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2 | [문화저널]
작품과 나
세월속 여인의 삶, 한편의 시로 형상화
「수묵화」
장인숙 전북대 예술대 무용학과 교수(2003-09-15 14:45:14)
요즘도 문득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내 마음속에 은은히 들려오곤 한다. 어쩌면 습관이 되어버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모습에서 내가 얼마나 애착을 가지며 그 작품에 몰입했었는지를 다시금 느껴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93 서울 무용제 참가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했으며 거기에 연기상이라는 행운까지 나에게 안겨질 수 있었으니 그 또한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던가!
「수묵화」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간직하며 그려졌던 그림처럼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고 잔잔하면서도 힘이 있는 한 폭의 동양화를 춤으로 그리는 작업이었다.
스토리 위주의 무용극을 탈피하고 작품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 간결하면서도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무용 형태를 시도하는 작업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면마다 그려내야 할 사계절의 의미는 농축되어진 시 한편을 보는 것처럼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하고 그 세월의 윤회 속에 곧게 서 있는 한 여인의 자태와 정절, 그리고 굳은 의지, 외유내강의 힘을 춤으로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지방 춤단체라는 불리한 조건과 무용수들이 졸업생이어야 하는 조건은 더욱 큰 한계이자 어려움을 주었다. 우리대학에 무용과가 생긴지 몇 해 되질 않아 졸업생들의 연륜이 적었고 졸업생 수도 많지 않아 여기 저기서 구걸(?)해야 했으며 남자 무용수의 부족으로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곁에 있던 제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무엇인가 하면 된다'라는 것을 체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었다.
처음 서울 무용제에 출품할 때 예선 심사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많은 단체들의 풍부한 경험과 연륜이 우리보다는 많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경험 삼아 출품한다는 생각으로 가능한 기대를 떨치고자 했다. 그러나 의외로 비디오 심사에서 평가가 좋았고 그로 인해 10개 단체 속에 우수한 성적으로 예선에 통과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는 경연대회라는 생각을 버리고 '충실히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으로 스텝진들과 출연진들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지방단체라는 소외감을 이겨내며 더욱 우리 것을 주워 담으려 노력했고 특히 예향인 전북의 명예를 생각하면 부담감을 버릴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곁에 계시는 많은 분들이 애정을 듬뿍 쏟아 주셨고 학생들 역시 작품 속에 풀 빠져들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힘을 합하면 무슨 일이든 못할게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게 했다.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더욱 그 작업을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했다. 내 제자들이 늘상 서보기 원하는 서울 무대! 그것도 무용공연에 가장 잘 맞추어 만들어진 문예회관대극장에 선다는 설레임과 흥분만으로도 우리 모두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한한 가능성과 시도, 그리고 도전이었다.
단원들과 다른 참가 작품들을 보면서 결코 우리가 지방이기 때문에 기죽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며 오히려 때묻지 않은 신선함과 자연스러움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마음을 끌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자랑할만한 것은 무용수들의 고른 체격과 몸에서 우러나오는 감정. 그리고 작품 속에 빠져들어 열연하는 진지한 모습이 결코 다른 단체에 뒤진다는 생각이 들이 않게 했다는 점이다. 가을 장면에서 아이들의 낙엽모습은 정말 자신이 낙엽이 되어 구르는 애절함을 제대로 표현해 지금도 주위의 많은 분들의 얘기 거리로 가슴에 남아 있다. 나 또한 작품 속의 여주인공으로 분했지만 은근히 뼈속깊이 파고드는 애잔한 음악과 조화를 잘 이루는 무대미술의 먹으로 그린 소나무 한 그루가 지금도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무대는 두려운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단 서면 떠나고 싶지 않은 곳도 그 작은 공간이다. 짧은 시간을 위해 바치는 그 많은 시간과 정열이 때론 우리를 지치고 허탈하게 하지만 무대에서의 짧은 시간이 주는 진한 희열은 어떠한 것에도 비교될 수 없는 것이기에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번 작품「수묵화」는 종전과는 달리 춤사위, 그 자체로서 어떤 언어를 찾기 위해 애썼으며 주제와 음악, 안무가 일치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동원했던 작품이다. 단원들과 함께 혼이 들어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종일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작품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로서 우리에게 얻어진 것들은 많은 것이었으며 한 작품이 완성되어지는 모든 과정을 모두가 같이 체험을 통해 같이 터득할 수 있었으므로 나 개인의 작품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작품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연기상 역시 내 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고 우리 무용단 단체 모두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는, 어떤 상보다도 갚진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성과는 나의 제자들에게 희망과 꿈을, 그리고 '하면 된다'라는 의지를 불어 넣어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데에 두고싶다.
교육자로서 또는 무용가로서 무엇인가 제자들에게 항상 줄 수 있는걸 찾아보았지만 이렇게 공연을 통한 교육이야말로 정말 갚진 산 교육이 된다는 걸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이제 93년은 가고 94년이 왔지만 지난해 내 정성들인 「수묵화」의 묵혼은 올해도 또 내년에도 오래도록 진한 생명력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