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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말에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세대통합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청춘카페에 갔다. 교수가 정기적으로 특강을 하고, 일자리사업 노인들이 봉사하면서 세대 간 교류가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다. 노인복지 전공 학생들과도 얘기를 나눴고, 그곳 담당자들과도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마칠 때 쯤, 그곳에서 활동하는 한 할아버지가 나를 잠깐 보자고 한다. 옆방에 들어가니 내게 특별히 비밀정보를 준다. 내 손톱을 보니 내가 미래에 틀림없이(100%라고 했다) 어떤 질병을 앓게 될 거라는 얘기다. 그 분은 자연건강 연구가이고, 학생들의 손금도 봐준다고 한다. 본인이 연세에 비해 15년은 젊어 보이는 건강한 체질이다. 내려온 다음 날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는 손톱의 흰색 부분만으로 판단을 하기엔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과 관련되는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건강이나 일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재산이나 운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관심을 보여준 서울 노인의 말은 우선 고맙게 들었지만, 그렇게 절대적이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스스로 오류에 빠지기 쉽고, 듣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내가 상식을 강조하지만 과연 한의원과 자연건강연구원의 말 중에 어느 쪽이 더 맞는 말을 할까? 한의학과 양의학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일반적이고 맞는 지식일까? 가장 나쁜 경우는 순수하지 않고(돈에 눈먼 의원), 권위적이며(자기지식 절대화), 기계적인 태도다. 그러나 순수하고 겸손하며 성실하게 종합적인 검진을 하는 올바른 경우에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동서양 현대의학의 한계이고, 상식은 거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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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평소에 자주 놀라는 편이기도 하고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힘들어한다. 여가를 즐기는 영화관람이 고통이 되는 일은 당연히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남영동 1985>는 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 여자직원이 그 영화를 봤다며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우리도 TV로 영화를 봤다. 그러나 얼마 눈 마주치지 못하고 화면을 꺼버렸다. 80년대 말에 학교에 다녔던 씩씩한 제자들도 그 영화는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전북대 민교협과 호사연에서는 지난달 초 나와 동료들의 정년을 기념하기 위해 ‘유신의 추억’ 시사회를 유치했다. 첫 장면에 나온 김지하는 박근혜에게 쌍욕을 퍼붓는다(지금은 어느 새 그런 욕설을 백낙청과 이정희에게 내뱉고 있다). 거기에 온 어느 학생은 영화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말하면서도 그런 사실과 박근혜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했다.
영화 <26년>은 위 두 영화에 비해 관객수가 많다. 우리 부부도 영화관에 가서 재미있게 감상했다. 이 세 편의 영화는 우리의 독재자들을 다룬 영화이고, 그 반응의 편차를 보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체험의 차이는 느낌과 해석의 격차를 가져온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고문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줘도 공포영화보다도 강도가 낮게 느껴지나 보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도한 외신들은 “독재자의 딸이 인권 변호사를 이겼다”고 표현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외신보도의 이런 표현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세대의 상식과 청년 세대의 상식, 한국 언론의 상식과 외국 언론의 상식에 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사회가 아직 역사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역사 상식의 부재와 정론 언론의 부재가 다시 5년이나 지속될텐데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