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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 | 연재 [커피청년의 별별여행]
'인도 바닥'
김현두(커피트럭 여행가)(2015-04-01 13:11:50)

‘인도 바닥’

커피트럭 여행가 김현두

사람들은 제게 묻곤 합니다. 나에게 여행의 ‘목적’은 무엇이냐고. 하지만 사실 어떤 뚜렷한 목적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은 해보곤 합니다. 그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죠.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여행의 목적이 있나요?’ 라고 말이에요.

한번은 내 자신에게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것인지 물음을 던져 봤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궁금증이 풀린 것은 한참 뒤였던 것 같아요. 바로 '경험'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죠. ‘경험’이라는 것은 늘 놀라움을 선사해요. 내 생각의 영역을 넓혀주고 나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던 계기가 되었거든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경험한 것 안에서 사고를 하게 되며, 꿈을 꾸고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을 판단하고 어떠한 기준들을 들이대며 살아간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경험은 특히나 여행을 통해 바라본 세상과 인간들의 하루는 나를 조금 더 넓은 사고의 영역으로 인도하죠.
그것은 또 나를, 큰 시야를 갖게 하고, 숨겨져 있던 비밀스러움을 만나게 하기도해요. 가끔 또 다른 길로 나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주고, 더 큰 도전과 꿈을 꾸게도 하는 것. 그게 제가 여행을 통해 만난 진실한 한 가지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막연하게 네팔로 떠나 볼까? 마음먹었다가, 같이 가려던 친구와 일정이 안 맞아서 갑자기 인도로 방향을 돌렸어요. 그렇게 티켓팅을 하고 지금 이렇게 인도에서 원고를 쓰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죠. 정해진 대로 가지도 않았지만,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며 살았던 몇 년의 시간. 한국에서의 즐겁고 재미났던 여행도 많았지만, 다른 나라로 떠나는 여행은 그 이상의 신비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영어도 거의 못하는 내가 이렇게 여행하는 것 자체가 신기할 뿐이지만요. 이국적이라는 말 그대로 다른 느낌과 생활방식, 생김새, 음식과 같은 의식주뿐만 아니라 석양이 질 무렵의 색채와 하늘의 빛깔마저도 다른 모습이니까요.
물론 두려워요. 흔들리고 좌충우돌하기도해요. 외로움과 맞닿을 때도 늘 있었고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없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 에요. 한 권의 책을 집필할 수도 학생들을 만나 삶을 나눌 수도 말이죠. 하지만 어느 날, 알게 됐어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난 더욱 강해져 있고, 더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인도에 있으니 여기 이야기나 좀 해볼게요. 처음 인도에 들어와서 마주한 인도의 첫인상은 수많은 인파와 공해, 소음들. 어디를 가나 존재하는 더럽고 불결한 모습이었어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요. 하지만 어디 그것만이 이곳에 있겠어요? 그것뿐이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인도 땅을 찾아오지는 않겠죠.
인도는 그야말로 문화의 다양성이 넘쳐나는 곳 같아요. 그들이 입는 옷마저도 천의 종류와 화려한 색감들은 늘 저의 눈을 매료시켜요. 문화의 다양성은 다시 접근해보면 각기 다른 왕조들이었던 나라들이 수 천 년을 걸쳐 지금의 인도 대륙이 됐고, 다양한 종교 공동체의 공존 (물론 가끔 분쟁을 접하긴 하지만) 힌두교, 시크교, 가톨릭과 개신교, 말 안 해도 아시겠지만 수많은 신들이 있는 나라. 그 신들을 어디에서든 열정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 곳이 인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참 다양한 길거리 스낵들이 즐비하고, 북인도와 남인도의 좀 차별된 음식 다양함도 맛 볼 수 있었죠.

부자도 넘치지만 여전히 가난한 극빈층이 주를 이루는 나라이기도 해요. 아직도 카스트제도의 유산이 남아있으며, 신을 섬기고 사랑하지만 신이 준 자연까지도 사랑하는지는 의문이 드는 나라이기도해요.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는 모든 곳이 쓰레기통이랍니다. 어떤 교통수단을 타고 도로를 달려도 기차와 버스의 차창 너머로 쓰레기를 집어 던지는 사람들이 바로 인도였습니다. 신을 사랑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열정적으로 그 신을 추앙하지만 신이 만든 세상까지도 사랑하는지 의문이 드는 곳이, 제가 마주한 인도의 지금이었어요.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들은 그렇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인도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잊지 마세요! 어느 순교자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에 이런 표지판이 서 있었어요. “KINDLY MIND THE STEPS” 이 표지판에 적힌 말처럼 정말 인도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길을 헤매던 내게 20~30분 동안 같이 걸으면서 길을 알려주는 청년도 있었고, 기차예약이 유난히 어렵다는 인도에서 친절히 무료로 예약을 도와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도 있었죠.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던 점이 하나있었죠. 길 위에 즐비한 노숙자와 거지들이었어요. 혹자는 말하더군요. 제 3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바라볼 때 불쌍하게 봐서는 안 된다고요.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을 강요하고 관철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가슴 아프고 불쌍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선뜻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왜 내가 이 아이들을 가엾게 여겨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들의 가난함과 나는 홀로 여행을 떠나와 지금 호사를 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한편의 생각을 거부하고만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몇 주가 흐른 후, 눈이 유난히도 예뻤던 어린 소녀에게 5루피를 건네주는 나를 보며 왠지 모를 불편함이 찾아왔어요. 제가 그토록 경계하던 감정들이었죠. 사실 하루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10루피씩만 나눠 준다면 한 끼 식사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고작 몇 천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저는 또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그 때 알았어요. 난 참 부유하고 많은 것을 가졌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도 우린 늘 부족함을 이야기하고, 무언가를 갈망하잖아요.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이며 귀한 것인지 돌아보는 중이에요. 참 감사한 여행이죠.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은 불행할 것이다. - 세네카” 라는 말이 있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면 무엇 하나요? 자신의 지금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행복은 결코 찾아오지 못 할 거예요. 저는 만족하는 것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수많은 인도의 아름답고 거대한 성전 안에서 바라 본 세상은 소유와 무소유로 때로는 균형과 균형의 깨짐으로 이야기 되는 것처럼 보여요. 지금 만족하는 것, 그것이 나의 여행을 풍족하게 하며, 소유가 무소유보다 나음도 아니고 균형의 깨짐이 그저 흩어져 산산조각 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입니다. 무슨 철학자가 되기는 싫지만요. 이렇게 적고 떠드는 것은 생각 없이 사고하는 제가 더 싫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인도는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중이랍니다.

여행 중에 자전거를 빌려서 하루 종일 여행을 한 적이 있었어요. 때로는 트레킹을 하며 숲속을 거닐며 평화로운 하루를 지내기도 했고, 20시간 가까이 기차와 버스를 타고서 온몸이 피곤에 휩싸이기도 하면서 다리도 다치고 여기저기 영광의 흔적을 몸에도 남기는 중이에요.
그래서 며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었어요. 인도 라자스탄 주의 아름다운 피촐라 호수(Pichola Lake)가 있는 우다이푸르(Udaipur)를 도착했을 때 그래야겠구나 싶었죠. 숙소에 짐을 푼 다음날을 제외하고는 아침이 되면 호숫가에 나가 멍하니 앉아있으며 날마다 그림을 그리러 나오는 화가들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죠. 여행자들은 잘 가지 않는 골목을 누비며 사진기에 그 길을 담고, 혼자서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으며 셀카도 찍으며 그렇게 남는 시간에는 잠을 자고 커피를 마시곤 했어요. 그렇게 하루 이틀이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가져갔던 책도 그러다가 다 읽어버리고 나서는 먹고 자는 것 말고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철학자가 된 것 마냥 떠들지 않아도 끼니만 몇 끼 채우는 오늘이어도 너무나 감사했어요. 떠날 용기를 내어 지금 이곳에 왔으니 그걸로 나는 만족하고 있었죠. 저는 그래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어요. 때로는 조금의 물질과 세상의 관심도 받기도하고, 언제나 내 여행을 말하듯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됐죠. 때로는 가난한 적도 있었고, 가난하지 않아도 보았어요. 하지만 그 경험은 나를 부자로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강한 사람이 되게 하였던 것 같아요. 그날 성전에서 만난 아이의 눈망울을 보며 이런 생각을 적어봤어요.

“고민이 없어 보이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걱정이 없어 보이는 아이의 촉촉한 마음의 창을 바라보며,
그런 눈으로 살고 싶다며, 너의 그 모습을 닮고 싶은 오늘을 고백했었죠."

저는 오랜 여행 뒤에 더욱 더 잘 살기위해 여행을 떠나요. 더 사랑하고 더 아름다운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여행을 하죠. 떠남은 그래서 언제나 옳은 선택임을 저는 알게 됐어요. 그 안에서 늘 ‘사람’을 여행하죠. 지금 주어진 이 하루를 여행하는 것,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호수보다 머나먼 인도에서 끼적여봅니다. 나마쓰떼(Nam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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