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문 국립병원장이 라디오에서 암의 원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암은 노화현상입니다.” 그럼, 암은 현대에 와서 생긴 병이 아닌가요? “아니죠! 옛날에는 그것이 암이라는 걸 몰랐을 뿐입니다.” 진행자는 놀라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왜 소아 암 환자가 생기는가? 스트레스가 암의 원인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닌가? 암의 예방은 별로 의미가 없는가? 각 질문에 대해 답변을 했지만, 처음에 했던 말을 바꾸지는 않았다. 개인의 신체 모습은 비교적 똑같이 유지되지만,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고 소멸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죽은 세포들이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남아서 변형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암세포이다. 암은 어떻게 보면 무서운 병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깨끗하게 임종을 맞게 하는 노화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내가 후배 의사에게 부탁한 말
나는 기관지가 좋지 않다. 병원에 가서 물어보면 약을 조금 준다. 완치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건 어렵단다. 한의원에서는 약을 주지만 얼마 지나면 다시 마찬가지가 된다. 밤에 자면서 목에서 쌕쌕 소리가 나니 아내가 걱정이 태산이다. 전문의사에게 가서 확실하게 치료받자고 한다. 나는 친한 후배 의사에게 찾아갔다. 꼭 낫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머리를 써서 뭐라도 좀 도움이 되게 하려고 노력할 것고, 본인이 아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나는 이렇게 부탁했다. “가난한 사촌 형님이 이런 병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라고 말할 것인지, 나에게도 꼭 그 정도만 말해줘요.”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돈도 없는 형님에게 별로 소용도 없이 돈만 많이 들어가는 진료를 받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그냥 아무런 조치도 없이 참고 견디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의과대학 교수다. 그는 학생들에게 슈바이처 박사에 대해 강의한다. 학생들은 감동을 받고, 연구실로 찾아와 학교를 마치면 아프리카로 가서 평생 봉사하며 살겠노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단다. 그러나 막상 졸업 때가 되면 모두들 포기한다. 더구나 힘들고 돈벌이가 잘 안 되는 전공을 택하는 대신 너도나도 성형외과 같은 전공분야로 몰린다고 한다.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나는 서점에 갔다가 재미있는 책을 하나 발견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김현정씨가 쓴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는 책이다. 의사들은 막상 자신이 병이 나면 수술을 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환자들에게는 너무 쉽게 수술을 권한다는 내용이다. 새로운 치료 기술의 도입과 신약 처방의 문제 등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는 일과 환자의 질병 치료에 이로운 일 사이에 생기는 틈과 모순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녀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몰매를 맞을 각오하고 책을 썼다. 유능한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국제 보건기구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병원 경영자나 의사의 입장보다는 환자의 입장에서 의료행위가 어떠해야 하는지 주장을 펴는 사람이다. 그녀는 돈 버는 일에 더 관심이 있는 의사가 아니라, 질병을 최대한 예방하고 최소 비용으로 병을 고쳐주는 일에 관심이 있는 보건 시민운동가인 셈이다. 그녀는 의료 미니멀리즘을 강조한다. 바로 그거다. 환자와 의사가 진정한 마음으로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의료 미니멀리즘이어야 한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강조해주고, 병이 나면 최소 비용으로 면역력을 키워 낫게 해주는 의사가 인간다운 의사이고,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 노력하되 의사의 소박한 처방을 신뢰하고 따르는 환자가 건강한 시민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나 과도하게 건강과 장수를 욕심내는 환자는 둘 다 불행한 인간형이다. 의료민영화를 획책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불행한 인간형들로 이 사회를 채우려고 하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