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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5 | 연재 [생각의 발견]
제4의 물결, 한국은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윤목 광고회사 굿앤파트너즈 대표, 성공회대 외래교수(2013-05-02 16:02:34)

#1 영국의 길
대처수상이 세상을 떠났다. 재임시절 그녀가 이룬 가장 큰 업적으로 아르헨티나와의 포틀랜드 전쟁 승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은 아마 영국경제를 굴뚝산업에서 창조산업으로 180도 뒤바꾸는데 기초를 제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처가 수상에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은 경쟁력 떨어지는 굴뚝산업의 나라, 여왕과 신사로 대표되는 쇠락의 나라였다. 그러나 대처는 젊고 활기찬 창조산업 육성을 국가정책과제로 정하고 대폭적인 규제완화와 함께 강력한 시장개방정책을 추진했다. 그 이후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는 창조산업을 고부가가치 창출산업으로 인식하고 지역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창조산업클러스터 구축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그러한 기조는 브라운 총리에까지 이어져, 영국은 지금 아이디어와 디자인의 나라, 영화와 문화산업의 나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디자인과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멀티미디어, 컴퓨터게임, 출판, 광고산업 등을 포함하는 영국의 창조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거의 10%에 이른다고 하며 10년 새 거의 두 배나 성장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초연을 한 뮤지컬‘맘마미아’와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등이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매년 수억 달러씩 벌어들이고 있고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롤링은 이 시리즈로만 10억 달러를 벌어들여 영국에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다 주지 않았는가. 그 뿐인가.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작가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중에선 1,000억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고 하니 대처에서 시작돼 최근에 꽃핀 영국의 창조산업을 바라보면 그저 입이 딱 벌어질 뿐이다.

#2 일본의 길
한 때 일본은 전 세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워크맨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필수품이 되었고, 쏘니의 TV는 세계인의 거실을 장식했으며 도요타자동차는 자동차산업의 본가인 미국의 Big 3를 저만큼 따돌리고 세계 1위의 자리에 등극했었다. 일본의 전자제품 없이는 세계인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게 불과 십여년 전인데 오늘날 이러한 일본은 어떠한가. 영국과 일본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아마 산업화의 뿌리가 다른데서 비롯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영국은 대영제국 시절부터 산업혁명 이후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의 산업과 경제를 창조해 왔다. 영국의 앞에는 그 어떤 나라도 없었고 경쟁자는 영국뿐이었다. 한마디로 개척의 DNA가 영국인의 피속에는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척의 DNA가 대처와 블레어라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지도자들을 만나 창조산업으로 활짝 피어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의 근대화는 서구문명을 따라잡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은 그야말로 미국이라는 경제선배의 길을 모방하면서 미국의 것을 조금만 편리하게 바꾸면 되는 모방의 DNA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급격하게 변하는 창조의 시대, 디지털의 시대에서 일본과 영국은 그 길을 달리 간 것이다.

#3 한국의 길
우리나라의 창조산업에서 가장 큰 우려가 있다. 그것은 우리도 일본처럼 늘 벤치마킹의 대상을 따라갔다는 점이다. 일본이 미국을 따라갔듯, 지금까지 한국은 일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삼성의 TV는 소니보다 잘 만들면 됐고 갤럭시S는 아이폰에 견주어 손색이 없으면 됐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기준점과 롤모델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창조경제시대에는 그 기준점이 없어진다. 우리가 기준을 만들고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야만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의 길이 아니라 영국의 길을 가야한다. 산업혁명이 인류의 생활에 무한한 변화를 초래했듯이, 그리고 세상에 없던 아이디어와 문화와 생각으로 영국의 창조산업이 세상에 없던 부가가치를 창출해냈듯이 우리도 새로운 창조 시대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곧 우리 자신이 세계의 롤모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영국의길도 아니고 일본의 길도 아니고 제3의 새로운 길, 바로 한국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서 그 길을 먼저 가야 한다.

#4 세계 각국의 길
창조산업이라는 제4의 물결 속에서 세계 각국은 치열한 이니셔티브 경쟁을 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영국이 그 맨 앞에 있는 것은 물론이다. 호주는 1994년 ‘크리에이티브네이션’이라는 슬로건 하에 “문화정책도 경제 정책이다” “창조성이 새로운 경제에 적응하기 위한 능력을 결정 짓는다” 등을 외치며 새로운 경제성장을 위한 주요요소로 창조산업을 언급했다. 미국은 ‘혁신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경제성장과 미래 경쟁력 우위 유지를 위해 정부 운영 방식 개혁과 창의성을 활용한 경제성장 전략인 ‘미국혁신전략 보고서’를 2009년과 2011년 발표하고 국민의 창조성과 상상력에 투자해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은 2010년 6월, 향후 10년 후인 2020년까지 신성장전략으로 ‘쿨 재팬 전략’을 발표하고 창조산업부 신설 및 콘텐츠 해외 수출 지원 펀드 조성, 일본 콘텐츠의 아시아지역 장악, 문화 브랜드 가치 향상을 통한 해외시장 수출 증대, 세계적 창조산업 기업 창출.육성 등 9개 액션플랜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산업전략이 무척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그 제 4의 물결에 올라 탔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싸이의 뮤비가 유튜브를 석권하고 한류의 열풍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카카오가 모바일 메신저의 기준을 제시해가는 지금, 우리의 창조경제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그 가능성이 살아있는 것이다. 교육정책, 문화정책, 경제정책을 여하히 뿌리부터 바꾸어 영국과는 또다른 DNA를 창출할 수 있을 지, 나라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창조성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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