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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인간의 새로운 유토피아 로봇을 숭배하라
김경태(영화평론가)(2015-04-01 13:26:45)

<채피>, 인간의 새로운 유토피아, 로봇을 숭배하라!

 

 

 

닐 블롬캠프 감독의 <채피>(2015)는 로봇 경찰들이 인간을 대신해 무장한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인간 신체의 외형을 닮은 강력한 기계-몸의 휴머노이드를 넘어 인간의 영혼과 감정까지 탑재한 로봇을 묘사한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SF영화의 새로울 것 없는 흔한 설정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감독은 전작들에서 외계인의 신체 일부와 결합한 인간(<디스트릭트9>)에서부터 첨단 기계 장치와 결합한 인간(<엘리시움>)까지를 보여줬다. 이는 인간에게 있어 부실한 신체는 늘 골칫덩어리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보철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채피>에서도 핵심은 로봇이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의 신체를 로봇이 대체하는 차원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스카우트’로 불리는 로봇 경찰을 만들어낸 ‘디온(데브 파텔)’은 국가의 범죄율 하락에 일조하며 회사에 막대한 익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게끔 설계된 로봇에 만족하지 못한 채 로봇이 창의적으로 사고할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즉 인간의 의식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것을 폐기처분 직전에 놓인 스카우트에 주입하면서 ‘채피(살토 코플리)’가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갱단의 볼모로 잡힌 채피는 그들의 유용한 범죄 수단으로 길들여지지만 디온과의 약속에 따라 인간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끝까지 간직한다. 그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인간을 배려하는 모습은 전직 군인 ‘빈센트(휴 잭맨)’가 스카우트와 같은 인공지능 로봇을 거부한 채 자신이 직접 조종하는 거대한 전투 로봇으로 무자비하게 범죄자들을 공격하는 모습과 정확히 대립된다.         

한편, 채피는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은 피부로 감지할 수 있는 촉각적인 체험이 아닌, 죽은 개의 모습에 대한 시각적 인식에 기인한다. 그로 인해 몸 안에 눌러 붙은 배터리의 방전으로 ‘죽음’과도 같은 작동정지의 위기에 직면한 채피는 삶에 대해 기이할 정도로 강렬한 욕망을 보여준다. 마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부드러운 살갗이 아니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삶에 대한 강한 의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의 마지막,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디온은 채피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을 로봇의 몸으로 전송하도록 내버려둔다. 채피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미안하다는 얘기로 그 순간을 무마하고 디온 역시 미련 없이 자신의 기계-몸을 쿨하게 받아들인다. 육체적 괘락을 포기한 채 기계-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인간-몸으로 유한한 삶을 사는 것보다 나은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도 없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육신에 대한 눈물과 애도의 순간도 없다. 영화는 인간-몸과 함께 죽어버리는 것보다 기계-몸 안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나아가 어쩌면 로봇으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암시까지 준다. 이처럼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영화의 궁극적 시발점은 로봇에 대한 선망이 아니라 인간 신체에 대한 불신이었음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하여 인간-영혼과 기계-몸의 결합은 완벽한 신인류의 탄생처럼 보인다.  

이제 심장박동의 정지는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보다 우월한 신체를 통해 재탄생할 절호의 기회이다. 영혼에게 있어 인간의 몸은 언제 파괴될지 모를 나약하고 위태로운 보호막이다. 인간 신체의 물질성은 그 빈약함으로 힐난의 눈초리를 받고 USB에 저장이 가능한 영혼은 새롭게 물질성을 획득한다.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천국이 아니라 로봇의 몸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바로 그 로봇이야말로 인간이 기다릴 수 있는 유토피아일지니, 영생을 원한다면 로봇을 숭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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