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 |
오래된 미래의 가능성 [3] 2000's
관리자(2006-12-27 13:48:25)
지방문화의출구를 찾다
공공성에 눈뜨기 혹은 더 치열해지기
참석자
박진희_미술가· · 숨조형연구소 소장
양문희_전주영상위원회 홍보팀장
정훈_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최기우_극작가 · 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진행 : 이경진 _ 전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 시인
일시· 장소 : 11월 10일 금요일 오후 4시 양사재
2000's
이경진- 오늘 사회를 맡게 된 이경진입니다. 전주에서 십 몇 년간 문화판에서 일하고, 서천 문화원에서 3년여 동안 일하다가 얼마 전에 다시 전주로 오게 됐습니다.
오늘 집담회는 젊은 시선으로 본 2000년대 문화지형에 대해 말해보는 자리입니다. 2000년대 들어와서 각자 자기가 활동한 판 안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나 정책적 전환 등을 말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02년도 노무현 정권이 세워지면서 최소한 문화정책적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 정책들에 대한 평가와 검토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전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 자리에서는 평가와 더불어 대안까지는 나오기 힘들 것 같고, 허심탄회하게 지금까지 바라본 상황이나 느낌, 소회 등을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진희 씨는 문광부의 새 정책 기조 중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인 문화예술교육사업에 관여를 하기도 해서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순수예술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
박진희- 크게 보면, 2000년대 문화지형 중 변화된 부분이 있다고 하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화판이 조금은 다양해지고, 보여지는 현상들이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평은 초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다들 밥그릇 싸움으로 평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크게 보면, 향유자들을 위한 문화 판짜기도 변화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미술판 뿐만이 아니라 전 장르에 걸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편중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오히려 순수예술부분을 놓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죠.
작가들이 작업을 하는 공간자체조차도 현재 넉넉하고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작업실의 문제뿐만 아니라, 순수예술 분야 전체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순수예술분야에 대한 투자 없이는 절대 문화의 발전도 이뤄질 수 없습니다. 작가들의 문화정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구요.
향유자들을 위한 문화판짜기도 좋고,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라던가 다양한 프로젝트들도 좋지만, 우리가 정말 질 높은 문화를 향유를 위해서는 순수예술에 대한 투자가 절실합니다.
이경진- 시작부터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줬습니다.
형식적이고 성과위주, 변해가는 사업들
최기우- 시작부터 이야기가 너무 크네요. 즐겁게 가보죠. 내가 어떻게 문화판과 인연을 맺었는지, 무엇하고 살았는지, 하는.
저는 대학 때 전북작가회의와 인연을 맺었죠. 그러다 소설 쓰고, 희곡·창극 등의 무대극 쓰면서 최명희문학관에서 월급 받고 삽니다. 그 사이에 전주국제영화제와 전북일보, 혼불기념사업회 등에서도 일했습니다.
작가회의 등에서는 무보수였어요. 당시 단체들의 예산이 2천만 원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영화제는 6개월 단기스텝이었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하면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속에서도 ‘정치’가 있더군요. 그 뒤, 전북일보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고. 아이러니컬 하게도 취재기자이면서 취재대상이기도 했지요. 기자 그만 둔 뒤에는, 다행히 백수가 아니라 전업작가라고 불러주더군요. 뜻하지 않게. 한때 무보수-간사로 일하던 혼불기념사업회에서 1년 넘게 무보수-사무국장 하다가, 올해 4월 달부터는 최명희 문학관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구요.
제가 경험했던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중반의 차이는, 우선, 예산입니다. 제가 속했던 단체들의 예산도 큰 폭으로 늘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예산규모는 몇 배가 늘었지만, 간사들의 월급은 너무나 적고, 실무 최전방인 사무국장들은 여전히 무보수라는 겁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상실이랄까.
또 하나. 프로그램의 양적·질적 수준입니다. 양적으로는 크게 늘었지만, 손에 꼽을만한 행사는 없다. 형식적인 사업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단지 문학만이 아닙니다. 제가 무대극을 쓰기 때문에 문학뿐 아니라, 연극이나 국악 등의 분야에도 관계하고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의 느낌입니다. 예산은 크게 늘었고 작품의 수도 늘었지만, 감동이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을 찾기는 어렵죠. 그 준비과정에서의 진지함은 더더욱 그러하고……. 물론 지극히 사적 견해입니다만, 형식적이고 성과위주로 사업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원기금의 힘
박진희- 맘이 급해서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너무 일찍 꺼냈나 봅니다. 제가 했던 작업들에 잠깐 늘어놓자면 개인적으로 저는 2000년 초기에 아이를 낳고 아버지의 병수발로 2, 3년 동안 활동을 중단하고 즐거울 작업들만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가장 크게 저를 흥분시켰던 건 미술로 놀아보는 공공미술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운 좋게 문예진흥기금도 지원받게 되고 덕분에 동료작가들과의 소통의 길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민미협은 회원들이 자비를 들여 활동을 하는 터였는데 ‘놀이터로 놀러간 미술 프로그램’에 2천만 원을 지원받으면서 민미협 활동 자체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생겼었어요. ‘놀이터로 놀러간 미술 프로그램’은 전시장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미술 프로그램을 갖고 찾아가 함께 즐기는 별미 같은 작업이었고 더불어 예산의 힘은 작업실 운영조차 힘들었던 작가들에겐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죠.
또 하나 저는 오랫동안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초기에는 아무도 함께 일할 사람이 없었어요. 관심이 별로 없었던 거죠. 그런데 작년에 숨 쉬는 회색 담 프로젝트를 문광부에서 지원을 받게 되어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고, 동지들도 생겨났습니다. 예산이라는 것이 굉장히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밀도 있고 질 높은 작업들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는 자생력을 키워 나가는 게 시급할 것 같아요.
프로그램의 형식화는 누구나 느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는 것 자체는 굉장히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꼭 마지막에는 성과보고서를 내게 돼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요구하는 것이 너무 형식적이고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작가들 입장에서는 정말 즐겁게 함께 작업하는 것이 목적인데, 나중에는 혼란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번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너무 행정위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몇몇 단체와 함께 항의 글도 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행정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문화기획의 역할 커질 것
정훈- 저는 현재 역사박물관에서 기획과 홍보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도 했지만,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갖고 있는 많은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 이런 분야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어야 문화예술활동도 하듯이, 문화예술 활동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사업이 담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안정되면, 그 뒤로 한 단계 진일보해서 문화예술 사업도 한층 안정될 것입니다.
저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했습니다. 문화인류학도 물론 박물관에서 일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학문분야는 대부분이 고고학이고, 그 뒤로 민속학이나 문화재보존학, 사학 등 입니다. 역사박물관 역시 민간위탁시설로써 이를 운영하는데, 고고학이나 사학을 전공한 인력만으로는 지역 안에서 활발하게 꾸려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제가 들어가서 이런저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문화를 기획하고 홍보하는 역할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죠. 앞으로도 이런 인식은 계속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문화포럼 이공(異共)’이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정책 등을 비롯해 문화전반에 대해 2주에 한번 정도 만나 공부를 하는 모임입니다.
이번 달, 23일에는 전북도내 일간지 문화부기자분들과 문화시설이나 단체의 언론홍보를 담당하시는 분들과 워크숍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있는 자리에요. 홍보를 하시는 분들은 신문을 만드는 시스템이나 ‘기사꺼리’를 만드는 테크닉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저는 앞으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의 중요성이나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경진- 편하게 얘기를 하다보니 꼭 짚어야 할 것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상의 시대, 인력 발굴이 아쉽다
양문희- 저는 전주영상위원회에서 홍보팀장을 하고 있습니다. 2003년도부터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옛날 얘기부터 하면, 90년대 초반 <서편제>가 흥행에 성공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한국영화가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우리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1995년은 세계영화탄생 100주년 이었는데 때맞춰 우진문화공간에서 영화관련 강의를 했고, 같이 강의를 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너무 서운하니까 뭔가를 해보자고 해서 만든 것이 온고을영화터라는 시네마테크였습니다. 그때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즐기는 팬 입장이었다가, 2003년도에 국제영화제 스탭을 하면서 영화관련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전주영상위원회는 지난 2001년 김완주 시장시절 전주시에서 만들었습니다.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었죠. 지금 현재 전주영상위원회는 한국영화의 50%정도를 전북지역에서 촬영하도록 유치하는데 성공했으며 관계지자체나 언론이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비롯한 영상 관련은 문학이나 미술 보다 훨씬 더 예술이 아니라 산업에 가깝습니다.
단편영화작업하는 사람들이 전북지역에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장비 등은 대학과 미디어센터 등에서 대여할 수 있지만 워낙에 고되고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 열정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경진- 활성화되고 일도 잘하는데 영화가 예술장르로서 본다면 독립영화제작이 활성화되도록 지원이 되고 있나요?
양문희- 정보영상진흥원, 미디어센터 등 있는데 전주에 독립영화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습니다. 거의 학생들이죠. 그것도 졸업을 하고 나면 서울 등지로 다 떠납니다.
영화판이 디지털화되는 것은 인맥으로 만들어지는데 영상인력을 키우는데 노력해야합니다. 단편영화제작기획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도 거의 인맥으로 이뤄지죠. 그것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최기우- 디지털이나 인터넷, 인디, 독립이라는 단어가 떠돌던 2000년 들어 전북에서 가장 성장한 부분 역시 영상일 겁니다. 소규모 문화예술기관과 단체에서 하는 영화제를 빼더라도 전북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10개가 넘습니다. 영화촬영이 늘어나면서 관련시설이 늘었고, 2002년을 전후로 해서는 제작인력도 늘었고, 특히 지역 내에서 영화촬영한다고 돌아다니는 학생들도 많았지요. 시설도, 우석대 같은 경우는 영상장비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지원들도 잘 정비되어 있죠.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필름워크숍 출신들도 있었고. 그런데 최근 갑작스럽게 현장에 있던 친구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취직도 했고, 서울로 가기도 했지요.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 친구들에게 말했던 것 중에 영화는 종합예술이니만큼 다른 장르에도 관심을 갖으라는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장르가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서로 관심이 없어요. 예전에는 각 장르별 작가군들의 회합이 많았다고 하잖아요? 지금은 거의 없어요. 장르간 결합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지요. 자신들끼리 아니면, 단체활동도 잘 안하고. 펜을 쥐었든, 붓을 쥐었든, 카메라를 쥐었든, 예술이라는 게 분명 미묘하게 선을 잇대고 있고, 어떤 것들은 그물처럼 촘촘히 얽혀있기도 할텐데. 물론 저는 다른 장르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탈입니다만. 한 줄만 타고 오니까, 외롭고 위태롭지요. 소소한 바람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지요.
지원, 그 진정한 힘과 역량
박진희- 여기에 붙여서 얘기를 좀 하자면, 요즘 후배들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후배들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후배들은 있어요. 그런데 후배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요. 요즘 대학을 졸업하는 후배들 중 대부분이 졸업 후에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때만해도 졸업 후에는 절대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후배들도 거의 없고, 또 있더라도 졸업 후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거의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작년에 강현욱 지사가 문화예술지원 기금으로 3억원을 내놓았습니다.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죠. 이 기금으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했습니다.
그때 이 예산의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작품을 사주는 것보다, 기획전 공모를 통한 작품매입, 스튜디오 지원 사업 등의 여러 방법 등이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그 해에 예산을 집행해야하는 관계로 작품 구입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 전라북도의 문화예술 공간이 양쪽으로 굉장히 팽창했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도청사갤러리 등, 대규모 문화공간들이 많이 생겼죠. 그런데, 젊은 작가들이 발 디딜 틈이 없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추첨을 통해 전북예술회관에서 전시를 합니다.
미술판에서는 전북에 제2의 르네상스가 왔다고 할 만큼 전시가 많이 늘었지만, 속이 허하다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그만큼, 작가들의 창작 욕구는 팽창하고 있는데 공간들의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은 이뤄지지 못했다는 거죠.
최기우- 대학 졸업자나 젊은 친구들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이 국악과 연극 분야일겁니다. 관립단체나 강사풀제 등이 있다고 하지만, 원활하게 순환되지 않고, 계속 밀려 있어서 졸업해봤자 갈 곳이 없거든요. 자신들끼리 단체를 만드는 친구들도 있지만, 오래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농담삼아 가끔 하는 말이 관립시인이나 관립소설가란 단업니다. 제 바람도 관립 작가예요.
또 하나. 지역 내에 사람이 없다, 후배들이 없다, 는 말을 많이 하는데. 없는 것이 아닙니다. 후배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이 대개 편지 부치기나, 워드작업 정도지요. 단순한. 실제로는 전북의 문화영토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후배들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가끔 능력을 가진 후배들이 찾아지기도 하는데, 지금 문화예술판의 예산활용구조나 인력활용구조를 알면 도망가죠. 문학관만 해도 그래요. 월급은 적고, 휴일은 없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밤샘작업 하라고 하고. 가장 듣기 불편한 말이 ‘희생’이란 겁니다. ‘우리 때는~’ 이렇게 시작해서, ‘~술이나 한 잔 하자’로 끝나는 선배들의 훈시. 그래서? 선배들도 힘들게 살았으니까 니들도 당해봐라? 물론 이건 아니겠지만, 후배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인권이 있지요.
앞서 지나가신 분들이 지금 지나가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개선되어야 할 것들을 찾아주고, 보듬어줘야죠. 물론, 제가 선배가 되어가면서, 저 역시도, 그 불편했던 단어들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것을 보고는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의 문제
이경진- 잠깐 정리를 하자면, 공적 자원의 투자는 늘어난 반면, 작품이나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고, 이것은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 같습니다. 이 시스템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최기우 씨의 말대로 위의 몇몇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 같구요.
전북작가회의가 2000년대 들어서 공적자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예진흥기금은 훨씬 전부터 있어왔어요. 물론 노무현 정권 들어서 늘어나긴 했습니다만 기초예술분야에 대한 지원은 전부터 있어왔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을 몇몇 단체가 독식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문학회 활동을 했었습니다. 이 단체는 우리 돈 부어가면서 유지했었습니다. 5년 동안 격월간으로 끈임 없이 회보도 만들었구요. 그런데, 5년 중에 1년 동안 문예진흥기금을 1백만 원인가 2백만 원을 받았습니다. 알고보니, 이런 식으로 전부터 받아온 단체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배분에 있어 문제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문제를 좀 짚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최기우- 지금은 기획하는 사람들만 많아요.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부족합니다. 작가회의 경우,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가 여름시인학교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때는 많은 작가들이 먼저 참여했고, 앞서서 돈을 갹출했고, 여러 곳에 연락해서 물품 지원도 많이 받았습니다. 십시일반이었죠. 시인학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선물까지 두둑하게 받아 갔구요. 이 때 당시만 해도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그럼 우리가 얼마나 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관의 지원이 늘었지만,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들의 숫자는 예전만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경진- 대안 찾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공적자금이 투여됐는데, 이것이 실제로 기초예술이 키우는 것보다, 자생성을 없애고 있다는 것이죠.
박진희- 얼마 전에 오픈스튜디오지역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주체측 실무자들은 사업을 어떻게 꾸려나가면 좋을지를 논의하고 싶어 했지만 막상 작가들은 우리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 그 이전에 우리의 지역에서 미술하기의 현실은 어떠한가, 등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작가들이 모여 깊이 있고 솔직한 소통의 자리가 되어 반가웠습니다. 술자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지요. 지역 미술판에서 살아가는 작가들의 공식적인 세미나나 토론자리가 쉽지 않으니까요.
지역에 판짜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선후배간의 소통은 매우 절실하다고 봅니다. 선배님도 계시고 후배들도 있으니까요
후배가 없다는 말들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경진- 젊은 인력이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중진이라고 하면서 여기저기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이 막상 실무를 하자고 하면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력양성에 왜 그리 인색한가
정훈- 아직도 지역내 문화예술 파트에서는 기획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기획도 하나의 전문분야로 인정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통합적인 시각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미술을 전공하는 하는 사람들은 미술 쪽만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은 문학 쪽만 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서로 다른 내용의 장르들을 떠나서 이것들을 통합하고, 다양한 문화시설들이나 단체들을 운영할 수 있는 인력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직접적으로 예술을 하는 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시설 쪽 얘기를 좀 하면, 현재 문화시설이라고 하면 그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공연장이나 전시장 이외에도 체육시설, 도서관 등도 문화시설도 들어가 있어요.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전주에 문화시설들이 많아졌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형식화된 장르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 예술 쪽 일을 하시는 분들이고, 문화의 범위는 좀 더 넓죠.
우리 지역 내 문화예술인력의 사회진출 형태를 보면, 특정 라인을 타야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문화 쪽도 정치적인 것과 결합이 많이 되어있습니다. 엊그제 문화시설 평가를 했어요. 한옥마을 시설과 역사박물관은 전통문화시설로 분류가 돼있었습니다. 박물관이 한옥마을 내 다른 민간위탁 시설과 같은 분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도 말도 안 됩니다. 전주시에서 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죠.
한편으로, 전주시의 문화시설들의 양적 팽창은 계속 확대되어 가고 있지만, 운영에 대한 노하우와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인력의 축적은 여전히 제 자리 걸음인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왜냐면, 최기우 씨가 말했듯이, 100만원을 줘야 하는데, 50만원밖에 주지 못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지금 대학졸업하고 오면 연봉 1200만원을 주는데, 그것을 받고 일을 해야 하는 문화판의 인력들은 어떻게 보면 매우 불쌍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판에서 자기 꿈들도 꾸지 못한다는 얘기죠. 2002년도, 초기 문화시설들이 개관할 때 일을 시작한 사람들 중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에요.
특히나, 저도 전통문화센터에서 전주역사박물관으로 옮기면서 보니까, 홍보만 하려고 해도 예전에 했던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자료관리가 안되어 있어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심지어 유물 기증자에 대한 관리도 안돼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기증자들이 와서 자기 기증 작품들을 좀 보고 싶어 하더라도 얼굴도 모르고, 보기도 힘듭니다. 자료집도 초기의 것들은 없는 것이 많구요.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 박물관뿐만 아니라 다른 시설들도 다 똑같을 거에요. 상황이 이러니 현상적으로 커지고는 있지만 내실을 다지는 부분에서는, 지역내 문화, 예술,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대학교 다닐 때부터 학보사에서 문화관련 파트에서 일했습니다. 그때도 전북문화판에 인력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인력을 운영할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배들이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경진- 정말 문화판에서 믿고 같이 일할 수 있는 선배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기우- 많이 부족하죠. 30대도 태부족이지만, 40대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너무 일찍 원로가 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연극을 예로 들면, 40·50대 중년 역할은 그 나이 대에서 해 줘야 맛이 납니다. 문화판도 마찬가집니다. 중년이면 중견, 원로면 원로, 그에 걸맞은 의무와 권리, 역할과 책임이 있는 것이고, 20·30대면 그에 어울리는 일들이 있겠지요. 하나 더. 하나를 버리면 둘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농담반진담반으로, 결국 선배들을 챙기는 것은 후배들입니다. 선배의 업적을 기리고, 그 다음 다음 세대에 선배의 이름을 전하는 것은 바로 그 아래 후배들인 것이죠. 가장 만만하면서도 가장 조심스러운 집단이 바로 후배입니다.
정훈- 행사를 치를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에 역량 있는 후배들을 끌어다가 쓰지만, 행사가 끝나면 일했던 후배들은 버려져버리고 문화판의 뜨내기, 보따리장수가 되어 버릴 밖에요.
최기우-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세계소리축제, 풍남제가 대표적으로 단기인력을 쓰는 주최들입니다. 이 축제들이 지역의 인력을 키우는데도 역할을 많이 했지만, 거꾸로 인력들을 뱉어내는 일도 많이 해왔습니다. 굵고 짧게, 싸고 빡세게 일시키고 팽개치는 거. 그러다 사람 없으니까 때 되면 손짓하고. 문화예술계의 젊은 친구들 보면, 모두 두세 군데 이상의 단체를 거쳐 왔습니다. 준거집단을 찾기 어려운, 그거에 익숙해 질 수밖에 없는 문화적 구조가 전북에 만들어 진 것이고, 자리를 잡은 겁니다.
정훈- 지금 전주가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주전에 안동에 다녀왔는데, 거기에 한국학진흥원이 있습니다. 그곳과 전주역사박물관이 학술교류를 하기로 했는데, 그곳 내부적으로 논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곳과 전주역사박물관의 격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1차 학술교류를 전주역사박물관에서 했는데, 그곳에서 왔다가 규모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진흥원에 비해 역사박물관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죠. 우리도 그곳에 가서 그곳 규모의 거대함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차이가 너무 많이 났습니다. 단적으로 전주역사박물관에는 박사가 이동희 관장 한명밖에 없고, 바로 밑이 저에요. 중간을 채워줄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예산 때문에 없는 실정입니다. 안동 같은 경우 박사만 20명나 된다고 하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의 양만 늘릴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인력과 업무환경, 연구환경 등을 갖춰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이런 상태로 간다면 전주의 문화예술, 더불어 연구환경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10년 후에 전주의 모습, 나아가 30년 후에 전주의 모습을 어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최기우- 어디 그뿐인가요? 짚고 넘어갈 것이, 관에서 가지고 있는 연봉에 대한 개념이 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전주문화재단과 문화의집 근무자들의 경우만 해도 그렇지요. 재단은 많이 받아야하고, 여타의 단체들은 뭐 하는 것이 있다고 많이 주느냐고 합니다. 창피한 전주의 모습입니다. 어느 곳은 예산 못 깎아서 안달이고, 어느 곳에는 쩔쩔매고.
관립이라고 해도, 국립과 도립, 시립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어느 예술단체는, 공연예산이 국립단체의 홍보예산보다도 못한 곳도 있죠. 전주의 문화시설만 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정훈- 기본적으로 예산을 떠나서 인력이 왜 중요하냐면,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연구담당, 유물담당, 전시담당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인력은 꼭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요즘은 교육 담당과 기획홍보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역사박물관은 불과 몇 명이 이 사업들을 중복해서 담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기우- 이제 긍정적인 것도 말해봅시다. 2000년 들어 새로운 직업군이 많이 생긴 것은 좋습니다. 여러 시설이 생기고, 그로 인해 문화인프라의 규모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 로케이션 매니저나 문화유산해설사처럼 새로운 역할을 찾아냈다는 것.
정훈- 시에서 문화시설단체에서 일하는 인력들에 대해 퇴직금을 주는 것도 문제제기를 합니다.
문화산업 성장의 힘은 기초예술
이경진- 사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인데, 위탁시설이 늘어나는 것이 지자체 평가에서는 마이너스 항목이라 이번에 지자체 평가에서 전주시가 꼴찌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에는 함정이 많습니다.
민간위탁이라는 것은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무원의 티오를 줄이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죠.
전북이 영화산업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기초예술분야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지원되고 있습니다. 영상부분이 산업화가 싶고, 실제로 산업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시나리오가 나오는 부분은 바로 기초예술부분입니다. 기초예술부분에 영상산업에 지원되는 예산의 적은 부분만 할애해도 영화산업 자체가 훨씬 풍요로워 질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은 이부분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기우- 지금은 전보다 문화를 접하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전주대만 보더라도 내부 커리큘럼에 기획서를 쓰는 것이 있더군요. 한옥마을의 발전방향 등에 대해서 대학 때부터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죠. 그만큼 문화에 대해 깊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는 거니까. 물론 알곡을 더 많이 채워야 할 것 같기는 합니다만.
정훈- 문화와 예술판에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현상적인 측면에서 예를 들면, 생산자들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국악강사풀제나 체험 프로그램의 활성화 등 많이 늘었습니다. 여기에 따라서 문화시설들도 많이 늘었습니다. 박물관만 하더라도 전라북도내 각 시군단위에 없는 곳이 없습니다. 향유자들의 수준도 많이 올라갔구요.
하지만, 이 안에서 끊임 없이 고민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하는 인력들이 없습니다. 전주에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는 시설들이 많은데, 운영에 대한 전문성이나 노하우를 갖고 있는 단체들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에서는 거의 모든 시설들을 민간위탁으로 운영 하려고 합니다. 단체도 전문성이 없고, 관도 전문성이 없는데, 이렇게 나아간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양문희- 전라북도 전체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영상산업 관련 정책들은 전주영상위원회가 핸들링하기에는 전주영상위원회 예산과 역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굉장히 이상적인 아이디어인데, 전북지역 전체의 영상산업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총괄할 수 있는 영상관련 상위단체가 만들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 지금 행복한가요
최기우- 9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활동가들이 지금 중견으로 올라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 중견으로 올라섰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하고,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려고 하면, 별로 없습니다.
뭔가 막 나서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자기 장르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어찌됐든, 옛날보다는 사람이 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나름대로 대안을 찾아 나서고 있기는 합니다. 작가회의도 그렇고, 연극이나 국악 쪽에서도 젊은 친구들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공연을 논의하고 추진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긍정적인 현상이죠.
지금의 문화에 대한 진단은, 문화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내가 과연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물음에 저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고, 월급도 꼬박꼬박 들어오거든요. 그러나 막상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마음껏 무대극을 쓰는 이유는 지역 내 극작가의 숫자가 손에 꼽히기 때문이고,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오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맞벌이를 해야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씁쓸하죠.
정훈- 처음에는 내가 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30대 중후반 선배들이 나와서 얘기를 해줘야 했죠. 이것도 문화인력이 없다는 것의 반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인식의 문제입니다. 문화는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깊어져야 합니다.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장르와 새로 생성되는 장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아야 하구요. 자기 장르만 알아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대화와 협력, 그리고 존중을 통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기 때문이죠.
제가 근무하는 역사박물관도 마찬가지지만 민간단체들도 시에서 많은 보조금을 받습니다. 그러나 보조금을 주는 단체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은 대단히 평범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부분은 더 깊게 얘기하지 않아도 다들 눈치로 아시죠?
문화예술은 삶의 질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인력들은 전주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문화예술 인력들에 대한 무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주가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외부적으로 알리는 데는 문화예술 만큼 좋은 것이 없고, 이를 실현시키는 것도 바로 문화예술 인력들입니다.
요즘은 문화예술도시를 넘어서 창조도시를 지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생산능력이 높은 도시일수록 창의력과 문화에 대한 개방성 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해줘야 합니다.
최기우- 우스갯소리로 전북의 현실에서 30대 중·후반을 애늙은이로 볼 것인가, 꼬마로 볼 것인 가도 생각해볼 문젭니다. 저는 지금, 지역의 문화판에서 막내이기도 하고, 큰 형이기도 하거든요.
이경진- 예산 투여가 많이 됐지만, 문화판을 풍족하게 하거나 인력 양성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오늘 내용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아까 창조도시를 얘기했는데, 창조도시는 문화도시의 개념과 사실 같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살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라는 것이죠. 앞으로 지식산업사회로 가기 때문입니다. 관에서도 이런 말은 하지만, 실제로 이를 위한 실행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이끌어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