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전의 화려했던 기억
미국 JFK공항에서 희대의 땅콩리턴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20여일 전인 2014년 11월 12일. 대한항공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2013년 9월부터 선보인 대한항공의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시리즈가 대한민국광고대상 영상부문 대상의 영예를 수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일 기업 최초로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4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이 캠페인은 유럽 여행과 관련된 10개의 주제에 대해 각 10개씩 총 100개의 후보지를 제시하고 소비자가 직접 순위를 정하게 한 참여형 광고캠페인이다. 30만명이 넘는 인원이 투표에 참여하고 대한항공 역대 캠페인 중 최고의 사이트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전년대비 유럽노선 매출 증가, 비수기 여행객 폭증 등 화려한 마케팅 성과는 물론, 정규방송에서 패러디가 등장하고 책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는 등 모든 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렇듯 대한항공은 최근 국내기업 중 자타가 공인하는 기업이미지 개선에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활동을 펼친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7년간의 화려한 외출
2008년 이전까지의 대한항공 광고라 하면 무조건 장거리 여행에 지친 남성에게 여성 승무원이 담요를 덮어주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해외여행=비즈니스’라는 컨셉으로 접근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신설 항공사인 아시아나에 비해 대한항공은 비즈니스맨이 이용하는 올드한 이미지의 항공사로 각인되어져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2008년부터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캠페인으로 시작된 대한항공의 변신은 대한항공의 타깃을 과거에 비해 열 살 이상 젊게 잡고, 행행기 자체가 아닌 여행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2008년 -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2009년 - 중국 중원에서 답을 얻다
2010년 여름 - 지금 나는 호주에 있다
2010년 10월 - 뉴질랜드로부터 당신에게
2011년 1월 - 일본에게 일본을 묻다
2011년 7월 - 우리에게만 있는 나라
2011년 12월 - 그때 캐나다가 나를 불렀다
2012년 5월 - 13시간 만에 만나는 아프리카, 케냐
2013년 봄 -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
2013년 9월-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등으로 이어지는 대한항공의 대변신은 결국 국내외의 수많은 광고제에서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2008 한국광고학회 주최 올해의 광고상
2011 트래블 위클리 선정 항공사 광고부문 금상
2011 서울영상광고제 TV CF 어워즈 그랑프리
2012 대한민국광고대상 TV부문 금상
2012 올해의 광고상
2013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종 광고제의 수상보다 더 고무적인 일은 대한항공이 그토록 바라던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의 획득일 것이다. 바로 2012년 ‘20대가 뽑은 최고의 브랜드’에 나이키, 캘빈클라인 진, 맥도널드, 스타벅스와 함께 항공사부분의 최고의 브랜드로 대한항공이 선정된 것이다. 광고계에선 이러한 일사불란하고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의 칼자루를 오너의 딸이 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바로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돌아와 2008년부터 대한항공 통합 커뮤니케이션팀의 전무로 대외이미지개선작업을 총괄해온 조양호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 전무를 일컫는 이야기다.
하루 만에 사라져버린 신기루
이렇듯 대한항공이 국내 최고의 광고 마케팅 상을 수상하면서 모든 기업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지 20여일 만에 대한항공은 창업 이래 최대의 시련인 땅콩리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도 조현민전무의 언니인 조현아부사장이라는 큰 딸로부터 말이다. 한 마디로 막내딸이 7년 동안 일구어놓은 이미지개선 작업을 언니가 하루 만에 찬물을 끼얹고 만 결과가 된 것이다. 국토부 조사 결과 만약 대한항공에 운항정지가 내려질 경우, 그 손실은 390억 원에서 4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대한항공이 어렵게 쌓아올린 이미지 개선작업에 들어간 비용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대략 1년에 대한항공이 쏟아 붓는 광고비가 500억원이라고 하니 지난 7년 동안 못 잡아도 3,000억 원 이상 투입 했을텐데, 이것이 물거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7년 전 보다 못한 그야말로 수퍼 갑(甲)질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으니 그 이미지의 손상을 어찌 3,000억원에 비할 수가 있을까.
아깝다, 3000억원!
이렇듯 오늘날의 기업은 그 이미지와 운명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가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모든 정보가 인터넷과 SNS에 리얼타임으로 공유되는 이때 일반인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기업과 오너일가의 비양심적인 행동 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그 어떤 의도적인 회유나 설득으로는 불가능하고 오로지 기업의 양심과 기업인의 진심으로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무엇보다 강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돈 있는 재벌 오너들의 자식노릇하기도(?) 참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