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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 | 연재 [보는영화 읽는영화]
화려한 액션영화, ‘퀴어’한 옷을 입다
차승원 주연 영화 <하이힐>
김경태(2014-08-01 16:17:01)




<하이힐>은 액션영화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차승원은 '600만불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윤지욱’ 형사로 분해 혈혈단신 맨손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다수의 적들을 제압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그 초인적 능력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근육질 몸매의 과시도 빼놓지 않는다. 문제는 과도하게 남성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그가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설정이다. 이 영화는 성전환이라는 소재를 억압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이용하며 액션영화를 ‘퀴어’하게 치장한다.


영화는 윤형사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태국에서의 성전환 수술을 앞둔 그는 형사로서의 마지막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죄 집단과 맞서고 있으며 바텐더로 일하는 ‘장미(이솜)’라는 여성이 그를 돕고 있다. 그가 회상하는 중학시절에는 사랑했지만 자살로 인해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한 동성 친구와의 가슴 아픈 추억이 담겨있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친구의 생전 부탁에 따라 여동생을 평생 지켜주기로 결심했고 바로 그 여동생이 지금의 장미이다.


우리는 윤형사가 여자가 되기 위해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고 트랜스젠더바에 출입하는 등 하나씩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아울러 그의 과거 경험을 비춰 봤을 때, 그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윤형사와 장미의 성적 긴장감을 배제시키지 않는다. 윤형사가 여자가 되려는 욕망과 별개로, 그리고 과거의 동성애적 경험과 별개로 현재의 층위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성적 욕망을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일차적으로 뒷받침한다.


무엇보다 이를 매우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윤형사가 친구와의 입맞춤을 떠올리면서 그와 눈이 빼닮은 장미에게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분명 ‘선남선녀’의 입맞춤이긴 하지만, 사실 윤형사가 그녀를 순간 친구로 착각을 해서 벌어진 일이다. 영화는 현재의 장미와 과거의 친구를 교묘하게 오버랩시키며 장미/여자를 일시적으로 친구/남자로 ‘성전환’시킨다. 그것은 보이는 것과 달리(!) 동성 성애의 함의가 담긴 장면이다. 물론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윤형사가 여자가 되려는 것을 고려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성별이 뒤바뀐 이성애적 자리(윤형사/남자 대 장미/여자에서 윤형사/여자 대 친구/남자로)에 정착한다.


장미는 단순히 윤형사의 성적 욕망을 모호하게 매개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본의 아니게 그가 여자가 되는 것조차 방해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 욕망, 즉 여자가 되려는 욕망과 장미를 지키려는 욕망은 본질적으로 상충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일단 여자가 된다는 것은 그가 지금껏 보여준 남성적인 힘, 즉 그녀를 지켜줄 능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윤형사는 위기에 처한 장미를 구하기 위해 태국에서의 성전환 수술을 포기한 채 남성으로서 자신의 육체적 능력의 극한을 보여준다. 결국 그는 장미를 구했지만 자신 안의 그녀를 죽이고 만다.


그런데 여기에서 드는 근원적인 질문 하나. 과연 그는 정말로 여자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혹시 자해를 할 만큼 자신을 괴롭게 한 욕망은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남자를 사랑하고 싶은 욕망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혹은 영화의) 동성애 혐오로 인해 과거의 실패한 동성애의 기억을 이성애적으로 조작하고 교정하려고 여자가 되려는 것은 아닐까? 영화 내내 강박적으로 죽은 친구에게 집착하고 결과적으로는 성전환을 포기하고 대신 남성적 힘을 유지한 채 장미의 오빠로 살아가는 모습이 어렴풋하게나마 이러한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적어도 그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내 안의 그녀가 죽었다’는 영화 포스터의 카피는 성전환의 실패에 대한 은유에 앞서 동성애적 욕망을 이성애적 수사로 낭만화하는 퇴행적 함의처럼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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