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흔히 외국의 언어를 우리 한글로 풀어내는 일을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그랬다. 번역은 외국어를 전공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한자로 기록된 문집을 우리말로 옮기는 ‘고전번역’을 하고 있으니, 되돌아보면 그저 우연이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대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번역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만해도 어머니의 말씀 때문이었는지 내 꿈은 교사였다. 하지만 임용 준비를 하면서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4학년 여름방학 전에 포기하고 말았다.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여름방학을 맞이한 나는, 역사를 전공했으면서도 아는 한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 한자 공부도 할 겸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결과 처음으로 한자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개강한 뒤 우연히 대학원에 가겠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식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 입학을 하고 나서 학부 수업을 청강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한 수업이 고전번역과 관련된 수업이었다. 처음에는 한자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막막하기도 하고, 아무리 청강생이라고는 해도 준비해 가지 않으면 들으나마나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부담감도 있었다. 그래서 대학원수업 준비를 하는 틈틈이 수업준비를 하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자전을 뒤져가며 고민하는 그 시간들이 재미로 다가왔다. 물론 내가 한 번역이 모두 맞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역도 많았고, 어떤 경우에는 너무 쉬운 글자도 틀리곤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수업을 듣겠다고 했을까하는 후회보다는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되고, 고전번역이라는 분야에 관심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지도 교수님께서 <여지도서>라는 책을 출판하기에 앞서 교수님이 번역한 부분을 교정보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셨고, 나는 그 자리에서 덥석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앞으로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다른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공휴일은 물론 새벽 2, 3시부터 교정봐야 한다는 사실은 예측도 못한 채. 1년 반 정도의 시간은 논문을 쓰는 것보다도 더 힘든 시간이었다. 한문 실력도 없는 내가 원문과 번역문을 비교하고, 해결하지못한 각주를 찾기 위해 반 년 동안 거의 매일 도서관에 오르내리며 자료를 찾았다.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왜 한다고 했을까하는 자책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하겠다고 한 걸. 하지만 힘만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 놀라웠던 사실은 한문 문장을 전혀 제대로 볼 줄 몰랐던 내가 조금이나마 문장을 보게 된 것이다. 이른 바 ‘감’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정도 흐른 2010년부터 실력이 쟁쟁한 선생님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번역을 하게 되었다. 번역사업팀에 들어가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앞이 캄캄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전의 난 선생님들의 번역 원고를 교정만 보았을 뿐, 제대로 한문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이 분야에서 몇 년씩 번역을 하신 선생님들과 함께 번역을 하라고 하시니, 어찌 보면 우리 교수님도 무모한 도전을 하신 것 같다. 처음 1년은 나에게 좌절과 부끄러움의 시간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세미나 때마다 너무 많은 지적을 들었고 심지어 나조차도 왜 이렇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덧 3년을 버티고 지금까지 번역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실수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연히 접했던 고전번역 수업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연구실 모니터 앞에서 진땀을 빼면서 때론 한숨도 쉬면서 ‘고전(古典)’을 ‘번역(飜譯)’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