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2 | [문화비평]
강준만의 문화비평
'서울공화국'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2003-09-15 14:36:43)
건설부가 조사한 92년 말 현재 '수도권 집중현황'에 따르면 서울,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의 면적은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하나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1천9백66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인구 4천4백56만9천명의 44.1%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 면적의 0.6%밖에 안 되는 서울 지역의 인구는 전체의 24.6%인 1천97만 명이나 된다.
또 수도권 지역의 대학교 수는 64개로 전국 대학교 1백27개의 50.4%를 점유하고 있고 이 지역의 대학생 수는 47만3천명으로 전체 1백20만7천명의 39.1%에 이르고 있다. 그밖에도 수도권의 점유 비율은 의사가 51.2%, 승용차가 54.4%, 사업체가 57%, 은행 대출액이 62.3%나 된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우리나라는 '서울 공화국'이다.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전라북도의 경우 인구 2백만 시대가 무너지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전도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데다, 이젠 쌀 시장 개방의 암운마저 덮쳐 전라북도를 떠나는 사람이 늘면 늘었지 줄 것 같지는 않다. 서울이나 전북이나 모두 대한민국의 영토일진대, 세상에 이런 진기한 풍경이 또 어디 있으랴.
그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김영삼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임기중 지역격차 해소의 터전을 마련하겠다고 한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언제 어느 대통령 치고 '지역 격차 해소'에 관한 한 역대 대통령들은 식언과 기만을 일삼아 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김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인 만큼 듣기 좋으라고 '지역격차 해소'를 이야기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러했음이 분명하다. 그의 기자회견 이틀 전 상공자원부는 수도권 공장 증설의 규제를 대폭 완하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수도권에 연구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외국의 고급 기술인력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업계의 지적에 따라 첨단업종에 한해 수도권 공단의 연구시설 입주제한규정을 풀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 것인가. 김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 며칠 후 정부는 '국가 경쟁력 강화'의 차원에서 기존의 수도권 억제 정책을 아예 폐지하겠다고 한다. 그러고서도 '지역격차 해소'를 하겠다니 그게 '말장난''이 아니고 무엇일까?
'지역격차 해소'라는 말은 듣기는 좋아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기적으로 보자면 '국가 경쟁력 강화'에 역행할 수도 있다.
'지역격차 해소'가 속된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일이라면 누군들 그 일을 하지 못하겠으며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말이다. '지역격차 해소'는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과 용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 안목과 용단을 기대할 수 없는 현 정권하에서는 '환경보호'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현 '서울 공화국'체제하에선 지역발전이 국가적 정책에선 배제된 가운데 각 지역의 '로비'와 '탐욕'에 의해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다. 가치적으로 경영할 만한 물적 근거가 결여된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중앙을 향해 읍소하거나 환경 파괴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대기업들의 공장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일밖엔 없다.
현 정권하에선 환경보호가 정말로 어렵겠다는 건 이번 낙동강 수질오염사태를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사태가 터지자 관계기관대책회의하는 것이 열렸다. 그 대책회의가 마련한 중앙기대책에는 상수원 주요지점에 대한 상시 감사를 하겠다는 들어있다. 그러나 환경처 실무 과장의 말에 따르면 "현 인력으로는 상수원 주요지점에 대한 하루 한 번 씩의 순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건 수질 오염 현장을 방문한 이회창 총리의 추궁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총리의 눈에도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뻔히 보일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상수원 주요지점을 하루에 열 번 시찰을 하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거의 파국 상황에 직면해 있는 우리의 수질 오염 문제를 놓고 아무리 여러 대책중의 하나라지만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건 적어도 현 상황에선 전혀 격에 맞지 않는 미봉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부산의 식수원을 합천댐으로 바꾸겠다는 대안이 모든 신문들이 1면 머릿기사로 크게 부각되었던 것도 기막힐 노릇이었다. 정부나 언론이나 어찌 그리 하는 짓이 똑같은가. 그게 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처방이란 말인가. 수질 오염의 정확한 원인 규명도 안된 상태에서 2년 후에나 완공이 가능한 일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발상부터가 잘못됐거니와, 더욱이 기존의 상수원은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그건 회생 불능이니 '죽음의 물'로 내버려두겠다는 말인가? 식수와 관련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식수 오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국적인 문제인데, 언제까지 꼭 일부 지역의 파국적인 상황에 직면해서야 대안을 내고 그것도 그런 국부적인 '땜질 처방'으로 버텨나가겠다는 것인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에 대한 정부의 답은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가 식수오염을 포함해 환경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이번 문제의 원인이 기존의 무조건적인 성장 일변도 정책엔 아무런 책임이 없고 마치 몰지각하고 무책임한 일부 공무원들과 기업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교정되지 않는 한 환경문제는 영원히 겉돌 수밖에 없다.
수질 오염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은 정부의 '정책'이라는 마땅하게 장려되고 그로 인해 겉으로 불거져 나오는 수질 오염의 가시적인 폐해는 법으로 엄히 다스린다는 건 처음부터 알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현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환경보호 정책의 비젼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환경보호에 역행하는 일연의 정책을 입안해 오면서 '상징조작'으로 모든 걸 호도 하려는 작태를 일삼고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김영삼 정권의 죄악은 역대 군사독제정권이 저질러 온 죄악보다 더 클 수 있다.
과거 우리 국민은 '민주화'가 되면 적어도 개발 독재의 논리에 짓밟힌 우리의 '금수강산'만큼은 어느 정도 되찾을 걸로 기대했다. 역대 군사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소비 사회적 가치를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삼아온 것을 바로 잡기 위한 '구조 조정'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국민에게 절제와 분수를 요구하는 지혜와 용기를 보여줄 걸로 기대했다.
그런데 무슨 뒤가 그렇게도 구린 것인지 김영삼 정권은 과거 그 어느 군사정권보다 더 경제의 '장밋빛 환상'을 떠들어대기에 바쁘니 그 근시안적이고 졸렬한 '나르시시즘'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존의 '서울 공화국'체제를 해체시켜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려고 하는 진실된 의지가 없다면 환경보호는 불가능하다는 걸 김영삼 정부가 깨닫고 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모든 국민이 정열적인 환경운동가로 나서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