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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 |
[서평] 『대통령과 루이비통』 들녘(2012.8) - 황상민 저
관리자(2012-12-06 16:48:11)
인생은 쇼핑이다 배진환 전북도청 홍보기획과장 명색이 서평인데 이번에도 책을 다 읽지 못했다. 요 몇 주간 없던 일들은 왜 그리 생기며 사돈의 팔촌들은 왜 하필 이때 시집장가들을 가고 평생 연락 안 오던 녀석들이 어떻게들 알고 한잔 하자며 덤벼대었다. 하긴 책을 다 읽고 쓰는 건 독후감일 뿐이라고 위로하며 그래도 읽지도 않은 책의 추천사를 쓰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당당함마저 생기니 나는 구제불능인가보다. 이렇게 생겨먹은 내 마음, 정말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한데 현실은 어떤가.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모른다. 다들 이런 생각으로 무장하고 살고 있다.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들어가 보지도 않은 상대방 속마음을 다 안다고 철석같이 믿는 마음. 우리의 타인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의 경우 온전한 오해이다. 그래서 시중에는 심리학 관련 책이 넘치고 궁예의 관심법으로 지금도 김심이니, 박심을 애타게 찾는가보다.대중가요의 클래식이 되어버린 ‘알고 싶어요’란 노래에서 이선희도 애타게 부르짖지 않았던가.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무얼 생각하시나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타인의 생각이 궁금하기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니 철옹성 같던 지갑이 열리고 닫히는 문제, 즉 밥줄이 걸린 문제이니 개인의 연애보다 더 정교하게, 제대로 접근하지 않겠는가.과거의 연구자들은 ‘마음은 하나’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성이 있을 것이라고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훨씬 복잡하다. 이것은 국가 간에도 차이가 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를 들어 프랑스 여자들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라고 해야팔리는 반면 우리나라 여성에게는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가방’이라고 해야 팔린다고 한다. 더 문제인 것은 이렇게 복잡한 마음을 본인 스스로도 모른다는 데에 있다.자동차를 만들어낸 헨리 포드의 유명한 이야기. 그 당시사람들에게 어떤 이동수단을 원하느냐고 물어봤다면 분명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라고 대답했을 거라는 것이다. 이런 통계조사의 맹점을 우리는 비키니 통계라고 부르지 않던가. 얼핏 다 보여주는 듯하나 막상 중요한 것은 다 가리는. 그래서 나온 것이 ‘인사이트’이다. 연구에 의하면 그렇게 야단스런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15%. 나머지 85%는 그야말로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하지만 분명히 소비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이 무의식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아보자는 것이 목적이다. 세상은 합리성으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개인의 숨은 동기와 감성 등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에서이다. 우리를 낚이게 한 책의 제목 역시 그러하다. 다분히 출판사 기획의 소산물인 혐의가 짙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책 제목은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2만부 팔렸던 ‘칭찬의 힘’을 제목만‘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바꿔 50만부 이상을 판 것이나 ‘아침형 인간’이 100만부를 찍자 저녁형, 초저녁형, 새벽형, 종일형인간들이 줄줄이 등장한 것이 좋은 예다. 내가 아는 마케팅 교수님은 고민 고민 끝에 자신의 책 제목을 ‘마케팅 미래전략’이라 붙였단다. 절대 안 된다는 출판사의 성화에 ‘코카콜라는 어떻게 산타에게 빨간 옷을 입혔는가? - 위기를 돌파하는 마케팅’로 바꿨는데 꽤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고 했다. 결국 본인은 무늬만 마케팅학자이지 마케팅엔 아마추어라는 실토까지. 이 책의제목 ‘대통령과 루이비통’역시 그러하다. 오히려 부제인 ‘마케팅을 위한 소비자 인사이트 발굴 지침서’가 적절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야 책이 팔리겠는가. 뭔가 섹시한 것을 찾다보니 나왔을게다. 마침 대선 특수도 있고 하니. 대통령과 루이비통. 이 어울리지 않는 양자의 절묘한 조합에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집어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클라이언트앞에서나 비즈니스에 관한 전문지식을 한 마디 거들 요량이 아니고 단순히 재미와 정보만을 위함이라면 다른 좋은 책이 많다.풀어 쓰긴 했지만 이 책은 저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의 교재(소비심리학)로 쓰일 법하다. (마치 도올 김용옥 교수의 ‘여자란무엇인가’와 같다. 주부들이 자신의 책을 감동 깊게 읽었다고 하자 도올은 거짓말이라면서 그 책은 그렇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고 했다.) 이 책에는 소비에 이르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간파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것도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나 실제 광고 현장에서 이십년간 실전을 치러본 나의 입장에서는 다 믿을 건 못된다. 오히려 소비자는 구체적인 한 사람(n=1)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24시간을 그의 입장이 되어 상상해 보는 식의 방법론이 훨씬 유용하다. 대학의 불교학과 교수가 갓 머리를 깎은 스님 앞에 조아리듯이. 구도의 길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인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소비자’란 새로운 인종이 되어버렸다. 짖지도 물지도 못하는 브라우니를 끌고 다니며 호통치는 정여사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돈은 신, 물건은 사제가 된 백화점이란 신전에서 값비싼 물건을 많이 살 수 있는 소비자는 세속의 왕인 것이다. ‘돈 주고 사는 것치고 시시하지 않은 것이 없다’(오스카 와일드), ‘사람은 돈을 쓰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일본 광고 카피)와 같은 말에는 큰 감동이 없다. 오히려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보다 신용카드 명세서를 보면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선거란 정치 행위도 대통령 구매란 소비행위가 되어 버렸다.그리고 대통령을 고르는 일보다 내 가방을 고르는 일이 훨씬 더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해서 ‘나는 존재한다고로 행복하다’라는 에필로그로 끝난다. 그렇다면 ‘나는 소비한다 고로 행복하다’라는 언명이 성립되지 않을까.‘패션이란 너무 추해서 6개월에 한 번씩 바꿀 수밖에 없다.’고 한 독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죽었고 가끔 꿈에도 등장하는 신상을 메고(안 되면 짝퉁이라도) 출근했을 때 바라보는 동료들 시선의 짜릿함은 살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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