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는 영화생태계의 기반이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고,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고, 새로운 실험이 벌어지는 장이다. 단편영화를 통해 앞으로의 한국영화를 미리 볼 수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24회 수요포럼에서는 제 14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맞아 한국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된 감독 중 5명을 한 자리에 모았다. 각기 다른 색깔, 다른 철학의 영화를 만들어 온 이들을 통해 한국영화의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의 한국영화를 전망해봤다.
사 회 | 제 14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맞아 영화인들과 영화애호가들이 전주에 모였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한국단편경쟁부문에 진출하신 청년감독님들을 모셨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신 감독님들과 함께 각자의 작품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부터 독립영화의 위상과 역할, 전주영화제에 대한 평가 그리고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어보려고 합니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가운데 그런 내용들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올해 전주영화제에 대한 참여하시게 된 소감과 영화제를 돌아보신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오민욱 | 올해 영화제 평가는 아직 많이 돌아보지 못해서 내년에 해야 할 것 같고요. 작년까지 전주에 자주 왔습니다. 전주는 부산영화제나 다른 영화제와는 조금 다른 측면의 영화들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대를 갖고 왔는데 대개 만족스러웠어요. 영화를 얘기할 때 완성도가 중요한지 메시지가 중요한지 논란이 되곤 하는데, 둘다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전주에서 안보면 볼 수 없는 작품들이기어서 재미있게 봤어요. 배우고 느낀 점들도 많고, 또 비슷한 또래의 영화계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사 회 | 본인의 영화도 전주영화제 아니었으면 못 틀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민욱 | 한국에 영화제는 많으니까.(웃음) 그래도 전주에서 틀고 싶었어요. 전주에서 선택하는 작품이나 작가들은 대개 다른 곳에서는 스크린으로 볼 수 없는 작품들이잖아요. 그래서 전주를 찾아서 제가 주목하는 작가들의 영화를 보곤 했는데, 그러면서 제 영화도 전주에서 틀면 좋지 않을까, 작업을 하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마침 생일 다음날 연락을 받아서 전주에서 걸리게 됐는데,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양연화 | 저는 영화를 쭉 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늘 여기에 참여한 것도 아직 방문객 같은 느낌입니다. 오랫동안 그림만 해와서 영화제 분위기를 잘 몰라요. 전주영화제 특징도 잘 모르고 몇 년 전에 부산영화제 한 번 가본 것이 다예요. 솔직히 그간 단편영화엔 큰 관심이 없었어요. 주로 많이 투자되고 비주얼이 확실한 영화들을 요기삼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죠. 그런데 오늘 단편영화를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에, 저예산으로 즐거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구나. 그러면서도 다양한 언어들이 존재하더라고요. 좀 아쉽다고 해야 할 점은 언어적으로 읽히기 힘든 것들도 있다는 점이랄까. 예산의 문제인지, 감독의 표현방식의 문제인지, 언어적 코드가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고요. 오늘 자리 때문에 다른 섹션의 영화들도 조금 봤는데, 제게는 다채로운 언어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사 회 | 회화작업을 하시다가 새로운 실험을 하신 건데, 결과물이 만족스러우신가요?
양연화 | 그간 제 작업에서는 단편적으로 하나의 화면만 보고 하나부터 열까지를 이해해달라고 해왔어요. 그걸 좀 더 친근하게, 설명적으로 말하기 위해 영상작업을 한거죠. 여기 감독님들 많이 계시는데 제가 가장 궁금한 건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지예요. 저는 굉장히 추상적인 언어로 작업하거든요. 이런 감성을 가지고 여기선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다른 분들은 접근방식이 다를 것 같아요. 영화들 보면 대개 대사가 있잖아요. 배우들의 행동에서도 메시지를 전달할텐데, 그런 것에 대한 시나리오가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자리에서 그런 걸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사 회 | 김진희 감독님이 시나리오 쓰신 경험을 얘기해주시죠.
김진희 | 저는 단편 딱 두 개 만들었는데, 두 편 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갖고 극화하는 작업이었어요. 그래서 하고자하는 얘기가 제 안에 분명히 선 다음에 작업을 시작합니다. 제 경험이라는 게 불균형적이고 완벽하지도 풍성하지도 않잖아요. 그걸 극화한다는 건 거기서 느낀 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픽션화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사 회 | 오민욱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셨나요?
오민욱 | 저는 일반적으로 영화를 시작할 때 시나리오부터 시작하기보다는, 저한테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미지가 있어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어요. 이미지와 이미지를 잇고 의미들을 붙여나가는 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극영화 작업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는 차이가 좀 있을 겁니다.
사 회 |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를 돌아보면서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어떤 주제의식을 갖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승오 | 저 같은 경우는 이번에 작업하면서 사적으로 좀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들도 성장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9년 전에 했던 방황들을 스물여덟이 돼서 돌아보니까 다른 느낌들이 있더라고요. 9년 전에 있었던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수 없었던 것들이 이제 좀 정리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서 제 유년시절을 영화로 만들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사 회 |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명제가 있지요. 마찬가지로 현시점에서 영화가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 감독님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양연화 | 조금 뻔한 얘기지만 있지만 시대를 반영하고 말고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드는 사람이 시대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사회에 속해 살아가다보면 생각이나 행동이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사회를 비판해야 사회적 영화라고 한다면 얘기가 다르지만요. 하지만 예를 들어 개그 코드도 시대를 타고, 성장기 영화도 마찬가지로 몇 십년 전의 성장과 지금은 다르잖아요. 분명히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승오 | 뭐랄까, 스며드는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가 이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감독의 생각들이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상하시는 관점에 따라서도 달라질 거고요.
양연화 | 아까 사 회님이 사회적인 내용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많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저는 지금 현재가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이어서인 것 같아요. 빈부의 격차도 심해지고, 정치적 불안도 심해지고, 그만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부분도 많고, 그만큼 갈구하고자 하는 부분도 많고. 그러다보니 영화와 예술로 많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민욱 | 거기 약간 덧붙여서 저는 기록과 표현의 측면에서 이야기를 드리고 싶네요. 대부분의 기록은 승자의 역사주류의 표현이죠. 거기서 배제된 부분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영감을 많이 받게 되고 그런 것을 작품에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라고 봅니다. 누군가해야 한다면 예술가들이 다양한 매체를 빌려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영화를 하는 분들과 다큐멘터리나 실험영화를 하는 저와는 약간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 회 | 유용지 감독님의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도 그런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유용지 | 원래 이거는 한 5년 전에 쓴 시나리오거든요. 공교롭게 대선시기였는데, 다른 시나리오들은 제 얘기를 쓴게 하나도 없어요. 근데 마침 그 때는 제 얘길 하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80년대 얘기가 나오고, 제가 특별히 의도를 한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된것 같아요. 제 생각도 들어가게 되고. 원래 시나리오는 군청에서 축구하다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기억이 나서 그런 걸 해보고 싶었는데 극화를 하다보니 조금 더 정치적인 걸 넣긴 했죠. 일부러라도. 저희 PD가 분이 돈이 없다고 하니까 우스개소리로 특정정당을 얘기하면서 “그 정당에 얘기하면 백프로 돈을 줄거다”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었어요.(웃음)
사 회 | 이번 작품은 지원을 받아서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유용지 | 예, 영진위에서 600만원 받았어요.
김진희 | 600만원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어요?
유용지 | 제 돈 삼백 정도 더 들어갔죠. 좀 일정도 타이트했고 예산도 빠듯해서 찍을 수 있는 것만 찍었어요. 영화보면 기본적인 샷들만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하루에 한 씬 정도는 없앴거든요. 다 못 찍는다고 해서.
사 회 | 제약이 많으면 뭔가 창작에 대한 의지나 그런 것들이 더 발휘되는 편인가요?
유용지 | 저는 그럴 줄 알았거든요. 일정도 타이트하고, 예산도 PD가 항상 그랬어요. 너 이거 회차 늘어나면 150씩 늘어난다고. 저는 연출할 때마다 항상 그래야만 하는거예요. 절대 테이크 3번 이상 가지 않고. 이런 제약되고 타이트한 환경에서 뭔가 나올 줄 알았는데, 제 경우는 안 나오더라고요. 연출자마다 다르겠죠. 저는 그런 제약이 불안하게 만들더라고요.
사 회 | 돈 얘기 나왔으니까. 계속해볼게요. 다들 지원금이나 정책지원 외에는 여러모로 힘들지 않나요? 오민욱 감독님은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하시니까 대중들과는 좀 더 떨어져 있는 셈인데, 어떠신가요?
오민욱 | 생존문제를 물어보시면 참 서글픈데.(웃음) 저는 2008년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했어요. 그때 들었던 생각이 같은 공간이나 대상을 다루더라도 표현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다. 거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만의 방식을 만들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이 소재에 맞는 표현방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 본질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실험영화가 제게 오게 됐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전공을 하게 됐고. 나중에는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두 분야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작업들을 하고 싶어졌어요. 이런 걸 할 때 제작지원 받으면 영화 만들기 조금 수월하죠. 그걸 제외하면 어떻게 생계를 하는지 물어보신 거잖아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영화 만드는 게 사는 거다. (일동 웃음) 진짠데. 진짜에요. 영화 만들면서 밥은 챙겨 먹잖아요. 영화를 통해서 밥을 먹는다는 건 아니고. 영화가 돈은 안 되는데 그걸 만들어내고 작업을 하는 게 삶의 이유니까. 힘들긴 힘들죠.저도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영화의 예술성이 상업성을 보장해준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 회 | 예술성을 충분히 담보하지 않으면 상업적 성공도 어렵다. 상업영화가 예술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업영화에도 예술성이 담보되야 한다. 이런 명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이죠?
양연화 |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는 영화를 계속 만들어온 사람은 아니지만 그림도 마찬가지거든요. 진짜 상업적으로 잘나가는 작업이 꼭 예술적이진 않아요. 하지만 진짜 예술적으로 완성된 작품은 상업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영화를 하시는 분 있어서 그 분 얘기를 많이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관객층을 많이 만들고 좀 더 성공을 할까 그런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예술영화는 안하세요?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자기만 배고프면 되는데 스태프까지다 배고프게 하면 그건 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영화는 개인이 하는 작업이 아니라 단체가 하기 때문에 좀 더 그런가보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사 회 | 그럼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들은 없나요? 그리고 상업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의 경계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진희 | 당연하죠. 상업영화로 가고 싶죠. 저로서는. 감독님들마다 생각이 다르시겠지만. 저는 솔직히 말하면 연습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단편 독립영화 만드는 게 저한테는 연습이에요. 좋은 기회에 이렇게 상영도 할 수 있고 감사한 일이지만, 어쨌든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경계는 너무 분명하죠. 극장에서 틀 수 있는, 사람들이 돈 내고 와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 같은 거에 대해서는 솔직히 별 고민 안했어요. 저는 거기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거예요. 지금 연습을 하고 있고,연습을 조금 더 해서 연습기간이 길지 않게 빨리 목표로 가고 싶은거죠.
양연화 | 이번이 두 번째 연출이시죠. 발전을 하신 것 같으세요?
김진희 | 처음 한 거랑 이번 작품이랑 되게 달랐어요. 제 소망은 한 두어번의 연습 뒤에 상업장편을 하는 거예요. 그 시간이 길어지면 나는 다 못하고 포기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빨리 해야지 다짐하고 있어요. 굉장히 속물적이네요.(웃음) 다큐멘터리 하시는 분들도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런데, 솔직히 저는 그래요.
사 회 | 그 연습기간을 줄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도움이나 지원책이 필요하진 않으신가요? 다른 분들도 자신의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바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회든, 정부든, 기관이든 간에. 금전적 지원 말고도 시스템적으로 보장됐으면 하는 게 있을 까요?
유용지 | 예전보다는 지원이 많이 줄었더라고요. 특히 단편 같은 경우에는. 그런데 그 지원도 한정적이니까. 그보다 요즘은 데뷔하는 분들 보면 인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소위 말하면 줄을 잘 타야 한다는 거죠. 지금은 필름과 디지털 구분이 없어졌잖아요. 거의 디지털로 작업하니까 큰 자본이 아닌 경우에는 데뷔할 수 있는 여건이 오히려 쉬워진 것 같아요 300만원으로 장편을 찍으신 분들도 있으니까.
오민욱 | 이건 여담인데. 저는 지역 문화재단에서 1년 지원받아서 작업하고 있거든요. 영화 쪽 지원이란 게 영진위랑 각 지역 영상위 있고, 또 전주영화제 프로젝트가 있고 부산영화제에도 펀드가 있고 한데, 영화계에서 지원해줬을 때 정산방식이랑 문화재단 쪽에서 했을 때 정산방식이 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영화를 만들기에는 문화재단 걸 받아서 정산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방식을 뒤틀어서 개인전 비슷하게 전시로 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그런 식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그러면서 문화재단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것 같다, 영화를 별개로 놓고 보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 회 | 영화가 예술장르 안에서는 소외받는 느낌이다?
오민욱 | 순수예술에 영화를 포함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하지않는 사람이 많을까요? 영화가 일곱 번째 예술로 들어왔다고 한지 오래됐다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계 내에만 있을 때는 모르지만 다른 예술장르 작가 분들 사이에서는 그런 간혹 느낌을 받아요.
유용지 | 영화가 역사가 짧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다른 예술도 다 상업화됐는데, 영화는 일단 자본이 크다 보니까 그게 더 크게 보이는 것 뿐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장르를 떠나서 돈을 빼고는 예술을 얘기할 수 없는 시대니까요.
정승오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전 세계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돌아가는데. 독립화와 상업화 경계를 긋는 게 무의미해졌죠. 전주영화제도 어떤 독립·대안 영화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어쨌든 돈을 낸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거잖아요. 약간 예민한 문제일수도 있는데, 우리나라 영화제는 상영료를 주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런 부분에서 사실 좀 아쉽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기 영화를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거에 목마른 사람들이잖아요.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이 더 크고, 제 영화를 더 많은 관객들이 봐주는 의미가 더 크긴 하지만요. 그래도 자본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이런 저작권 부분은 좀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보통 유럽 영화제 같은 경우는 상영료를 분명히 챙겨주거든요. 관객 수입에서 10%에서 15%로. 그런 부분에서 미흡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사 회 | 그럼 오늘 여기 계신 분들은 상영료가 제로인가요?
유용지 | 예 없습니다. 대부분 우리나라 영화제는 없죠. 올해 몇 개 생기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정승오 | 결국 상금을 받아야만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데, 상금이 또 종류가 많지도 않고. 그러니까 영화제가 빚잔치가 되는 경우가 많죠. 스태프들 오면 챙겨주고, 이게 다 돈이잖아요. 밥 사주고 숙소 잡아줘야 하고, 아이디카드 잃어버리면 2만원 내야하고.(웃음)이러고 나면 물론 내 영화가 영화제 걸려서 좋지만 상을 못 받으면 굉장히 허무해져요. 통장잔고는 0이고. 그러다 다른 영화제에 선정되면 ‘아. 큰일났다. 돈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들죠.
사 회 |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는 것 보니까 동감을 하시나보네요.
양연화 | 저작권료가 안 나오는지는 처음 알았어요. 당연히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승오 | 당연히 나와야 하는 거지요. 너무 당연한 건데. 500원 음원료 아까워하듯이, 그런 취급을 받는 거죠. 굉장히 노력을 하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데. 물론보상이란 게 꼭 돈 뿐만이 아니라 관객들의 반응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하지만 물질적으로 남는것도 있어야 다음 영화를 준비하기에 수월할 수도 있고. 뭐 그런 부분이죠.
김진희 | 저도 그런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했던 게 좀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그게 기본인데, 참여 자체가 영광 이렇게 생각했던 게. 정승오 | 그렇죠. 물론 굉장히 고맙지만. 근데 그게 전부인. 다들 목말라있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닌데 생각했죠.
양연화 | 저는 영화제가 끝나면 통장에 몇 만원이라도 들어올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사 회 | 독립영화를 키워준다는 전주영화제가 이런 부분에 무심했던 게 안타깝네요.
양연화 | 그런데 영화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문화적으로 인식이 낙후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미술도 마찬가지거든요. 영화는 상영해서 상영료를 받지만 미술은 단면에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들이라, 이미지를 그냥 도용해서 쓰거든요. 당연히 저작권료를 줘야 하는데. 이런 인식이 문화적으로 전혀 깔려있지 않은 것 같아요.
사 회 | 이제 한국영화 얘기를 해볼게요. 독립영화, 상업영화 다 포함해서요. 오늘날의 영화계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오민욱 | 직접적인 통찰은 할 수 없겠지만 지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하잖아요. 근데 사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이후에 내리막길을 쭉 걸었잖아요. 그걸 생각해보면 지금 상황이 꼭 좋아 보이지는 않아요.
김진희 | 정말 큰 문제는 다양한 소재 다양한 스펙트럼들이 너무 줄어들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7번방의 선물>이 천만관객을 모은 게 영화계에서 이슈가 됐잖아요. 사실 저는 거기에 굉장히 비판적인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감정만을 자극하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그런 영화들이 너무 잘된다는 거, 거기에 좀 자괴감이 들기도 하죠.
유용지 | 충격적이긴 했죠. 이전의 천만영화들에 비추어 봐도 <7번방의 선물>은 굉장히 이례적이죠. 그런데 그게 대중인 것 같아요. 스코어로 얘기를 해주잖아요. 결국 상업적인 성공에 한한 얘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은 거기에 기꺼이 돈을 내고 봤단 말이죠. 더 안타까운 건 이번 성공을 보고 그런 영화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더 많은 관을 차지할 거란 점이죠.이번에 저희 같은 섹션에 선정된 민병훈 감독님 작품 중에 <터치>가 그런 경우잖아요. 개봉 첫 주부터 퐁당퐁당도 아니고 첫회 끝회 상영하니까, 보지 말라는 얘기죠. 그래서 아예 내려버리셨죠.
사 회 | 거대 배급사의 문제도 있겠죠.
김진희 | 배급사도 그렇지만 관객도 정말 귀신같아요. 너무 모르겠어요. 천만관객이 되려면 알 수 없는 게 뭔가가 있다는데 그 뭔가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번 경우인 것 같아요.
사 회 | 최근에는 천만관객도 자본의 힘으로 만들고 있잖아요.
김진희 | 그렇죠. 그런데 어쨌든 사람들의 취향이 이렇다는 걸 신경 안 쓸 수가 없거든요. 실험영화든 상업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나만 보려고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남 보여주려고 만드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비굴함이 있어요. 남이 봐줘야 돼, 좋다고 얘기해줘야 돼, 기본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해요. 네가 만들 걸 보고 나는 어떤 생각을 새로 하게 됐고, 울게 됐고, 다른 뭘 하게 됐고 이런 걸 바라고서 만드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영화가 그런 반응을 얻으면, 어리둥절해지는 거죠. 왜 우리가 시나리오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지? 사실 저는, 욕먹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돈 많이 들이는 예술영화하고 싶어요. 그런데 내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괜찮은 영화를 찍었어요. 그렇게 해서 드는 만족의 크기와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폭발적인 호응이 있는 것에 대한 만족의 크기가 있는데, 이 두 개가 분리가 돼버리면 이게 그렇게 기쁠까? 그런 의문이 들어요.
양연화 | 저는 영화작업을 계속해온 게 아니어서 솔직히 이런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기 힘든데요. 저는 7번방을 보진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 한편을 관람한다고 할 때 영화 한편이 8000원인가요? 사실 적지 않은 돈이거든요. 그 돈을 소비하고 뭔가 기대한다고 했을 때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길 원해요. 단순히 메시지만을 바란다기보다 시각적인 것, 청각적인 것 모든 걸 만족하길 원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만드는 사람의 입장과 보는 사람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관객은 뭔가를 대체해서 울기를 원하고 뭔가를 대체해서 웃기를 원하고, 뭔가를 대체해서 부수길 원한다고 보거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단순히 대중의 수준이나 코드에 대해서 평가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유용지 | 저는 영화판이 극과 극으로 나뉜 게 너무 아쉬워요. 큰 영화는 더 커지고 작은 영화는 점점 작아지니까. 중간지대가 없어지고 있어요.
사 회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영화를 통해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양연화 | 지금은 3개 작품을 작업하고 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제 작업을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애니메이션이라고 초대를 받았지만 회화작업에 이야기를 덧대서 한다고 생각해서 제가 그간 해왔던 작업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편집, 음향 이런 부분에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너무 답답했어요. 오늘 스크린을 통해 제 작품을 보면서도 편집의 리듬이 전혀 안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것들에 대해 도움도 받고 배워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진희 | 저는 단편 두 편을 만들었는데. 두 편 다 사람이 갖고 있는 감정에 대한 거거든요. 그걸 미세하게 풀고 싶었어요. 제가 좀 미세하게 봐요. 내가 미세하게 보는 것들을 충분히 미세하게 풀고 싶은데, 물론 아직 부족하지만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비슷할 것 같아요.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세상에 대해 너무 미안해하는 사람이에요. 정말 미안함으로 점철된 인간. 미안함에 대한 얘기가 될 것 같아요. 어쨌든 사람이 사람인 이유, 왜 사람이 제일 재밌고 제일 좋지 이렇게 생각하면 감정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하나하나 풀어보고 싶어요. 장르는 바뀔 수 있어요. 스릴러, 느와르, 멜로, 뭐든 될 수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 감정이 중심이 되고 거기에 맞는 장르를 찾는 방식으로 계속 해나갈 것 같아요.
유용지 |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장르영화예요. 사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가 제가 쓴 시나리오중에 사람이 죽지 않는 유일한 시나리오거든요. 저는 사람 죽는 영화, 스릴러 그런 류를 좋아해서 장편이든 단편이든 작업해보고 싶어요. 주위에서는 이제 나이도 있으니 니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그러려면 실탄은 많이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다큐도 해보고 싶고. 다큐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하고 싶은건 되게 많은데. 돈만 있으면 영화는 계속 찍고 싶어요.
오민욱 |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세 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조금 긴 호흡으로 갈 거 같고 두 개는 단편으로 갈 거 같아요. 작년부터 계속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개 정도는 아주 실험영화군에서 작업하는 스타일로 갈 거고. 하나는 다큐적 요소들이 결합된 부분으로 갈 거고요. 저는 주로 발견된 서사라고 할까요, 일상풍경에서 발견된 한 장면에서 서사가 느껴지면 거기서 작업을 많이 시작을 했거든요. 앞으로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작업을. 이거 말고도 네번째 다섯 번째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 회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