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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 | 연재 [142회 백제기행]
정원을 돌아보다
다시 문화유산답사 -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허문경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2013-07-03 22:33:38)

백제기행에서 박람회가 답사의 목적지로 정해진 것은 142회인 이번이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순천 가는 도중에 들었다. 이유가 무엇인가하고 되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박람회가 그 기원에서부터 제국주의와 소비문화의 제전이기에 백제기행의 취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순간 환경만국박람회를 표방하며 ‘21세기의 문을 시민 자신들의 손으로 연다’고 했던 일본의 ‘아이치지쿠하쿠’ 가 떠올랐다.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명목 하에 일부러 산림을 개발하고시민정치는 중앙정부와 산업자본의 힘에 휘둘리고 결국은 개발논리를 못 넘지 않았던가. 박람회를 유치하게 된 계기 또한88년 올림픽개최지를 서울에 빼앗긴 데서 비롯되었던 것처럼이러한 메가이벤트는 국내외적인 도시 간 경쟁구도에서 지역민들의 경쟁심이 자극을 받아 결국은 무리한 개발의 결과물로나타나기 일쑤이다.

순천만살리기운동, 박람회 주춧돌이 되다
순천도 마찬가지일까. 이웃 여수에서 엑스포가 열린 것이 언제인데 갑자기 남쪽 바다의 조용한 도시들이 들썩들썩하게 된 것인가. 주최 측인 순천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번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박람회장에서 5km 떨어진 순천만의 보전을 위해 거대한 생태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개최 목적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해안 도시들의 지역개발이 매립지에 공단, 주택단지, 테마파크 건설하는 방식이라면 순천은 특별한 선택을 한 셈이다. 2006년부터 순천만살리기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가운데 하천변의 토지를 매입하여 녹지를 확장하려고 했던 조그맣게 시작된 사업의 진행과정에서 정원박람회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행사를 유치하면 국고지원을 받을 수 있어 토지매입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박람회 유치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박람회장에 도착해보니 아침 일찍부터 엄청난 인파가 모여있다. 주중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 때문에 오히려 더욱 소란스럽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순천은 낙안읍성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일까. 처음 방문한 순천이란 도시도 조용하지 않았다. 새로 개발된 아파트단지며 대형마트와 숙박시설 등이 해안가로 갈수록 많아졌다. 아하, 이런 건물들이 순천만의 경관을 해치고 생태환경의 파괴로 이어지는 것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로 막아보자는 것이로구나. 박람회가 끝난 후 그 장소가 멋진 생태울타리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광경을 상상하는 데는 좀 노력이 필요했다. 여수엑스포의 10분의 1의 규모라고는 하지만 엄청난 비용이 투입된 만큼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드넓은 벌판에 나무들보다는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더욱 눈에 띄는 것도 당연하겠지.

낙원 정원, 실마리를 풀다
이러한 인파 가운데에서도 백제기행은 신상섭 우석대 교수님의 해설을 들으며 차근차근 그리고 진지하게 한국정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주로 창덕궁 후원을 모델로 하여 조선 선비들의 이상세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상징화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신상섭 교수님으로부터 ‘garden은eden이다’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물이 부족한 아랍문화권에서는 오아시스를 상징하는 공간을조성한다. 스페인의 알함브라궁전 앞의 분수를 떠올려보라고 하셨다. ‘정원은 낙원의 표상이다’. 정원이 이상적인 공간의 상징물이란 것을 알고 있었고, 아니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더러는 널리 알려진 세계 곳곳의 정원을 찾아가 보기도했었지만, 이렇게 명료하게 한마디로 이야기를 들으니 참 감사했다. 뭔가 실마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인공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가산을 조성한 북경의 이화원에서 느꼈던, 권력욕의 무모함에 대해 가졌던 감정도 끝없는 평원으로 이어진 북경의 지형을 이상적으로 보완하고자했던 것이라 이해되었다.정원이 주로 권력자의 공간이었다면 공원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한 공간으로서 모두에게 개방적인 공간이라는 설명도들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보고 가졌던 생각, 잔디밭이 휑하니 지나치게 넓은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가졌던 것도 풀렸다.

강익중에서 찰스랭까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의 한국정원을 지나서 강익중 작가의 작품인 ‘꿈의 다리’를 건넜다. 14만5천명의 학생그림이 작품으로 재구성되었다. 어디 이러한 꿈이 학생들의 작품뿐일까. 전원주택, 땅콩주택, 도시농부, 텃밭, 귀농귀촌으로 나타나는 많은 이들의 꿈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겠지.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조경작품이 있다. 박람회장의 중심부에 흙무더기들이 있고 이를 나선형으로 둘러싸고 관람객의 동선이 이어진다. 왜 그 길을 걷는 것인지 영문도 모르고 앞사람을 따라 걸어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들. 관람객의 참여에 의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통해 그 의미가 비로로 작용되는 설치예술이다. 원래영문학을 전공했던 건축가이자 조경작가인 찰스랭의 시적인 작품으로 순천이란 도시전체를 상징화한 조경작품이라고 한다. 일본의 가나자와시와자매도시인 전주시의 많은 시민들은 아마도 가나자와 겐로쿠엔의 바로 옆 가나자와 현청이 이전한 자리에 세워진 21세기미술관을 기억할 것이다. 관람객이 전시공간과 하나가 되어예술작품의 일부가 되는 공간,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놀라운힘을 말이다.

덕진공원을 생각하다
전주시의 역사적인 여가 공간 덕진공원을 일본의 겐로쿠엔과 중국의 이화원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전통정원으로 조성하기로 한 비전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먼저 수변공간이 정비되고 있다. 콘크리트, 철근, 아스팔트 등 3가지를 가급적 배제하는 3無원칙도 정해졌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2000년대 중반 내가 처음 보았던 덕진공원은 연잎이 가득한 연못과 오리보트를 띄운 공간으로 딱 2분의 1로 나뉘어져 있었다. 다양한 이용자들의 만족의 극대화를 꾀한 선택인 듯 보였으나 방문객이었던 내 눈에는 두 칸으로 나뉜 중국음식점의 국수 그릇 같았다. 효용이 극대화된 공간에서 전통도시의 멋을 찾을 수는 없었다. 새로이 조성될 공원에는 궁궐정원, 별서정원, 서원정원, 마을정원 등의 계획이 있다고 한다. 아무쪼록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같은 종합선물세트가 아닌 보다 예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공간이 되길 바란다. 정원이란 자연에 대한사고, 그 사회의 사회적 관념을 이상적으로 형상화한 곳이며따라서 정원을 조성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지표가 된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진, 수 년 전 전라북도의 오피니언리더들도 다녀왔다는 일본의 나오시마의 사례를 주목하고싶다. 전주의 덕진공원이 아무래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나오시마 사이의 선택이 될 듯하기 때문이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 의해 주요 컨셉이 정해진 이곳은 기존마을을 제외한 전체 건축물과 조형물이 일본의 전형적인 조경양식인 가레이산스이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가레이산스이를 구성하는 조약돌, 우주의 한 점인 존재의 유한함이 모티브로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리조트호텔 침구류 문양까지 말이다. 이 조약돌의 모티브는 서양화를 전시하는 공간에서는흰 대리석으로 만든 작은 타일이 되기도 하고, 회화 및 조각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속 점들로 형상화되기도 하면서 섬전체를 커다란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지난 수년간 문화저널을 구독하면서도 여러 가지 여건상백제기행에 참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난번 담양의 정자문화기행에 이어 순천만에 다녀오게 되었다. 게다가 이 두 번의 여행에 우연히 동행했던 분들과 담양 명옥헌에 배롱나무꽃이 필 무렵 다시 가보기로 약속을 했다. 늦었지만 백제기행을 제대로 즐기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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