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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 | 연재 [상식철학]
말도 안 되는 사회, 언어로 혁명?
김의수 명예교수(2014-08-29 11:18:11)

문화철학자 김광식은 지난 6월 학회에서 반말 공용화를 제안했다. 양반과 상놈을 가르던 전근대 신분사회에서는 윗사


람들은 반말을 했고 아랫사람들은 높임말을 썼지만 평등사회로 넘어오면서 높임말을 공용화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


는 그렇게 봉건적 잔재를 없애고 모두 서로 높임말을 사용하여 서로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격적 가치를 일깨웠


다. 이 약속이 사회제도와 생활세계에서 성실하게 이행되었더라면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를 실현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다시 반말하는 힘 있는 사람들과 높임말 하는 아랫사람으로 관계를 고착시켰다. 사회의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반말의 횡포는 더 공공연하고 파렴치하게 그리고 직접적이고 잔인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독재자의 정제된 언어와 시민의 거친 딴지걸기


나는 김어준이 처음 등장했을 때 조금 불편했다. 그의 비속어 때문이다. 쌍시옷 들어가는 말을 입에 달고 있고, 성적 비


속어들도 거침없이 사용했다. 그런 태도는 내가 바로 공감하고 따라가기에는 불편했지만, 그와 박정희를 비교하면서 


나는 그의 약점을 조금 덜 불편해하게 됐다. 박정희의 언어는 정말 정갈하고 절도 있었다. 나에게 익숙한 그의 언어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담화문이었다. 그는 경상도 특유의 크고 높은 톤이나 억양을 사용하지 않았다. 


언제나 차분하고 절제된 목소리와 잔잔한 억양으로 담화문을 읽었다. 그는 단단한 체구를 가진 군인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언어는 정제되고 수준 높은 대통령의 말투였다. 그러나 그는 시민의 인권을 탄압했으며, 사람들을 인격으로 대하


지 않는 독재자였다. 재벌 회장들도 벌벌 떨게 만들었고, 지식인도 가차 없이 처벌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가 가식적인 말을 집어던지고 적나라하게 내뱉은 말들은 김형욱 회고록에서나 볼 수 있


었다.



그에 비해 김어준은 상스런 언어를 일부러 사용한다. 다만 그는 그 상스런 용어를 문제적 개인과 집단에게 사용한다. 


지배언론인 조‧중‧동에 대해 독설을 내뱉고, 대통령과 검찰 등 권력층에게 야유와 비속어를 날린다. 비속어 자체가 익


숙하지 않고 성평등을 강조하는 나로서는 김어준의 어투가 종종 불편하지만, 그 언어의 속을 접하게 되면 한편 통쾌하


기도 하고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위력을 보기도 한다.



언어의 순화인가, 삶의 순화인가?


언어의 순화와 삶의 순화가 항상 함께 가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서로 어긋나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언어의 순화보다 현


실의 순화에 먼저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20세기 서양철학은 언어의 문제를 핵심 주제 중 하나로 삼았다. 모호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추상적인 주제들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전통철학을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각이 먼저인지 언어가 먼저인지부터 따졌다. 사람들은 생각은 있


는데, 말로 표현하려면 잘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분명한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것뿐이


다. 논리적인 생각이 아니면 말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리적 언어 사용은 현대철학의 기본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말과 행동, 이론과 실천의 관계도 중요한 주제이다. 말과 행동의 괴리가 갖는 문제점은 고대철학부터 지적


돼 왔다.


언어의 순화는 문화의 순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문제는 언어의 순화만 강조하면서 삶의 포악화를 획책하는 자들이


다. 실질적 말의 평등을 이루어내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실질적 평등을 이루는 것이다. 김광식은 실질적 평등을 앞당


기는 데 말의 평등화 노력이 어느 정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대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반말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현존하는 모든 비뚤어진 말의 질서를 타도하자고 말한다. 행동주의자


들은 이런 언어의 유희를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까지 포괄해서 모든 저항의 몸짓들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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