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자율학습시간에 PC방에 갔다가 인성지도부선생님에게 걸린 학생들의 명단이라며 메신저가 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반 숫자가 제일 많다. 기말고사가 끝난 어수선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6명이나 되었다. 명단을 적어 교실에 가서 이름을 부르자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지만 긴장하거나 두려움에 떠는 눈빛을 가진 아이들은 없었고 미안하다는 표정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 6장의 반성문이 책상 위에 올려졌다. 게임이 너무나 하고 싶었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였다면서 걸리는 순간 담임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좋은 말로만 혼내는 선생님을 이용해서 미안하다는, 시험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다는, 지금 놀아야 방학 때부터 다시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는, 친구의 유혹에 정신을 잃었다는, 시험이 끝나 공부할 마음이 없었다는, 선생님께 정말로 죄송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진즉 담임선생님의 성향을 파악해버린 아이들은 마음에 없는 말로 비겁하게 용서를 구걸하기보다 겁 없이(?)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체벌은 물론 기합 한 번 주지 않고 두 번 큰소리 친 것으로 한 학기가 마무리되어 간다. 화가 났음에도 참았다기보다는 크게 화가 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이해심이 조금 커진 탓도 있지만, 교육은 폭력 앞에 순종하는 척하도록 하는 것에 있지 않고 미봉책으로 넘어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뀌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이 섰고 ‘해님과 바람’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일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공부는 긴장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즐거운 상태일 때 더 잘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젊은 날에는 손에 물집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회초리를 가지고 살았다. 종아리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때리기도 하였고 학부모의 항의로 교장실에 불려가기도 하였다. 일벌백계보다 나은 교육은 없다고 생각하였고 대학입시를 위해서 하는 일은 어떤 행위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장 나쁜 감정은 질투, 가장 무서운 죄는 두려움, 가장 무서운 사기꾼은 자신을 속이는 자, 가장 큰 실수는 포기해 버리는 것. 가장 어리석은 일은 남의 결점만 찾아내는 것. 가장 심각한 파산은 의욕을 상실해 버리는 것. 그러나 가장 좋은 선물은 용서”라는 프랭크 크레인의 명언을 만나고서 용서를 가르치자고 마음먹었다.
교사가 용서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교육과 용서는 물과 불처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선생님이나 학부모도 나에게 시비 걸지 않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의 일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동료 교사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학부모의 원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거의 매일 전전긍긍하였다. 무능력한 교사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라는 생각에 늘 좌불안석이었다.
체벌, 기합, 꾸중이 아닌 용서가 흐르는 교실을 만들어 가자니 손이 편한 대신 입은 아팠고 누군가가 나를 무능력한 교사라 비웃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몸서리치기도 하였다. 객관적인 지표에서 우리 반은 문제반이었다. 복장 불량, 두발 불량(두발 규제 시절), 청소 불량, 각종 참여율 저조 등 나쁜(?) 것은 우리 반이 도맡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불량이 하나 둘 줄어들었고 2학기부터는 다른 반과 별 차이가 없게 되었으며 대신 평화와 행복은 꽉 들어찬 느낌이었다. 성적은 최상인 경우가 많았지만 최하인 경우도 있었다.
어찌 용서가 최선의 방법이겠는가? 특히 교육에서는 단호하게 지도하여 올바른 행동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 아니겠는가? 잘못에 대해 처벌을 받도록 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 아닌가? 맞다.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용서가 최선의 방법 아니 것과 마찬가지로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 역시 최선 아닌 것 분명하지 않은가?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용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말로써 가르치는 것보다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교육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믿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처럼 용서를 심으면 용서가 나오고 처벌을 심으면 처벌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였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 것처럼 용서도 받아본 사람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홀로 미소 지으며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 ‘모두는 아니지만 몇 명은 나에게서 용서를 배울 것이다.’ ‘항상은 아니지만 1년에 한 번이라도 나의 행동을 생각할 것이다’ ‘모든 일에서는 아닐지라도 몇 가지 일에서라도 용서할 것이다’를 중얼거리곤 하였다.
오늘 종례시간. 보충수업 도망 1등반이 몇 반인 줄 아느냐는 질문에 미소 지으며 큰 소리로 6반을 외치고, 야간자율학습 도망자가 가장 많은 반이 몇 반이냐는 질문에도 거침없이 6반이라 말한다. 청소 시간에 가장 많이 노는 반이 몇 반이냐는 질문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6반이라 한다. 복잡한 미소를 짓는 나를 보고 충희가 “선생님 그래도 지각 결석 한 병도 없잖아요?”라고 외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준환이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전교에서 아이들끼리 가장 친하게 지내는 반은?”이라고 소리치자 아이들은 큰소리로 “2학년 6반”이라 소리 지른다. 종례를 마치고 교탁에 기대어 서있는 내게 민기가 언제 반성문을 썼느냐는 듯 미소 지으며 다가와서는 “선생님, 이번 기말고사에서도 우리 반이 1등 했다면서요?” 라며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