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적어도 20년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없었던 단어다. 용어는 없었지만 학교폭력을 당하는 아이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도 다양한 방식의 따돌림이 있었고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나 역시 방관자로, 피해자로 때론 가해자로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많이 아프기도 했다.
4학년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주희(가명)는 은따였다. 3학년 때 따돌림을 받았었고 진급 후에도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는 서먹했다. 3월 어느 날 작년에 주희를 따돌리던 우리 반, 옆 반 아이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 이야기 중에는 주희와 놀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싸인을 하다가 당시 담임선생님께 들킨 사건도 있었다. 놀란 것은 아이들의 태도였다.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고 있지 못했고, 그렇기에 여전히 상처 주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아이들은 크게 혼내고 사과하도록 했는데 당시 아이들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다행히 우리 반 학생 2명은 뉘우치는 것 같았다.
3월 말에 교내 친구사랑 주간 행사의 주제는 ‘친구에게 편지쓰기’였다. 은미가 주희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진심을 담아 쓴 편지를 읽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주희도 은미에게 같은 마음의 편지를 쓴 것이다. 다음 날 두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고 반 친구들 앞에서 편지를 읽어주며 두 친구의 진심어린 마음과 용기를 크게 칭찬하며 상도 주었다. 그 때부터 더욱 잘 어울리게 된 것 같다. 역시 칭찬은 공개적으로 할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민우(가명)라는 남자 아이는 특히 용준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민우는 용준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건드리는 게 보이는데 용준이는 받아주지 않았다. 민우의 장난은 갈수록 심해졌고 용준이가 일기에 힘들다고 쓸 만큼 사이가 악화되었다. 민우를 불러 왜 용준이를 괴롭히냐고 물으니, 친해지고 싶은 데 용준이가 받아주지 않는다며 눈물을 쏟았다. 또 용준이에게 왜 받아주지 않냐고 물으니 작년에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작년에 민우가 잘못한 것에 많이 속상했고 지금도 그 마음이 남아있어서 같이 놀기 싫다는 것이다. 둘을 불러서 민우에게 용준이의 마음을 얘기했더니 민우가 이해하면서 사과를 했고 용준이는 받아줬다.
그 날 남자아이들 전체와 상담시간을 가졌다. 먼저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은 사람 얘기할 시간을 줬다. 너도나도 손을 들며 사과를 했고 친구들은 사과를 받아줬다. 다음은 친구에게 서운했던 것을 얘기해보자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말하지 못하고 쌓아뒀던 것들을 조심스레 꺼냈다.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몰랐거나 잘못의 심각성을 몰랐던 아이들이 대다수였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남학생은 1학년 때 짝꿍이었던 같은 반 여학생이 금 넘어왔다고 학용품을 가져가고 할퀴고 했다며 지금도 그 여학생이 무섭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꼭 사과를 받고 싶어 했다.
이 같은 경험들을 통해 느끼는 것은 학교폭력을 막기 위한 방법은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그리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며 가장 중요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점점 더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예로 성범죄의 재범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본인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 잘못은 이미 돌이킬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다. 사과하는 말은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올해 초 유서대필사건 재심에서 2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강기훈씨 인터뷰가 기억난다. 그가 바란 것 역시 사법부의 진심 담긴 사과였다.
마지막으로 사과 받은 친구는 용서를 해줘야 한다. 아이들은 상대가 욕을 했으면 나도 욕을 하고 상대가 때렸으면 나도 똑같이 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옛날 사람들의 법이고 지금은 틀렸다고 가르친다. 똑같은 잘못을 하면 똑같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당장 용서하기 힘든 피해를 받았다면 시간을 갖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잘못을 해도 사과하지 않는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가 되어가고, 사과 받지 못한 아이들은 용서할 기회를 잃은 채 원망과 분노가 쌓여간다. 이런 감정들이 축적되어 드러나는 것이 ‘학교폭력’ 아닐까. 영원한 가해자도 영원한 피해자도 없다는 게 학교폭력의 속성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평소에 작은 잘못이라도 인정하고 사과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보면서 생일파티 장면이 가슴에 박혔다. 20년 전, 한 친구를 옆에 두고 다른 친구들과 귓속말로 흉을 보았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에서 눈물을 쏟았던 이유는 그 친구에게 사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지금도 아물지 않는 상처다. 학교폭력 피해자든 가해자든 결국 모두 상처받는다.
교사들은,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항상 들어줄 준비를 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어른들의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