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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 | 연재 [커피 청년의 별별여행]
제주 오름에서 별다방을 만났던 날
김현두 여행가(2015-01-05 09:46:12)

잠시 몇 해 전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2년도 더 지난이야기를 꺼내보려고 말이다. 얼마 전 한 잡지사로부터 새해부터 매달 한편씩의 여행 기고를 부탁받은 후 나의 첫 글머리를 장식할 여행을 떠올려보았다. 1년 동안 12편의 글을 써야하고 나눠야 하는 것이다.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됐지만 내 청춘에 또 하나의 선물을 준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은 언제나 늘 나에게 또 하나의 삶을 선물하였기 때문이다. 


2년 전 가을날도 작은 핑크색 커피트럭에 앉아있었다. 어느 때 하고 다름없이 커피트럭을 타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카페를 여행하면서 맛있고 향긋한 커피와 사람들을 만났다. 사실 나의 커피트럭여행은 언젠가 만들고 싶었던 작은 나만의 시골카페를 만들기 위함이었고 그러기위해서 많은 카페들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떠난 체험여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너무나 힘이 들어 여행을 떠날 여유조차 잃어버렸던 그해 가을. 잠시 깊은 슬픔에 잠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소금포대를 나르는 일을 몇 주 하면서 여행경비를 만들었는데, 그 몇 주 동안 커피트럭은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상상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소금포대를 들쳐 메고 하루에 몇 백 개씩 나르는 일은 고단한 일이었다. 땀이 아니라 습기가 찬 소금에서 녹아 흐르는 짜고 쓴 간수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소금포대를 집집마다 가지고가서 쟁이는 일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는데,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직장생활 그만두고 뭐하는 거냐는 걱정 섞인 타박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외롭고 슬픈 서른 살 가을에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푸른 섬 ‘제주’였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섬이었다. 제주로 떠나기 전에 책이 필요했다. 여행을 떠나면 책 한 권으로 남는 시간을 보내는데 가난한 여행자에게 많은 책을 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재미난 생각이 들었다. 제주로 떠나기 며칠 전 헌책과 핸드드립커피 한 잔을 바꿔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길 위에 선 나의 카페에서 일주일 만에 15권의 책과 한 잔의 커피를 바꾸게 되었다. 난 이 15권의 책을 들고 추운 가을밤 길 위의 작은 카페를 찾아준 고마운 사람들을 보며 세상이 아직 따뜻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의 마음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을 만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속에 오직 돈과 명예, 욕심만을 간직하는 줄 알았다. 나 조차도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의 일들을 잊을 수가 없다. 길 위에서 늘 그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떠난 제주로의 여행이었다. 


처음 1년 동안 내가 여행한 카페는 족히 100여개에 이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커피청년이나 카페여행자로 부르기도 했었다. 이제는 3년이 지났으니 들러본 카페만 해도 몇 백 개는 될 터인데 나의 여행 중에 카페를 여행하면서 나의 기억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카페 하나가 있다. 오늘은 그 카페 ‘별다방’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손님들이 전해 준 손 때 묻은 열다섯권의 책과 떠난 가을날 여행에서 특별한 친구들과 제주의 한 오름을 오른 적이 있다. 그곳은 제주의 남동쪽 방향에서 중산간 쪽으로 가면 있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동네의 ‘따라비오름’이라는 곳이다. 전날 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정든 친구들과 오름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 풍경은 늘 나의 길에 따라다녔지만 고맙고 따뜻한 사람들과의 동행은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듯하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몸을 누이는 억새와 멀리 풍력기가 돌아가는 멋진 그 풍경의 끝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카페의 이름은 ‘별다방’ 제주 살이 2년차인 ‘별’님이라는 별명의 비슷한 또래 여자 분이 직접 구은 수제쿠키와 ‘리니’라는 커피내리는 친구가 함께 운영하는 오름 위 동산에 있는 노천카페였다. 


산 아래에서 내려온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새로이 만난 인연도 우리 젊은 청춘들의 여행과 삶도 같이 마주하며 그날을 만끽했다. ‘별다방’은 오름 위에서는 커피를 만들지 않는다. 억새와 풀, 나무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화기를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커피가 떨어지면 산 아래까지 내려가 다시 커피를 만들어 보온병에 담아온다는 ‘별’님 이는 그때마다 30~40분의 시간을 오고 간다고 하였다.  그 수고로운 시간 그리고 조금의 욕심과 자연을 생각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내 자신과 이 여행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카페에 가는 기준들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안락한 소파와 테이블, 맛있는 커피와 음악 등등... 말이다. 세상에 수많은 카페들이 겉으로 보여지기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 속까지 따뜻하고 아름답기는 어렵다. 내가 만난 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을 ‘별다방’ 그 곳에는 안락한 소파대신 풀 위에 놓여 진 작은 천 카페트가 있었고, 화려한 로스팅 뒤 만나는 고급진 원두는 아니어도 내 맘에 향긋한 내음을 불어 넣는 커피한잔이 있었다. 요샛말로 ‘심쿵’하고 울리는 위로의 노랫말은 없었지만, 억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그 어떤 음악보다도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억새가 바람결에 춤을 추고 누렁이 한 마리도 바람을 마주하며 쉬어가는 그곳에 내가 있었다. 


이듬해 그 곳에 다시 찾았을 때는 더 이상 ‘별다방’의 모습을 마주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들의 더욱 재미난 제주 살이는 계속되고 있었고, 여전히 길 위에서 커피를 팔고 ‘못된문방구’를 열어 여행자들과 함께 즐거운 놀이터에서 그들도 같이 여행하고 있었다. 그들도 그들의 고향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 정착한 아니 어찌 보면 잠시 긴 여행을 떠나온 그녀들의 일상이 나는 늘 그립고 행복하게 보여 진다. 요즘도 제주를 갈 때면 일부러 그녀들을 찾아 연락하고 보고 마주하며, 너스레를 떨며 허름한 집 한 켠 에서 재워달라고 먼저 말을 건내는 나다. 그저 그녀들의 아름다운 청춘을 느끼고 바라보며 닮고 싶어서 말이다. 내가 꿈꾸었던 일상이 여행이 된 이야기다. 


그렇게 매일이 여행이었으면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욕심인지를 알면서도 오늘이 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길 위에서 2년 남짓 시간을 보내며 살다보니 내 삶은 매일이 여행이었습니다. 사실 제 여행은 별거 없었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감사하며 살기로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마음먹을 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매일이 여행이 된 것입니다. 세상은 ‘돈’이 최고라고, 그 길은 안 된다며 ‘돈(dont)’을 외쳐대지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나는 잘 살고 있답니다.

전 말입니다. 이런 여행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이 주는 즐거움도 좋지만 누군가의 삶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그런 여행 말입니다. 


사람을 여행합니다. 

당신이 내게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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