹는 것’ 말고는 위로받을 게 없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 엿보이기도 한다.  
요리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며, ‘쿡방’은 늘 방송 콘텐츠로 우리 곁에 자리해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에 와서 ‘쿡방’에 열광하는 것일까. 먹고 살기 힘든 세상, 타인의 ‘먹방’과 ‘쿡방’을 통해 진정한 위로를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밥상의 양극화’라는 현실에서 찾아낸 또 다른 도피처는 아닌지,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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