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안도현의 발견 | 안도현 지음 | 한겨레 출판사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 동안 한겨레신문에 연재됐던 ‘안도현의 발견’이 책으로 나왔다. 절필 선언 후 처음 쓴 글로, 시인의 눈길이 머문 달콤한 일상의 발견 201편을 담았다. 원고지 3.7장으로 웬만한 시보다 짧은 산문들이다.
책에는 시인의 문학과 삶,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차분하게 그려진다. 안도현은 누가 사라져도 사라진 줄 모르고, 자신이 살아가는 이 고장에서 어떤 소리들이 들리는 줄도 모르고,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고 말한다.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차분하고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우리의 주변을 깊게 응시하는 따뜻한 힘을 전한다.
우리들에게도 빙하기가 왔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 김경욱 지음 | 문학과 지성사
지나치게 억울한 세상에선 음모론이 판을 치고, 지나치게 억울한 자들은 강박과 망상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한편으로 슬프고 한편으로 우스꽝스럽다. 억울한 세상의 억울한 자들이 빚어내는 희비극의 풍경, 저자의 소설 세계다. 표제작 ‘소년은 늙지 않는’은 인류 문명이 다시 빙하기를 맞는다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미래라는 상황 설정을 빼면, 소설 속 상황은 오늘의 우리 사회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단편 ‘지구공정’도 지구가 얼어붙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별이 된 미래를 그린 것이다. 단편 ‘인생은 아름다워’는 반어법 소설이다. 남북통일 이후 한국 사회에선 자살 면허를 딴 사람만 목숨을 끊을 수 있다고 상상한다. 자살을 관리하는 사회에서도 자살이 끊이지 않는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한다.
최초 서양화가의 삶과 예술세계
춘곡 고희동 | 김란기 지음 | 에디터북
오연호 기자가 덴마크에서 행복사회의 열쇠를 찾아 나섰다. 덴마크는 훌륭한 복지제도가 있기 때문에 행복해졌을까? 복지는 곧 많은 세금을 동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행복사회로의 한 걸음을 주저하는 한국 사회. 하지만 행복사회의 비밀은 복지제도뿐만이 아니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남과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으며 이웃끼리 연대하는 문화를 널리, 깊게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로 뽑힌 제약회사 로슈 덴마크, 오랜 역사를 지닌 창의적 기업 레고 등을 방문하여 덴마크의 자유로운 일터를 분석하고, 초중등학교와 인생학교(에프터스콜레, 고등학교 입학 전 1년간 개인의 특색을 살려 인생을 설계하도록 돕는 덴마크의 특수 교육과정)등을 돌아보며 덴마크의 교육정신을 살펴본다.
책 읽는 법을 배우는 책
정희진처럼 읽기 | 정희진 지음 | 교양인 펴냄
책 읽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란 마치 걷고 있는 사람에게 걷는 법을 알려주는 것 같다. 별 문제 없이 걷고 있는데 굳이 더 잘 걷는 법을 알아야 할까.
정희진은 칼럼, 논문, 비평 등을 통해 논쟁적인 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전복적인 사유를 만날 수 있지만, 동시에 따뜻하고 친근한 정희진을 만날 수도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삶과 죽음에 대한 고통스러운 성찰, 달콤한 과자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유쾌한 고백까지, 일상의 언어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독자들의 세계관을 뒤흔드는 데 충분하다.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냐
메이드 인 경상도 | 김수박 지음 | 창비
한국에서 대구와 경상도의 이미지는 특별하다. 페이소스 진한 작품들로 마니아층을 꾸준히 확보한 만화가 김수박이 “왜 경상도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경상도를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렸다. 대구 토박이인 작가 특유의 유머감각이 녹아 들어간 1980년대 경상도 풍경 속엔 지역감정의 뿌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메이드 인 경상도’에는 김수박의 가족과 친지, 평범한 경상도 사람들이 등장한다. 김수박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 속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경상도에 대한 편견 섞인 질문에 답한다. 그리고 그 만화의 끝에 그가 마주친 것은 1980년 5월 광주였다.
그는 “부모 세대와 나의 세대가 살아온 세월 속에 갈등의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한 아이의 관찰기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대통령과 종교 | 백중현 지음 | 인물과 사상사
무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다면 한국은 무교의 나라다. 3대 종교인 개신교와 불교, 천주교 신자를 합하면 겨우 절반을 넘는 정도다. 그런데도 종교는 늘 권력 옆에 서 있었다.
‘대통령과 종교’는 권력의 중심인 대통령과 종교를 최초로 다룬 책이다. 종교 전문지 기자를 지낸 저자는 종교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지 대통령 9명(윤보선, 최규하 제외)의 종교성향과 재임 기간 있었던 종교적 사건을 통해 살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은 정권의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미국의 지지와 지원이 절실했고, ‘반공’이 필요했다. 이 둘을 만족하는 최대 조직이 개신교였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종교가 늘 권력의 나팔수였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70년대 종교인들의 인권운동과 반독재민주화운동을 다루면서 권력에 저항한 종교의 흐름도 함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