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는 우리 시대의 문화다
여파
마누엘 카스텔스 외 2명 지음, 김규태 옮김/ 글항아리
‘여파(Aftermath)’는 원래 ‘초여름에 풀을 벤 다음, 또 자라난 풀을 베는 작업’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일반적으로 불쾌한) 사건이 남긴 상태나 상황 또는 그 사건에 덧붙여서 발생한 일’이라는 보편적인 의미를 띠게 됐다. 이 책에서 세계 각지의 학자 15명은 ‘경제위기’의 ‘여파’를 살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현재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에서 위기는 이미 일상이자 ‘문화’라는 것이다. 문화적 실천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소비, 교환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제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문화다. 시스템의 위기가 있다면 그곳에는 반드시 인간 행동의 근본 원리로서 기능하던 어떤 가치관이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는 문화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때만 새로운 형태의 경제조직과 제도가 탄생하며, 경제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보장될 것이다.
상처받은 소년과 소녀의 만남과 우정
빌리
안나 가발다 지음, 정미애 옮김/ 문학세계사
한 살도 안된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 늘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언제 손찌검을 날릴지 모르는 아버지를 둔 주인공 빌리는 하루하루를 그야말로 견디며 산다. 가난한 집시 출신이라는 걸 감추려고 거짓말을 일삼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 버스를 탄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커리어우먼 엄마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권위주의적 아버지를 못 견뎌 하며 늘 말없이 혼자 배회하는 프랭크는 동성연애자라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아웃사이더다.
단 1밀리그램이라 하더라도 그 누구의 고통도 나눠지고 싶지 않을 만큼 자신의 고통에 짓눌린 빌리와 프랭크는 오랫동안 서로를 회피하다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되고 함께 성장한다. 세상을 등진 채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던 소년, 소녀가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를 닦아주며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삶의 의미가 되어 준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삶의 가치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정호승 지음/ 해냄출판사
우리 시대의 대표적 서정시인 정호승이 산문집을 냈다. 동아일보에 연재한 칼럼 ‘정호승의 새벽편지’를 정리하고 새로 쓴 41편을 더해 총 71편의 산문을 엮은 책으로, ‘어둠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인생의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글’로 채워져 있다.
시인이 전하는 메시지는 거창하지 않다.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소홀해지기 쉬운 가족에게서, 이웃에게서 배려와 감사를 발견한다. 혼자 여행하는 길에 들른 찐빵가게 주인이 건넨 소박한 밥상에서는 배려를, 군복무 중인 아들에게는 응원과 충고를 전하는가 하면, 사람에 대한 관심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사물에도 친근하고 깊은 시선을 보낸다. 자연의 변화에서 아픔, 기쁨, 미움과 용서를 담아내고, 사랑과 이별, 나이 듦과 거듭남을 일깨운다.
재수 없고 짜증나는 인간 대응법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산드라 뤼프케스, 모니카 비트블룸 지음/동양북스
범죄 소설가 산드라 뤼프케스와 13년 동안 프로파일러로 활동한 범죄심리학자 모니카 비트블룸이 치근덕거리는 사람 등 진상형 인간에 대처하는 법을 소개한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를 펴냈다.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심리 분야 1위에 등극한 이 책의 원제는 ‘왕재수를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다. 저자가 생각하는 왕재수 인간은 ‘뭐든지 아는 체하는 사람’,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 ‘까다로운 척하는 사람’, ‘그때그때 인격이 달라지는 사람’, ‘긍정을 강요하는 사람’ 등 12가지다. 왕재수를 피하면 되지 않을까. 저자들은 피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이상한 사람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도 일정한 수의 이상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고 한다. 저자들이 던지는 조언에 귀를 기울일법한 이유는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자신을 바꾸라고 주문하기 때문이다.
만국의 누리꾼이여 단결하라
텔레코뮤니스트 선언
드미트리 클라이너 지음, 권범철 옮김/ 갈무리
인터넷은 평등하며 자유로운 것일까? 누구나 자신의 글을 쉽게 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정욕구를 총족하며 잠시 해방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세계화운동가이자 소프트웨어개발자인 드미트리 클라이너는 지금의 인터넷은 원래 가졌던 해방적 잠재력을 배반했다고 말한다.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은 인터넷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이런 혁명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 데만 기여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벤처 코뮤니즘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자본주의 내로 문화를 포획하려 하는, 자유소프트웨어와 자유문화에 대한 기존의 자유주의적 관점과 인터넷의 혁명적 아이디어를 배반한 카피라이트(copyright) 체제에 대해 비판한다. 클라이너는 카피파레프트(copyfarleft)를 제안하면서, 또래생산 라이선스의 유용한 모델을 제공한다.
기묘한 듯 정중한 듯 잔인한 고딕 스릴러
일곱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열린책들
‘일곱성당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유럽의 도시 프라하에 실존하는 여섯 개의 대표적인 성당을 배경으로 한 고딕 스릴러 작품이다. K라는 이니셜로 자신을 부르는 소심한 경찰은 우연히 프라하의 어느 고딕 성당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발목에 밧줄에 꿰여 종이 칠 때마다 함께 흔들리고 있는 엽기적인 사건을 목격한다. 그 사건을 목격한 계기로 K는 현대 프라하 건축물들을 중세의 고딕 양식으로 완벽하게 복원하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귀족 출신 그뮌드와 세 명의 조력자를 만나게 된다. 평소 14세기 프라하 신시가지의 미학적, 종교적 이상에 빠져 있던 K는 옛 건물에 손을 대면 과거의 사건들을 볼 수 있는 자신의 기이한 능력을 이용해 그뮌드를 돕지만 일련의 기묘한 사건들에 휩쓸리며 모든 일의 종착점, 수수께끼의 장소 ‘7성당’에 얽힌 비밀을 풀어나가기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