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원에 인문학 독서토론 학습공동체를 개설했다. 수강료를 무료로 하고 초보자도 수강할 수 있다고 했더니 금세 15명 정원이 채워졌다. 독서와 토론은 시민들이 향유할 기본적인 문화 목록이기도 하고,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 시민들이 갖춰야 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개설하면서 교육원에서는 인원이 채워지려나 조금 걱정한 듯하다. 명리학이나 풍수지리는 유료 수강 과목으로 아주 인기가 좋은 편이지만, 기타 인문독서토론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명철학은 왜 솔깃한가?
운명을 점치는 일은 호기심을 끌만하다. 우주의 기운이 흐르는 법칙을 파악한 철학 이론이 있어서 그것으로 모든 사람의 삶의 길을 파악한다면 얼마나 신기할까?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가 나타나서 나의 운명을 알려준다면 누구라도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동양도 서양도 원시문화에서부터 현대문명에 이르기까지 운명철학은 성행한다. 그것은 일종의 게임이거나 미신으로서 오늘도 가볍게 또는 진지하게 우리의 삶의 터전을 파고들고 있다.
여자들이 점집에 찾아가는 이유는 남자들의 경우와 다를 수 있다. 남자들 중에는 정치인들이 점집에 가서 당선 여부를 묻거나 풍수가를 찾아가 묘 자리 이장을 부탁한다. 그리고 한국 최고의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유명한 관상쟁이가 총수 옆 자리에서 면접을 본다는 얘기가 오래 전 종종 보도되곤 했다. 여성들은 자녀 결혼이나 자신의 질병 등 가족들의 일상과 관련하여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거기가 일종의 상담소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가끔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사이비 종교를 접할 때마다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어리석을까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된다. 너무도 뻔한 사실을 어떻게 저리 모를까 싶기 때문이다. 교주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이비 종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성 종교들도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요즘엔 인터넷 유투브를 통해 예언가라고 설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초능력자가 신비스러운 힘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신도들과 그들을 끌어들이려 신비주의를 부추기는 종교지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 점집에 가다니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또는 길거리 지나다가 재미로 한번 운세를 본다면 그렇다 할 것이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예언을 구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그곳을 찾아가는 성인들은 문제가 된다. 결국 운명 철학을 합리적인 이론이라고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미신을 믿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고, 과학도 종교도 미신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내가 아는 어느 여교수는 친구가 적은 편이다. 시어머니와 갈등이 심하고, 남편과 사이도 안 좋다. 그녀는 종종 점을 보러 간단다. 오죽 답답하고 불안하면 그런 곳을 찾아갈까? 이런 얘기를 하다가 다른 여자 교수는 자신의 대학원 시절 경험담을 꺼냈다. 대한민국 최고 여자대학 대학원생 시절에 한 학생이 점을 봤는데, 그 해가 가기 전에 결혼할 거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단다. 그러자 대학원 학생들이 모두 그 집으로 달려가서 점을 보았다고 한다.
오랜 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는데, 한 친구가 최근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좋은 직장에서 잘 생활하다가 퇴직했고, 새로 시작하는 회사에 공동투자하고 다시 중책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름을 새로 지어 오셨더란다. 효도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리의 상식철학은 이렇게 허약한 기반 위에서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