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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 | 연재 [임안자의 내가 만난 한국영화]]
아랍문화의 오해와 편견을 벗어낸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4
임안자(2013-01-04 15:06:10)

마라케쉬 영화제
나는 카타르고 영화제서 알게 된 ‘모로코 영상 센터’의 부집행워원자 모하메드 바크림으로부터 초청장을 받고 12월 6일 마라케시로 떠났다. 나는 ‘아랍의 집’으로 불리는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12월이었는데도 정원에서 만발하는 장미들의 짙은 향기와 아침 식탁에 오른 온갖 향초가 들어있는 모로코의 푸짐한 정통 음식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향기로운 아랍의 페퍼민트 차 맛은 마라케쉬 영화제(Marrakech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만 맛본 달콤한 향기로 기억에 남게 됐다.

마라케시는 베베르 민족의 말로 ‘신의 땅’을 뜻하며 카사불랑카와 라바트 다음 으로 큰 도시로 내 호텔은 역사적인 중심지 메디나에 놓여있는 데다 영화제의 행사장 ‘협회의 궁전’의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어 아주 편했다. 마라케쉬에는 국제살사음악제, 웃음의 축제, 대중예술제, 서커스와 곡예의 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있으며 국제영화제는 그 중에서 가장 큰 행사다. 마라케쉬 영화제는 2001년 모로코의 왕 모하메드 6세의 왕정재단이 설립한 것으로 2회부터 왕세자 물레 라쉬드가 재단장으로 영화제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 반면에 1999년에 문을 연 ‘우드자 국내영화제’는 모로코 정부의 문화부와 우드자 시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다.

2004년 4회를 맞는 마라케쉬 국제영화제는 12월 6~12까지 열었었는데 카타르고 보다 35년 늦게 세워졌지만 개막식의 화려함이나 많은 서구 스타들이 등장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영화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던 카타르고 영화제와 대조를 이뤘고 행사도 프랑스인의 사회로 진행됐다. 그리고 프로그램 면에서도 서구의 여느 국제영화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해마다 경쟁부문에 한 두 개의 아랍영화를 넣었을 정도였다. 2004년에도 경쟁부문에 오른 모로코 영화는 한편뿐이어서 실망이 컸다. 그러나 ‘모로코 영화 회고전’을 통해 나는 18편의 모로코 영화를 볼 수 있었고 그 중에서 <하다, 1984>, <러브스토리 인 카사불랑카, 1991>, <여인들의 속임수, 1999> 세 편을 골랐다. 그런데 회고전 프로그래머는 “<하다>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해외상영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알고 본즉, <하다>는 모로코의 유명한 화가 모하메드 아불루아카르가 만든 유일한 영화이며 그는 제작까지 맡아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영화가 나온 뒤 감독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하다>는 모로코 영화원이 보관하고 이었다. 그러나 <하다>는 내가 본 모로코 영화에서 단연 가장 뛰어난 아방가드 영화였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모로코 영화원의 누레딘 사일 원장을 직접 만나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사일 원장은 몇 일 뒤 ‘모로코 감독협회’의 동의를 받은 다음에 나에게 프린트 사용을 허락했는데 <하다> 제작에 참여했던 자니니 여감독은 나를 만나자 “우리도 잊어버린 영화를 어떻게 당신이 골랐느냐”면서 무척 반가워했다.

폴랜드 로즈 영화학교 출신인 압델카데르 라그타 감독의 <러브 스토리 인 카사불랑카>는 80년대 사회적으로정치적으로 반체제 성격이 강했던 영화 가운데 하나로 이슬람 전통사회에서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됐던 여성의 사회적 자율권과 성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여인들의 속임수>는 11세기 안달루시아 시절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아랍문학의 고전에 속하는 동화를 현대화한 것으로, 옆집 변덕스러운 여인의 호기심을 사기 위해 애쓰는 왕자의 모습을 빌어 ‘성의 전쟁’을 익살스럽게 그린 패로디에 속한다. 파리의 8대학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한 다음 파리의 영화학교를 나온 파리다 벤리아지드 여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999년 모로코에서 그 해의 최고영화로 뽑혔다.

나머지 네번째 영화는 내가 칸에서 본 <천월>이었다. 모로코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감독 벤사이디의 영화는 어느 산속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연대기이며 주인공 어린이가 어른들의 거짓과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죽음을 깨우치는 시공간이기도 한데 영화의 제목은 모로코의 전설에서 따라 어린이들이 처음으로 라마단 단식을 하는 날을 뜻한다. 하나 덧붙일 말은, 앞에서 말한 4편 영화를 뽑는 과정에서 나는 모로코 영화의 전문가 아흐메드 엘 프투후 영화평론가와 바크림 부원장과 여러 번의 토의를 거친 다음에 최종 결정을 했다.

그리고 나는 마라케쉬 여화제가 끝난 다음 모로코 영화원의 시네마테크를 둘러볼 생각으로 마라케쉬에서 6시간 걸리는 급행열차를 타고 라바트로 갔다. 영화원의 국제부에서는 내 도착시간에 맞춰 차를 보내주고 내가 이틀 동안 머물 호텔을 예약하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모로코의 고전영화는 대부분 불어자막이 없었는 데다 그마저 시네마테크의 상영조건이 나빠서 겨우 세 편을 비디오로 봤는데 그것마저 모두 저질영화였다. 그러나 ‘모로코 영화 센터’의 방문은 두 가지 면에서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하나는 그곳 실무자들과 만남으로 내 프로그램을 이행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됐고 두 번째는 모로코 정부의 영화지원 정책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던 점이다.

50년대 중반에 두각을 드러낸 튀니지 영화에 비해 모로코 영화산업은 80년대까지 전체 아랍지역에서 제작편수가 가장 낮은 나리에 속했었다. 그러나 21세기 들면서 튀니지 영화는 심한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는 반면에 모로코 영화는1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나올 정도로 성공하고 있었다. 성공의 비결은 정부의 지원이 높아짐과 2000년 후의 정치개혁이었는데 영화 한 편에 주어지는 정부의 지원비는 제작비의 50%(튀니지는 30%)에 달했다. 그리고 36년간 독재정치로 악명 높았던 하산 2세가 죽은 뒤 모하메드 6세가 국왕이 된 뒤 언론통제와 정치주제의 영화에 대한 금지령이 해체됐다. 그 결과 모로코는 일년에 15편 영화를 만드는 대신에 튀니지에선 6편을 넘지 못하여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학교의 부재와 낡은 제작과 유통 시스템은 두 나라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후진성의 문젯거리로 남아있었다. 여기에서 한마디 덧붙일 말은, 마그렙 영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알제리 영화가 유감스럽게도 프로그램에서 빠진 점인데, 작품선정까지 끝내놓고 중간에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데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칸에서 만났던 츄이크 부부감독은 알제리를 떠난 뒤 연락이 끊겼고 파리의 알제리 시네마테크는 영상자료를 보내준다고 해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마그렙 영화 전주영화제에 오다
마그렙 영화의 특별전은 일년 동안 준비를 했음에도 하마터면 깨질 뻔 했었다. 문제는 튀니지 쪽에 있었다. 카타르고 영화제의 아티아 집행위원장이 전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늦어도 3월쯤은 선정된 영화의 프린트와 정보자료를 확보해야 했는데도 집행위원장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리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틀라틀리, 누지드 감독들 그리고 시네텔레필름 유로메디아툰의 대표에게 연락을 하면 모두 정부의 내부적 사정을 몰라 대답을 할 수 없다고만 했다. 그러다 3월 중순 나는 프리부룩 영화제서 하산 달둘 제작자를 만나게 되어 그에게 문제점을 말했다. 그러자 그는 “아티아 집행위원장은 정부와의 마찰로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면서 자기에게 일을 맡기라”고 했는데, 정말 그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튀니지 영화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모로코 측에서는 ‘영화 센터’ 국제부의 해외담당자 압델라 자쿠가 처음부터 모든 걸 잘 도와줘 문제가 하나도 없었거니와 그는 막 제작을 끝낸 영화 <카사불랑카에선 천사들이 날 수 없다>를 추천하여 전주영화제의 ‘인디 비전’ 경쟁부문에 올려지게 됐다.

나는 영화제가 시작하기 전에 프린트의 왕복 수송 문제에 대해 도움을 청하여 위하여 서울의 튀니지 대사관과 모로코 대사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양쪽 대사들로터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음으로 이 문제는 잘 끝났다. 그뿐 아니라 모로코 대사관에서는 영화제가 시작할 때 일등서기관을 보내어 영화제의 손님으로 초청된 바크림 부집행위원장을 환영하도록 했다. 하지만 튀니지 대사관의 일등서기관은 영화제 몇 일 전에 나를 전화로 불러 내가 영화제 캐탈로그에 쓴 글에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튀니지 정부가 반미정책을 하는 것처럼 썼으니 글을 수정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사실에 맞지 않다고 설명을 했지만 그는 3일 동안 나를 수시로 불러 같은 소리를 반복했는데 내가 통화 중 전화기를 끊은 뒤부터는 더 이상 아무 소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끝난 건 아니었다. 전주영화제는 마그렙의 특별전에 모로코의 바크림 부원장과 튀니지의 케미르 감독을 초청했다. 그리고5월3일 오후 5시에 ‘마그렙 영화와 아랍문화 이해’를 주제로 메가박스 8층에서 세미나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마르렙 쪽에서는 바크림과 케미르 그리고 한국쪽에서는 명지대의 아랍지역학과 교수이며 책 ‘무슬림 여성’을 쓴 조희선 교수와 ‘9.11 테러와 이슬람 세계 이야기(이슬람)’의 저자이며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의 이희수 교수가 참가하여 2시간에 걸친 토론을 진행했다. 그런데 세미나 전에 복도에서 만난 케미르 감독이 좀 긴장한 표정으로 “자기를 뒤따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튀니지 대사관의 직원 같다”고 말하여 나는 흠칫 놀랐는데 세미나 실에 들어가자 선글라스를 쓴 한 남자가 맨 앞줄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는 세미나가 끝날 때가지 자리를 뜨지 않았으나 다행히 케미르 감독은 끝까지 아주 태연하게 토론에 집중하면서 질문에 대답을 했고, 토론 뒤에는 내가 미리 연락해놓은 두 자봉이 나타나 케미르 감독을 바로 리베라 호텔까지 차로 경호를 하여 신변의 위험은 없었다. 그리고 케미르 감독은 바크림과 함께 다음날 일찍이 어느 감독의 초청을 받아 서울로 떠났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튀니지 대사관의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케미르 감독이 서울에 있다는 걸 아는 듯 그가 머무는 곳을 물었지만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튼 케미르 감독은 희한한 일을 겪었음에도 2008년 전주영화제의 디지털 3인3색의 감독으로 <나의 어머니>를 만들었고 동시에 그의 명작 <비둘기의 잃어버린 목걸이>가 전주영화제서 상영됐었다.

마그렙 영화 특별전은 많은 어려움을 딛고 시작됐지만 아랍영화를 좀처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는지 대부분 영화시사에 표가 매진될 정도로 평단이나 관객의 관심도가 아주 높았다. 다음은 영화제의 시네21 일간지에 이성욱 기자가 쓴 글이다. “5월3일 오후 5시 메가박스 8층에서 2시간 진행된 ‘마그렙 영화와 아랍문화의 이해’ 세미나는 영화를 구실삼아 편견과 오해를 벗어내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임안자 부집행위원장은 <사막의 방랑자들>의 감독(튀니지) 나세르 케미르와 모하메드 바크림 모로코 영화원장에게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튀니지와 모로코 영화들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혹시 그 배경에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 자본(과 관객)의 지원을 얻기 위한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는 없는지를 곧바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 이에 케미르 감독은 “튀니지 영화는 정부의 아주 적은 지원에 비해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국가의 합작으로 만들어지는 게 대부분이나 감독 각자를 하나의 학파로 볼 수 있을 만큼 개성이 강하다는 게 특징”이다. 현재 튀니지에는여성감독들의 활약이 대단하고 그들의 스타일이 매우 독특한데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여성감독들이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토론자로 참여한 조희선 교수는 “80년대 초중반 튀니지에서 머물면서 한국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지위와 대우를 받는 여성의 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모로코와 튀니지여성이 아랍권에서 가장 자유로운 게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건 여성을 화두로 사회를 개혁하려는 정권의 정치적 이해에서 나온 결과라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중앙일보의 영문일간지(2005.5.7)에 실린 천수진 기자의 글을 대충 옮겨 쓰자면, “아마, 올해 전주영화제의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발굴영화 섹션의 마그렙 영화 특별전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9.11.2001의 테러 공격 이후 세계 여러 곳에 너무 많이 깔려있는 아랍문화에 대한 오해에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 계기로 모로코의 영화원장과 튀니지의 케미르 감독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자국의 영화를 직접 소개할 수 있는 기회에 주어진 데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으며 케미르 감독은 한국과의 좀더 적극적인 문화교류에 관심을 두었다”.

그런가 하면 전주영화제의 유운성 전프로그래머는 시네21일 일간지 07번에서 “…상영작 가운데서는 화가 출신의 시네아스트 모하메드 아불루아카르가 연출한 <하다>는 우선 주목할 만하다. 빼어난 형식미와 시적인 대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단 한번의 감상으로는 거의 해득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징과 메타포들로 가득한데, 한편으로는 글라우버 로샤, 피에르 파울로 파졸리니, 그리고 장마리 스트라우스로 등으로 대표되는 “대지의 시네아스트”들의 계보에서 논의될 수 있을 법한 작품이다…”.

그리고 끝으로 전북일보의 영화제 특집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김은정 기자는 “…모로코 영화는 근래에 떠오르는 영화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아랍 평론가들은 모로코 영화를 아랍영화의 등급에서 이집트 영화 바로 다음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번에 선택된 4편은 1983년 이후에 제작된 영화 중에서도 모로코의 정체성이 가장 잘 반영된 영화들. 합적인 성관계와 비합법적인 성관계를 통해 사회 관계라는 문제를 해학적이고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종의 사회풍자 영화인 압델카데르 라그타의 <러브 스토리 인 카사불랑카>, 강간과 그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영향을 다루는 모하메드 아불루아카르의 <하다>, 파우지 벤사이디가 단편영화에서 장편영화로 영역을 넓인 첫 작품이자 대성공을 거둔 <천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마치 <천야일화>를 연상시키는 파리다 벤리야지드의 <여인들의 속임수>이다. 튀니지 영화들은 모두가 1999년 이전의 것들. 전성기를 구가하던 예전의 영화사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튀니지의 현실은 불행하게도 오늘의 영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게 했다. 이번 전주영화제를 방문하는 우리 부지드의 <재의 인간>, 튀니지의 전통과 현실 문제를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녹여낸 마흐무드 벤 마흐무드 감독의 <인디안 썸머>, 튀니지의 전통을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바라본 무피다 틀르틀리 감독의 <침묵의 궁전>, 이슬람 신비주의와 독특한 아랍문화를 담아낸 나세르 케미르 감독의 <사막의 방랑자들>이다. 모두가 낯선 만큼 더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오는 이 여화들을 통해 수천 년의 찬란한 아랍문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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