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2003년 겨울, 비극적 사랑을 그린 ‘천국의 계단’이라는 드라마의 주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좋아했고, 수많은 버전으로 불렸지요.
‘아베 마리아 Ave Maria’, 무슨 뜻일까요?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지칭한다는 것은 다 아실거고 결국 아베의 뜻이 무엇인가에 따라 아베 마리아의 뜻이 결정될텐데요, 아베의 뜻이 좀 애매합니다. 아베 ave는 인사, 환영을 뜻하는 의미로 직역하면 ‘안녕하세요? 마리아님’인데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면 ‘축복합니다! 마리아님’, ‘찬양합니다! 마리아님’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베 마리아’라는 말을 탄생시킨 가톨릭에서는 ‘기뻐하소서! 마리아님’으로 해석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칭송하는 노래, 즉 성모송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를 칭송하는 것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기도문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이를 성모송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베 마리아’는 이 기도문을 그대로 옮겨 가사로 쓴답니다. 그런데 간혹 아베 마리아의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떤 노래는 라틴어 가사를(구노의 아베마리아 등 대부분의 아베 마리아), 어떤 노래는 기도문을 자국의 말로 번역해서(구찌의 아베마리아 등) 가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랫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은총이 충만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도다.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여, 이제와 우리가 죽을 때에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 아멘”.
아주 특이하게 이 기도문을 사용하지 않은 아베 마리아도 간혹 있기는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이지요.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는 가톨릭의 기도문 대신 ‘아베’와 ‘마리아’라는 두 단어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이런 음악을 보칼리제, 가사없는 음악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지만 누가 작곡했건 분위기가 거의 비슷합니다. 우아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선율을 사용하여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고, 평화롭게 속삭여주기도 하고, 그래서 천국에서 음악이 울려 퍼진다면 이런 노래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지요.
그렇다면 ‘아베 마리아’는 언제부터 작곡가들이 관심을 갖는 테마가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베 마리아’가 종교적 색채가 강한 주제이니 신심으로부터 비롯된 음악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세속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아 탄생된 것이랍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숭배받고, 그리고 신비롭게 여기는 여인이 바로 성모 마리아일텐데요(그래서 성모 마리아가 어떤 분인지를 연구하는 학문(Mariology)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대중의 본격적인 숭배가 일어난 것은 십자군 전쟁시기였습니다(성모 마리아에 대한 찬미는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시작되었고, 4세기경에 성모승천설이, 6세기경에는 성모송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엄격한 교리로서 다루어졌습니다). 종교적 의미만 걷어내면 성모 마리아는 부드럽고 자애로우며 용서와 위안으로 가득한 여성의 표상과 같습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원하는 모든 이상적인 덕을 다 가진 것이지요. 한마디로 여성성에 대한 극찬입니다. 미지의 먼 나라로 떠난 유럽의 기사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전쟁에서 쉽게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원정길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웬걸요. 이슬람의 이교도들은 용맹했으며 전쟁은 참혹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전쟁에 지친 기사들에게는 신의 가호가 필요했고 또 어머니와 아내의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마치 우리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듯 말입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찬미가 더욱 본격화된 데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평생 봉사한 이탈리아의 수호성인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d’Assisi, 1182년~1226년)도 한몫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십자군에 종군하기도 했는데 그는 성모 마리아를 재발견하면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최고의 찬미가(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인사)를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미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 찬미가로부터 비롯되었고 이는 수많은 음악, 그림, 조각들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엄격한 중세의 기독교 문화에서 여성을 사랑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경건하고 거룩한 존재이며 최후의 심판자이기 때문에 항상 엄숙하고 엄격한 마음가짐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십자군 시기에 일어난 성모 마리아의 재발견은 자연스럽게 여성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졌고 그리고 낭만적 사랑의 신화로 자리잡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수많은 찬미가나 찬미시들은 매우 서정적이고 낭만적이었습니다. 이런 글들은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만들어졌는데 가사말에 따라서 매우 감미롭고 우아하며 부드럽고 섬세한 음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일부는 가사를 살짝 바꿔서 세속음악으로 만들어졌고 중세의 음유시인들(트루바도르나 민네징거 등)에 의해 연인들을 위한 낭만적 연애노래로 사용되기도 했지요(낭만적 이성관, 여성에 대한 신비화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십자군 전쟁 이후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이미지는 12세기에 나타난 낭만적 사조와 결합하면서 뭔가 엄숙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성인에서 매우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감성을 가진 친근하고 다정한 여성, 그러나 동정녀의 처녀성을 훼손해서는 안되는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여성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술은 이러한 이미지의 성모 마리아를 그려내는데 열중하게 된 것이구요.
많은 분들이 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참 좋아하시는데요. 원래 이 곡의 작곡자는 바흐입니다. 바흐가 작곡한 평균율 클라이버곡집에 수록된 곡 중 1번 전주곡에 구노가 멜로디 일부를 덧붙여 ‘바흐의 전주곡에 붙인 명상곡’이라는 연주곡을 만들었고, 6년 후에 자신이 좋아했던 여제자에게 이 작품을 바치기 위해 가사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붙인 가사도 아베마리아는 아니었습니다. ‘젊은 여성에게 바치는 연애시’를 가사로 붙였습니다. 이 노래를 들은 그 여성의 어머니가 곡의 분위기와 가사가 안 어울린다며 라틴어 기도문 ‘아베 마리아’를 붙이길 제안했고 구노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지금의 아베 마리아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구노가 대충 만들어낸 곡이 지금은 세계인이 사랑하는 구노의 대표작이 된 셈이지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역시 <호수의 연인>이라는 서사시를 가사로 해서 발표한 연가곡집의 6번째 가곡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 곡이 호수의 연인이 성모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 부분이었고 가사의 첫 부분이 아베 마리아로 시작하기 때문에 본래 가사 대신 라틴어 성모송을 붙여서 부르면서 지금의 아베 마리아가 된 것이구요.
또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는 카치니가 원 작곡자가 아니라는 설이 파다합니다.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가 알려진 것은 1995년 이네사 갈란테가 부른 음반 때문이었습니다(이전까지 이 아베 마리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는 카치니가 남긴 작품집에도 이 곡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현대의 무명 작곡가 러시아출신 블라디미르 바빌로프가 작곡자인데 워낙 무명이다 보니 카치니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국의 가톨릭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답니다. 가톨릭에서는 교구나 성당을 새로 지으면 그 곳을 지켜 줄 수호성인을 정하는데 우리나라의 수호성인이 바로 성모 마리아입니다(1841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승인). 또 명동성당의 수호성인이기도 하구요.
사연이야 어떻든 어떤 작곡자의 곡이건 아베 마리아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그래서 감정이 사나워질 때 아베 마리아 만큼 잘 듣는 약도 없습니다. 한번쯤 실험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