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대학 심리학과의 다이애나 케니 교수는 196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55년 동안 숨진 미국 팝음악가 12,665명의 사망원인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사고나 살인 같은 범죄로 사망한 팝스타 비율이 보통 미국인들보다 10배 가량 높았다고 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팝스타도 일반인보다 7배나 많았다네요. 특히 젊은 나이에 사망한 팝스타들도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록밴드 '도어즈'의 리드 싱어 짐 모리슨,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 R&B와 재즈를 혼합한 창의적인 스타일로 주목받은 영국의 에이미 와인하우스, 그리고 제니스 조플린, 커트 코베인 같은 불세출의 팝 아티스트들이 모두 27살에 요절했습니다(그래서 팝음악계에는 ‘27세 클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51세에, 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이 49세에 세상을 떴으니 이 또한 요절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팝스타들의 평균 수명은 일반인들보다 무려 25년이나 짧다는 놀라운 결과까지 발표했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의 사정은 어떠할까요? 1987년 9월 1일, 한 외신은 직업과 수명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밝힌 기사를 실었는데 이 기사에서 수명이 가장 짧은 직업은 언론인과 요리사, 수명이 가장 긴 직업은 성직자와 예술가라고 했습니다. 특히 예술가 중에서도 음악가, 음악가 중에서도 피아니스트와 지휘자가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유럽의 음악가들 중에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이들이 많습니다. 음악신동이며 최고의 천재로 꼽혔던 모차르트(1756-1791)는 35세에 죽었고,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슈베르트(1797-1828)는 모차르트보다 더 어린 31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 보다 더 빨리 세상을 떠난 이가 있었으니 이탈리아의 천재음악가 페르골레지(1710-1736)입니다. 그는 2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페르골레지는 단지 26년을 살았을 뿐이지만 <마님이 된 하녀>라는 오페라를 작곡함으로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형이 된 오페라 부파(희극적 오페라)를 개척한 인물인 동시에 아들 예수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심정을 담은 <스테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라는 작품으로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외에도 역사상 최고의 소프라노로 불리는 마리아 칼라스하면 연상되는 노래, <정결한 여신>이 등장하는 오페라 <노르마>를 작곡한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빈첸초 벨리니(1801-1835)는 34세에, 변방음악에 머물던 영국의 음악을 보편적인 코스모폴리탄(국제적) 음악으로 만들어낸 영국 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헨리 퍼셀(1659-1695)은 36세에, 서정적 선율과 우아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거장 멘델스존(1809-1847)은 38세에, 폴란드 출신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다채로운 상상력으로 빚어낸 음악을 섬세하고 가녀린 선율로 뽑아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피아노의 시인 쇼팽(1810-1849)은 39세에,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작곡해 독일 낭만오페라의 전통을 확립하고 민족적 성향의 작품을 주로 창작해 독일에서 민족적 영웅으로 대우받았던 칼 마이라 폰 베버(1786-1826)는 4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는가 하면 장수한 천재 음악가들도 많았습니다. 19세기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국민악파의 한 사람으로 <핀란디아>를 작곡한 핀란드의 음악영웅 얀 시벨리우스(1865-1957)는 92세까지 천수를 누렸습니다. 또 유럽 음악사에서 최고의 오페라 작곡자로 이탈리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오페라를 통해서 ‘비바 베르디’라는 찬사를 받은 주세페 베르디(1813-1901)도 88세까지 생존했구요. 이외에도 바그너 이후 독일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히며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페라 <살로메>, <장미의 기사> 등으로 독일 후기 낭만파를 대표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도 85세로 장수했습니다. <백조>로 유명한 까미유 생상스로부터 음악을 배워 <꿈을 꾼 후에> 같은 매우 기품있고, 세련되며 감수성이 충만한 부드러운 음악을 주로 작곡한 가브리엘 포레(1845-1924)는 79세 까지 생존하며 모리스 라벨 같은 훌륭한 제자를 기르는 등 프랑스 근대음악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사색과 명상음악의 대가였던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은 84세, 기이한 현대음악의 대가로 기존음악의 질서를 파괴하며 새로운 음악질서를 창안하며 아방가르드 음악을 대표했던 존 케이지(1912-1992)는 80세까지 생존했습니다. 또 독일의 현대 전위작곡가이자 끝없는 실험정신으로 클래식음악에 전자음악을 도입해 전자음악의 시초가 된 슈톡하우젠(1928-2007)은 79세까지 생존하였습니다.
19-20세기는 그래도 평균 수명이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으니 음악가들이 이전보다는 조금 더 장수할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평균 수명이 낮았던 17-18세기에는 70세만 넘어도 장수한 셈일 텐데 유럽음악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바흐(1685-1750)는 형제들이 모두 30세 전후에 사망했고 본인도 고혈압과 당뇨병 등을 앓았지만 65세까지 살았습니다. 바흐와 같은 시대에 활동해 음악적으로 쌍벽을 이뤘던 헨델(1685-1759)은 74세까지 살아 바흐 보다 9년을 더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바흐나 헨델 모두 엄청난 폭식가로 말년에 똑같이 심한 눈질환을 앓아 거의 실명수준이었고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려 말년이 행복하지는 못했습니다. 폭식가이자 미식가로 유명한 사람이 또 있지요. <세빌리야의 이발사>, <윌리엄텔 서곡>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인기남 로시니(1792-1868)입니다. 로시니는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폭식가였음에도 낙천적이고 유쾌한 성격 때문인지 76세 까지 장수했습니다.
이외에도 장수한 인물은 더 있습니다. 100여 곡의 교향곡을 작곡하며 유럽 고전주의 양식을 확립해 교향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1732-1809)은 77세까지 살아 자기가 가르쳤던 모차르트가 사망한 후에도 18년을 더 살았습니다. 또 쇼팽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기교가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꼽히며 당대 최고의 스캔들리스트였던 교향시의 아버지 리스트(1811-1886)는 71세 까지 살아 친구 쇼팽보다 무려 37년을 더 살았습니다. 하지만 말년에 사랑했던 딸 코지마가 바그너와 불륜에 빠져 부녀관계를 단절하고 지내는 등 외로움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생을 마쳐 끝이 좋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직업이나 일찍 사망한 사람도 있고 장수한 사람도 있고 그렇겠지만 19세기말까지 유럽음악사에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수명을 조사해보면 평균 수명이 무려 76세에 이른다고 합니다. 다른 직업군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장수한 셈이지요. 특히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들이 장수하는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음악가들은 왜 장수할까요? 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첫째,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이 주는 효과입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빚어내는 소리에는 자연의 소리에 담겨있는 알파(α)파가 많아서 클래식음악을 자주 접할수록 긍정적 에너지를 받게 되므로 인간의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는 것입니다(이는 태교음악, 음악치료가 성행하는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갑니다). 둘째,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등 연주자들이 연주를 준비하는 동안 받는 스트레스 보다 연주 후 받는 성취감과 행복감이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휘자나 독주자의 경우 음악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연주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어 성취감과 만족감이 더 크다고 합니다. 셋째, 음악은 매우 정적인 활동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많은 운동량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기적으로 건강에 필요한 운동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수명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많은 분들이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물론 듣기만 하지 말고 직접 연주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