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트에서 장을 본다. 소 잡는 날이었는지 쇠간 반 근이 삼천 원이다. 다섯 봉에 천 원하는 팽이버섯과 세 봉에 천 원하는 느타리버섯을 담는다. 쌈야채 이백 그람에 삼백원인 봉투도 있다. 누가 담아 가기 전에 얼른 채간다. 1인가구가 많은 동네인데다 동네 마트니까 가능한 일이다. 떨이로 파는 물건을 헐한 값에 살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오천삼백 원짜리 장을 보면 삼일은 버틴다. SSM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머릿속에서 레시피를 검색하면서 집에 들어간다. 다섯 평이 조금 안 되는 풀옵션 원룸이다. 가구 일습은 물론이요 걸레받이에 바닥재까지 죄 새것이지만 매우 비좁다. 오늘도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평을 잠시 해준다. 의식 있는 척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기 위한 일상 속 양념이다. 전기물주전자로 물을 끓여 냄비에 담고, 1구짜리 핫플레이트에서 파스타를 삶는다. 오늘 구입한 식료품을 조금씩 손질해서 파스타 한 접시와 샐러드 한 공기를 만든다. 쇠간 오백 원 어치, 팽이버섯 백 원 어치, 파스타 백 원 어치, 다진마늘 백 원 어치가 들었다. 후추나 허브나 소금이나 수도나 전기는 귀찮아서라도 뺀다. 쌀이 똑 떨어졌을 때, 쌀보다는 싸서 쟁여 둔 터키산 파스타가 제법 요긴하게 쓰인다. 반 킬로그램에 팔백오십 원인 놈이다. 이런 궁상을 떠는 까닭은 단순하다. 이런 때는 대개 통장이 비어 있다. 자유기고가니, 프리랜서 디자이너니, 아마추어 편집자니, 갖다 붙이려 작정하면 붙일 말은 많지만 실상은 갖은 임금체불과 헐한 고료에 시달리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음식 하는 기술만 느는 형편의 도시 빈민이라는 얘기다. 어느 몇 년 차 자유기고가가 국 끓이기에 성공한 순간 자유기고가로 살 자신이 생기면서 일시적으로 우울감에서 벗어났다던데, 정녕 그러한 것이다. 일어나서 마감 일정표를 확인한 뒤 잠시 세상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절규를 곱씹는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그럭저럭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제 인건비를 때려박는다. 1주 뒤부터 20주 뒤까지, 언제 들어올 지 모르는 돈을 벌기 위해 마감을 치른다. 생활비는 최대한 아껴야 한다. 고료 입금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분명 잘나가는 자유기고가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잘나가기는 커녕 이제 막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삼류 필자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돈 한 푼 안 되는 괴상한 이력으로 먹고 산다. 사실 자유기고가라는 정체성도 가급적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나는 자유기고가라기 보다는 매문가에 가깝다. 경력이 되어 포트폴리오에 넣을 수 있는 글을 쓰느냐, 아니면 바로 돈을 주지만 경력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을 쓰느냐 고민할 때, 대개의 경우 나는 후자를 고른다. 수상한 건강식품 책자나 누군가의 자서전 대필이 대표적인 일감이다. 심지어 요새는 워낙판이 협소해지다 보니 동네의 건실한 노동계급(당연히 귀족은 시인이다)이신 등단 소설가들도 대필 구직을 하고 있는 노릇이다. 글을 인생의 한 축에 두기로 했던 건 대충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어쩌다 보니 글쓰기를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인생이 꼬일 징조였노라 우기고 싶지만 동창들은 대부분 그럭저럭 잘 산다. 희한한 학교니만큼 그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고등학생이면서 작가 지망생인 것처럼 취급했다. 우리는 당장의 대입에 앞서 글을 쓰며 사는 삶을 상상해야 했다. 글쓰기가 식자층이 점유한 고급 노동이 아니게 된 세상에서 글로 뭘 해보겠다는 갸륵한 뜻을 품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글로 밥 벌어먹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내가 쓰는 글의 의미를 고민하게 된 건 좀 나중일이었다. 그때는 매문이 생활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그것을 찬찬 살펴 보아 내가 쓴 글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순간 쾌락이 온다. 더불어 존재를 자리매김하는, 일종의 인정투쟁이기도 하다. 모두가 글을 쓰는 세상에서 내 글이 남들 글과는 다르다며 글의 쓸모를 악착같이 들이미는 걸로 존재의 의의를 찾는 것이다. 1990년대에는 소설가 김소진이 가정을 위해 매문하다 과로사했다는데, 2000년대 이후에는 야설 써서 한 달에 200만 원 벌었다더라는 얘기가 떠돌고, 나는 어쨌거나 좋으니까 쓴다. 이 글을 읽는 이가 읽으면서 한 줌 쾌락을 얻길 바라며. 그리고 이게 원고료 정도로는 재미를 주기를 바란다. 이건 남들 다 아는 비밀인데, 글의 의의 중 으뜸은 재미요, 버금또한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