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의 허와 실
박근혜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에는 커다란 모순점이 있다. 분명 창조경제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꽃을 피워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키워내고 거기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일텐데 너무나 ICT 부분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어디 창조경제란 것이 ICT 부분과 벤처기업에만 국한될 일인가. 기존의 전통산업에도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경쟁력과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그것이 벤처기업이 되고 거기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는 ICT 분야에서 창출되는 일자리의 몇 십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자본이 울고가는 지방의 명품 빵집
전통산업, 아니 산업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빵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빠리바게트와 뚜레주르가 전국의 구석구석마다 들어서 개인이 하고있는 빵집들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요즈음, 각 지역별로는 이러한 거대자본의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울고가는 지역의 명품 빵집들이 있다. 대전의 성심당, 군산의 이성당, 청주의 팔봉제과점, 전주의 풍년제과, 목포의 콜롬방제과, 광주의 궁전제과, 춘천의 대원당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유명빵집들은 별다른 전국 규모의 광고를 하지 않고도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관광 트렌드와 블로거들에 의해 날이 갈수록 유명세를 타고 있다.
소비자를 안달나게 하는 이성당과 성심당
이들 빵집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소비자에게 사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안달나게 만들고 소비자 스스로 입소문을 전파하고 물어 물어 찾아오게끔 만드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그것이다. 아마 그것은 스스로 의도한 것이 아니라 영업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노하우에 의해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기에 더욱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1)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유니크한 스토리텔링
특히 이러한 빵집 가운에서도 쌍벽을 이루는 곳이 대전의 성심당(聖心堂)과 군산의 이성당(李成堂)이다. 이 두군데 빵집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들만의 스토리텔링을 자랑한다. 먼저 군산의 이성당은 국내 최초의 빵집이라는 역사성이 가장 큰 무기다. 이성당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이즈모야’라는 화과점에서 출발해 해방 직후 현 사장의 시아버님과 친인척이 함께 인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이성당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해방 직후로 사실상 이때 재창업을 한 셈이다. 사람들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을 검색하여 군산으로 군산으로 모여든다. 이성당은 2년 전 인기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효과를 톡톡히 봤다. 2006년에 쌀로 만든 100% 쌀빵인 ‘블루빵’을 개발했는데, ‘제빵왕 김탁구’에 쌀빵 스토리가 나오면서 이성당이 ‘제빵왕 김탁구’의 모델이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대전 성심당의 스토리는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故임길순 회장은 1.4후퇴때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내려와 거제도와 진해를 거쳐 대전에 정착하게 된다. 누구나 가난하고 배고프던 어려운 시절, 대전역 앞의 작은 찐빵집으로 아주 초라한 시작을 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닮아가고자 거룩할 聖, 마음 心이라는 뜻을 담아 ‘聖心堂’이라는 상호를 짓고 가족의 끼니도 때우기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배고픈 이들을 위해 찐빵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2)한번 맛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Flagship(플래그십) 제품
두 빵집 모두 성심당과 이성당을 상징하는 Flagship 제품(주력상품)이 있다는 것도 공통이다. 성심당의 튀김소보루와 대전부루스떡, 이성당의 야채빵과 단밭빵이 그것이다. 성심당의 튀김소보루는 안에 단팥이 든 소보루를 기름에 튀긴 특이한 제품이며 이성당의 단팥빵은 쌀로 만든 얇은 피에 단팥이 가득 든 제품으로 하루에 10,000개가 팔린다고 한다. 이러한 Flagship 제품을 사기 위해 대전과 군산뿐 아니라 전국의 관광객들이 주말이면 40~50미터의 줄을 선다. 이 바쁜 세상에 빵집 앞에 길게 줄을 선 소비자들은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진기한 구경거리가 되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블로그를 보고 성심당의 튀김소보루와 이성당의 단팥빵을 사기 위해 또 그 기다림의 대열에 기꺼이 합류하는 것이다.
3)철저한 브랜드 관리
이렇게 전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이 줄을 설 정도라면 이 두 빵집엔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를 내고싶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빵집이 유명하게 된 것은 그러한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독특한 맛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빵집은 프랜차이즈 없이 본점에서만 2대, 3대를 이어 운영해 오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이 두 빵집의 빵을 맛보기 위해서는 택배신청을 해야 하는데 택배를 신청한 후 사람들은 ‘나는 한달만에 받았다’, ‘나는 25일만에 받았다’하면서 서로 서로 득템의 기쁨을 만끽한다.
4)소비자를 안달나게 만드는 De-Marketing(디마케팅)
오후 5시쯤 이성당에 가면 이성당의 명물 야채빵은 오후 4시에 이미 매진되었다는 팻말을 쉽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40~50분을 기다려 빵을 사려는 순간 ‘기다리는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1인당 5개씩만 판다’는 판매원의 도도한 이야기에 다시 한 번 안달이 난다. 이성당과 성심당의 매장에는 이와 같이 ‘다 팔렸다’, ‘택배를 신청하면 한달후에 받는다’, ‘1인당 5개씩만 살 수 있다’는 식의 온갖 De-Marketing적 요소가 붙어있어 소비자를 더욱 더 안달나게 만든다. 40분을 기다려서 1인당 5개로 제한하는 이 빵집의 도도한 판매전략이란 그것이 의도한 것이건, 의도하지 않은 것이건, 소비자를 안달나게 만들고 입에서 입으로 긍정적인 소문을 전파하는 위대한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입소문의 선순환, 스마트시대에 날개를 달다
이 두 빵집에서 창출하는 일자리는 몇 개나 될까. 이성당은 60명 이상, 성심당은 100명 이상의 일자리를 상시 고용하고 있다. 계약직도 아니고 정규직, 그것도 때가 되면 세계의 유명빵집에 해외연수를 보내는 최고의 근무조건을 갖춘 퀄리티 높은 일자리가 동네 구멍가게였던 일개 빵집에서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볼 때 창조경제란 ICT분야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벤처기업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닌, 바로 우리 곁의 작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