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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 | 연재 [클래식 뒷담화]
도시전설, 테너와 테너 이야기
문윤걸 교수(2014-12-02 10:14:19)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플라시도 도밍고(Plácido Domingo), 호세 카레라스(José Carreras), 이 세 사람을 ‘쓰리 테너’(Three Tenors)라고 부릅니다, 금세기 최고의 테너들이지요. 2007년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후, 이제 두 사람만이 남아 연주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고령의 나이로 예전 같은 빛나는 소리를 들려주진 못합니다. 도밍고는 테너가 아닌 바리톤 가수로 활동하고 있고, 카레라스는 목소리에 빛을 잃어 옛 팬들의 향수에 기대어 근근이 연주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하지만 이 세 사람이 남긴 업적은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사이에는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이른바 ‘두 테너의 진실’(The True Story of Two Tenors)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은 물론 도서나 언론방송에도 자주 소개되는 이야기입니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당대 최고의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는 상대방이 초청받은 연주회에는 출연을 거부할 만큼 라이벌이자 앙숙이었다. 처음에는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지만 1984년경정치적인 문제로 사소한 언쟁을 벌였고, 그 이후 카레라스가 절교를 선언하면서 원수지간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언쟁은 그들의 출신지역과 관련된 것이었다. 카레라스의 출신지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이었고, 도밍고의 출신지는 마드리드 지역이었다. 마드리드 지역이 오랫동안 스페인을 다스려 왔는데 카탈루냐 지역은 마드리드에 저항하며 지속적으로 자치권을 요구해 왔다. 그래서 두 지역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정치적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 및 문화적으로도 항상 부딪쳐 왔다(스페인 프로축구에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바르셀로나간의 치열한 축구전쟁도 이 때문입니다). 어느 날 도밍고와 카레라스가 이 문제로 심하게 언쟁을 벌였고 그 후 두 사람은 어느 연주회에도 함께 참여하지 않으며 서로를 비난하는 등 앙숙이 되었다. 

그러던 중 카레라스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1987년에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았다. 카레라스는 병을 이겨내기 위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쉽게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인 탓에 매달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값비싼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시술을 받았고 막대한 치료비 때문에 연주활동을 하지 못했던 카레라스는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가 곤란할 즈음 카레라스는 우연히 마드리드에 백혈병 환자만을 지원하는 재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에르모사(Hermosa) 재단이었다. 카레라스는 이 재단의 후원을 받아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보란 듯 재기해 무대에 다시 올랐고 이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였다. 

건강과 명성을 되찾은 카레라스는 자신을 후원했던 에르모사 재단에 보답하려고 재단의 후원자가 되기로 한다. 후원자가 되기 위해 재단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던 중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 재단의 설립자가 바로 플라시도 도밍고였고, 그가 이 재단을 설립한 이유가 백혈병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카레라스를 돕기 위한 것이었으며 혹시 카레라스의 자존심이 다칠까봐 지금까지 모든 것을 익명으로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에 깊이 감동한 카레라스는 도밍고의 공연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공연 중인 무대에 올라 많은 관객 앞에서 무릎 꿇고 도밍고에게 절절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에 도밍고는 크게 놀라며 카레라스를 힘껏 껴안아 일으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친구야, 친구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네. 자네처럼 하늘의 목소리를 타고난 사람이 노래를 못한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일이네.” 그들의 새로운 우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들은 파바로티와 함께 쓰리 테너를 결성해 15년간 전 세계를 무대로 화려한 공연을 펼쳐나갔다. 

이에 감동받은 한 기자가 도밍고를 찾아가 어떻게 최고의 라이벌이자 앙숙인 카레라스를 돕기 위해 남몰래 에르모사 재단을 설립할 생각을 했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도밍고는 “나는 단지 카레라스의 목소리를 잃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떻습니까?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이지요? 비록 앙숙관계에 있었지만 상대의 음악성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또 상대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품격있는 삶, 그리고 그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감사를 아는 마음 등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도시전설’이라고 하지요. 이 이야기를 거짓으로 보는 첫 번째 이유는 위키피디아에서 도밍고가 설립했다는 에르모사라고 하는 재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스페인에 에르모사라고 하는 백혈병 환자 지원재단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호세 카레라스는 투병과정에서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1988년에 호세카레라스 국제백혈병재단(JCILF)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재단을 통해서 호세 카레라스는 자신의 백혈병 투쟁기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병 치료는 주로 바르셀로나 의료진들의 미국 시애틀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 의료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으며 에르모사 재단의 존재를 알 수도 없으며 어떤 재정적인 도움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플라시도 도밍고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들은 서로를 적대시한 적이 없으며 언제나 서로에 대해 깊은 우정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거짓인 사실을 유포할 경우에는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공지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앞에서 얘기한 두 테너 사이의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거짓인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가 사실로 믿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그럴 듯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선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테너로 누가 봐도 라이벌로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 두 사람의 출신 지역 마드리드와 카탈루냐(바르셀로나)의 엄청난 지역감정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지역의 지역감정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스페인 올림픽이 아니라 바르셀로나 올림픽임을 주장하며 기어이 스페인 국왕 대신 바르셀로나 시장이 개회선언을 하도록 했을 정도니까요. 이런 배경과 카레라스의 극적인 백혈병 극복 스토리, 그리고 카레라스의 백혈병 극복을 축하하며 역사상 최초로 쓰리 테너가 한 무대에 서는 극적인 공연 등 도시의 전설에 필요한 극적인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지금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곳이면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생존율 10%의 백혈병을 극복하고 다시 무대로 복귀한 카레라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적인 공연이 성사되었지요. 가장 위대한 세 명의 테너가 동시에 한 무대에 서는 쓰리 테너 공연이 성사된 것입니다. 1990년 7월 로마의 황제 카라칼라가 지은 노천탕 자리에서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 공연, 이 공연은 당시 가장 뛰어난 공연기획 상품으로 손꼽혔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음악팬들이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공연이었지요. 그 이후로 2005년까지 세 사람은 전 세계 공연장을 돌며 쓰리 테너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팬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지요. 두 사람 사이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비록 거짓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공연만큼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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