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풍성한 결실을 맺는 이 가을,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형축제가 집중되고,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도 매일같이 좋은 날 좋은 공연이 연이어지고 있다.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실력을 무대에 풀어놓는 절호의 기회인만큼 관객의 반응과 평가 또한 공연의 희비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물론 시시콜콜 무대까지 전해지지 않는다고 개의치 않는다면 상관없지만 말이다.
특히 근래에는 TV의 흔한 오디션 프로그램 탓인지 몰라도, 예리하게 무대를 좌시하는 관객들이 많아졌다. 또 실제로 지역 공연현장에서도 ‘관객 평가단’을 도입해 무대를 꾸리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을 위해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장전’을 끝낸 관객들과 달리 오히려 무대 위 공연자들의 긴장과 노력이 따르지 못할 때가 적지 않으며, 예고된 경우가 많아 그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 공연이지만 공연 당일 컨디션에 따라 실수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관객들이 눈치 채지 못할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예술가들이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다 보고 있다. 가끔 객석의 맨 뒷자리에서 공연을 지켜보면 관객끼리 주고받는 전문가 못지않은 관람 평을 듣게 된다.
어느 클래식 연주자는 리허설 도중 반복해서 틀리는 부분을 완벽히 고치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가 그 부분을 틀리는 실수를 한다. 평소에도 주변 연주자들에게 연습을 게을리 한다는 핀잔을 듣는 연주자인데 매번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이다.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이미지가 쌓이게 되면 그 연주자는 같이 연주하기 싫은 협연자 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어느 무용가는 연습보다는 단체를 알리고 협찬 활동을 더 우선시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무용가에게 가장 중요한 몸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 따가운 눈총을 받고 고난이도 동작을 하다 아킬레스건을 다치는 사고도 나게 된다. 몸을 다치는 사고가 나서 안타깝지만 관객에게도 큰 충격을 주는 장면이었다.
유명한 아이돌 스타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뮤지컬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관객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피해를 줄 정도로 한 아이돌 스타에게만 집중되어 있었고, 뮤지컬을 보러 온 건지 콘서트장인지 헷갈릴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 아이돌은 기획사에겐 큰 이익을 주고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대본도 제대로 외우지 않아 시종일관 애드립으로 시간을 때우고 리허설도 제대로 하지 않아 앙상블과 동선이 꼬이는 안타까운 장면을 남겨두기도 했다.
희생 없는 예술은 없다. 어떤 예술이든지 시간과 노력, 때로는 금전적인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은 예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서 야심만 가득 차 있는 예술가들이 너무 많다.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활동이 날이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는 오늘, 관객들의 감성을 충전시켜주는 예술가들의 희생과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관객들의 ‘매의 눈’은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