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미국의 윌리엄 월시박사와 그의 연구진들이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 1827년에 사망한 베토벤은 심한 납중독 상태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베토벤은 청년시절부터 유서를 쓸 만큼 심신의 고통이 심했고, ‘존경하고 싶지만 괴팍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성격마저 괴팍하였습니다(그런데 베토벤은 자신의 성격적 결함이 어떤 질병으로부터 온 것이라 믿고 자신이 죽으면 해부를 통해 그 질병이 무엇인지를 밝혀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또한 베토벤 사후 진단기록과 해부소견서마저 불타 없어져 베토벤을 괴롭혔던 질병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의 성격적 결함이 무엇으로부터 연유된 것인지, 또 베토벤은 고통 속에서 사망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러 억측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억측이 2000년 윌리엄 월시의 발표로 해소된 것이지요.
윌리엄 월시의 발표를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된 것은 그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직접 분석하였기 때문인데 그는 도대체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어디서 어떻게 얻게 된 것일까요? 베토벤이 죽자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을 조문하러 왔습니다. 이때 아버지와 함께 조문왔던 젊은 음악가였던 페르디난트 힐러가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한웅큼 잘라서 보관했습니다(19세기에는 고인의 머리카락을 잘라 보관하는 것이 고인을 추모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이 머리카락이 나치시대에 유대인을 도왔던 덴마크 의사 케이 프레밍에게 건너갔고, 1994년 12월 1일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7,300달러에 베토벤을 흠모했던 미국인 이라 브릴러이에게 팔렸습니다. 그가 시카고의 네퍼빌 보건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인 윌리엄 월시 박사에게 DNA 검사를 의뢰하였고 월시박사는 일리노이주의 국립아르곤연구소와 협력하여 4년간 연구를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연구결과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는 정상인의 100배가 넘는 납이 검출되었습니다.
베토벤 죽음의 원인이 과학적 연구에 의해 밝혀지기 전까지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첫 번째 억측은 베토벤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 때문에 사창가를 들락거렸고 그로 인해 매독에 걸렸으며 당시 매독치료제로 사용되었던 수은에 중독되어 사망했다는 설입니다(슈베르트 죽음의 원인도 이것 때문이라고들 하지요). 그런데 머리카락에서 납만 검출되었을 뿐 수은은 검출되지 않았으니 이 가설은 틀린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두 번째 억측은 베토벤의 친구이자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의 주장인데 그는 당시 베토벤의 주치의가 베토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자주 모르핀을 주사했는데 그 때문에 모르핀 과다로 사망하게 되었다는 설입니다. 그러나 모르핀 역시 검출되지 않았으니 이 가설 또한 기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에게서 모르핀이 검출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납중독의 고통 속에서도 베토벤이 모르핀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가들은 베토벤이 처음에는 모르핀을 사용했지만 모르핀 주사를 맞으면 고통은 줄어드는 대신 정신이 흐려지고 무기력한 상태로 지내야 하므로 샘솟는 창작의 열망을 가지고 있던 베토벤으로서는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창작의 열망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어서 모르핀 처방을 거부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베토벤의 죽기 전에 얼굴이 검게 변했으며 복통이 심했다는 이유로 간질환을 의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독일의 법의학자인 하랄드 키예프스키박사는 베토벤이 납중독 상태였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사인은 간경화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오랫동안 납중독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베토벤의 성격이 왜 점점 더 괴팍해졌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해졌습니다. 납에 중독되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우울해지며 불안정 상태를 자주 경험하게 되고,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불면증, 두통, 심한 복통이나 근육경련을 겪게 되고, 심하면 눈이 멀거나 귀머거리가 되며 마비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베토벤이 겪었던 잦은 질병, 편두통, 복통, 귓병 등이 납중독으로 인해 생겼거나 아니면 그로 인해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납중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므로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못했을 테니 의사의 처방이 큰 도움이 되지 못했겠지요. 그로 인해 잦은 짜증이나 히스테리를 부렸을 텐데 사람들은 그런 베토벤의 처지를 알지 못했으니 그저 성격이 괴팍한 사람으로 이해했을 수밖에요. 하긴 베토벤도 자신의 의지와 달리 짜증과 히스테리를 부린 것에 대해 오죽 답답했으면 자신이 죽게 되면 반드시 부검을 통해서 자신의 병을 밝혀 세상에 널리 알리고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라고 유언을 남겼을까요.
그런데 베토벤은 어떻게 해서 납중독에 걸리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연구했던 팀이나 역사가들도 아직 명쾌한 답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정황증거만 있을 뿐이지요.
가장 설득력이 있는 얘기는 19세기 유럽사회는 중금속의 위험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해 촛대, 담배파이프, 심지어는 와인잔이나 식기 등 납 또는 납도금으로 만든 일상생활용품을 흔하게 사용하였고, 의사들도 납이나 수은을 치료약으로 사용할 정도였으니 누구든 납중독자가 될 위험성이 높은 사회적 환경이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베토벤은 와인을 즐겨 마셨는데 그때마다 납으로 만든 와인잔을 사용하여 납중독의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베토벤이 사망한 1820년대는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도시 근교에 공장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던 시기였습니다.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은 대기를 오염시키고,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폐수가 강물을 오염시켰지만 아직 그것이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던 시대였지요(당시 빈의 수돗물에서는 납이 심하게 검출되었을 정도랍니다). 베토벤이 자주 들렀던 도나우강 인근에도 많은 공장이 들어섰고, 중금속 오염물질을 함유한 폐수는 그대로 도나우강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하필이면 베토벤이 아주 즐겨먹었던 음식이 도나우강의 공장 지역 근처에서 잡은 민물고기 요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음악사가들은 베토벤의 납중독이 오염된 도나우강의 민물고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베토벤이 자주 목욕하러 들렀던 온천 역시 다량의 납이 함유된 수도관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토벤이 몸을 담근 온천물이 납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결국 베토벤의 납중독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종합해보면 베토벤이 말년을 보낸 19세기 초는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하던 때로 중금속을 이용한 일상 생활용품들이 대량생산되어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공해나 오염물질, 중금속의 폐해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직 깨우치지 못해 모두가 중금속 중독의 피해자가 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시대였습니다. 실제로 베토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이 납이나 수은중독에 시달렸으니까요(하인리히 하이네는 베토벤보다 더 심한 납중독상태로 말년에는 몸이 심하게 뒤틀리는 마비상태였답니다).
베토벤은 납중독으로 인한 잦은 병치레(청각장애도 납중독으로 인해 발생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편두통과 신경성 질환으로 인한 짜증, 무엇이든 그렇지만 어느 것에 중독된다는 것은 제대로 영혼을 보존할 수 없게 만들지요. 이처럼 극도로 심신이 불안정하고 통증이 심한 상황에서 불멸의 작품들을 써내려갔다니 그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그리고 베토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토벤은 젊은 시절 남긴 유서(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음을 생각했을 때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나를 붙들었다. 문득 신이 내게 명령하신 일을 다 끝내기 전에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 손을 통해 태어나야 할 음악들… 그것을 생각하며 나는 지금 비참한 삶을 견뎌 내고 있다. 나는 하루하루 내 마음에 인내를 새로 쓰고 있다. 나를 위협하는 운명이 내 삶을 끊어 버리는 순간, 그 때까지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예술 열정이 활활 타버리기 전에 죽음이 닥쳐온다면, 나는 맞서 싸울 것이다. 언제든지 나는 용감하게 맞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