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힌 tvN <미생>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땅 위 대부분의 청춘이 그러하듯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는 2년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회사를 떠나야 했다.
드라마는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망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장그래는 오차장과 함께 또 다른 출발선에 섰고, “혼자가 아니다”란 그의 독백처럼 드라마는 우리에게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일깨운다. 그것은 지난 20회 동안 <미생>이 직장인에게 줄곧 건넸던 위로의 연장선상이다.
지난 1년간 안방극장은 유독 직장인을 소재로 한 예능과 드라마가 꽃을 피웠다. KBS 2TV <개그콘서트> 속 코너 ‘렛잇비’, tvN 드라마 <미생>, tvN 관찰예능 <오늘부터 출근> 등이 대표적이다. KBS는 오는 1월부터 강호동을 앞세워 <투명인간>이라는 또 다른 ‘직장인 예능’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투명인간>은 오늘 하루도 힘겹게 버텨낸 직장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선사해주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위로가 넘치는 시대다.
하지만, 위로의 시선과 손길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디 ‘직장인’들 뿐일까. 힘든 것은 직장인만이 아니다. 게다가 드라마와 예능에서 주목하는 ‘직장인’은 사무실에 앉아 근무하는 화이트칼라 계층에 머무는 한계를 갖는다. 위로가 필요한 것이 과연 그들뿐일까?
유행처럼 번지는 직장인 예능과 드라마에서 그 개념을 노동자 전체로 확장시킨 것은 바로 MBC <무한도전> ‘극한 알바’ 특집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각각 빌딩 유리창 청소, 탄광 석탄 채굴, 굴 까기, 택배 상하차 작업, 콜센터 업무 등에 투입되어 다양한 세대와 직업군을 조명했다.
회사원들이 앉아 일하는 사무실의 창문을 닦는 사람도, 그리고 그들에게 택배를 배달해주는 사람도, 또 전화로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처리하는 분들도 저마다의 고충은 있기 마련이다. 굴을 까는 어머니들도, 석탄을 캐는 아버지들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하는 일은 달라도, 어쨌든 우리는 모두 힘겹게 오늘 하루를 버텨내는 ‘미생’이므로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노동자 전반의 삶을 다루기보다는 20~40대 화이트칼라 계층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그 콘텐츠의 주요 소비계층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TV속 콘텐츠가 건네는 위로는 충분히 따뜻하지만, 결국 그 위로조차도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고 또 보편적인 정서를 그려냄으로써 주목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가령, 웹툰 <미생>의 경우에는 장그래와 오차장이 함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분향소로 향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드라마에서는 아쉽게도 빠졌다. 직장인(혹은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버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보여주는 매우 인상깊은 에피소드 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선 이를 볼 수 없었다. <미생>이 대기업이 운영하는 채널을 통해 방영되고, 또 여러 자본이 투입돼 제작되었기 때문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위로가 필요한 이 시대 직장인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위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드라마를 보고 내 이야기라며 공감하고, 예능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때문에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 그리고 위로가 절실한 30~40대가 주 타겟층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에 첫발을 언제 내디뎠든, 그리고 어떤 곳에서 어떤 옷을 입고 일하든, 결국 위로가 필요한 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2015년에도 계속 될 이 ‘직장인 위로 콘텐츠’가 단순한 소비 콘텐츠를 넘어 진정한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고 감정을 소모하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눈을 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직장인’의 개념 역시 이제는 ‘노동자’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로가 필요한 것은 직장인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